배심원1

이런 날이 오고야 말았다.
그간 여러차례 배심원에 뽑혔다는 편지를 받았지만
번번이 출석할 필요없이 스탠바이만 일주일하고 넘어가곤 했었다.
이번에도 뽑힐거라는 생각은 하나도 없이 출석 여부를 확인했는데
출석이 확정됐다고 법원으로 나오라고 적혀있었다.
확인하는 순간, 걱정이 앞선다.
한번도 가본 적이 없고, 영어 때문이라도 최종까지 갈 일이야 없겠지 싶으면서도
낯선 환경, 편하지만은 않을 것 같은 공기, 제대로 알아듣고 잘해낼까 하는 미덥지 않은 나자신에 대해서까지 모든게 걱정이다.

생각이 많아선지
밤새 말도 안되는 꿈을 꾸느라 잠을 설쳤다.
쿨한 것 같지만 예민한 성격이 이런 때 발광한다.

예민함과 관련해서 평소에 훈련했던 것들을 끄집어내본다.
좋은 것만 생각하자.
긍정적인 면을 고려하자.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경험이라는 측면에서 글로 보는 경험보다
발로 뛰는 것이 확실하지 아니한가!
게다가 법원은 우리 집에서 불과 차로 10분 거리이지 않은가!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치우는 둥 마는 둥,
화장을 하는 둥 마는 둥,
계속 동동거리면서 법원에 갈 준비를 마치고
법원 옆에 표시된 건물 주차장에 도착했다.

주차장 입구에서 직원이
"배심원으로 확정된 사람만 무료 주차고, 나머지는 하루에 $8.00 이다. 그래도 할래?"

"안할래!"

배심원 전용 무료 주차장을 알려주길래 거기다 주차를 하고
늦지않은 시간에 입구에 도착했다.
바로 앞에 에디슨 전기회사 제복을 입은 남자가 서있길래,

"내가 배심원 출석은 처음이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했더니
대기실 번호를 묻고 같은 번호니 자기를 따라오란다.
'이 사람만 따라 다녀야지' 생각한 것도 잠시,
법원 문이 열리고 보안 검색이 시작된다.
지갑, 휴대폰, 열쇠 등 가방안에서 꺼내고 보안 검색을 통과하는데
내 가방에 문제가 발생했다.

"네 가방 안에 거울이 있는 것 같다. 꺼내볼래?"

거울 있다. 그것도 두개나.
하나는 선크림 팩트, 하나는 화운데이션 팩트.
그거 때문에 들어갈 수 없단다.
그럼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했더니 버리란다.
가차없다.

순간 '버려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얼른 차에 두고 오자!' 라는 영리한(?) 생각이 들어
냅다 달려 주차된 차에 거울 달린 팩트를 갖다두고 다시 보안 검색을 통과했다.
이번엔 무사히 통과.
그런데 다녀와보니 에디슨 제복의 아저씨가 안 보인다.
이런..이런....결국 혼자 헤쳐나가야 하는 길인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대기실에 도착해보니
이미 200명 정도 되는 사람이 꽉 차있다.
체크인을 하고
할머니 두 분 앉아있는 가운데 빈 자리에 안았다.
모두들 무표정에 공기는 무겁고, 휴대폰에만 눈길을 주고 있다.

여자 공무원의 건물과 주차 안내,
판사의 간단한 소개가 끝나고
배심원 제도와 재판 과정에 대한 동영상을 보여준다.

이제부터는 호명과 기다림의 시간이 되겠지.
빨리 내 이름이 불리기를 기대해 볼 수 밖에..도리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