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역대 최고의 재즈피아니스트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  워낙 오랜만에 다시 쓰는 글이라 처음으로 보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아, 간단히 다시 소개하면, 이 글에서 저는 빌 컨리프(Bill Cunliffe) 라는 재즈피아니스트가 선정한 순위를 통해 재즈피아니스트들과 그들의 음악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공동 #2 Herbie Hancock

 오늘 소개할, 공동 2위로 선정된 허비 핸콕(Herbie Hancock)은 그 엄청난 음악적 역량도 대단하지만,  제게는 그를 생각하면 그의 밝은 웃음이 먼저 떠오릅니다. 누구라도 그와 함께 있으면 기분이 유쾌해질 것 같은 그의 웃음과 말하는 태도는 연주를 듣기도 전에 듣는 사람의 마음을 열게 만듭니다.

 그의 연주와 작품의 예술성 뿐만 아니라, 대중적 성공의 측면에서도 그의 성취는 엄청났습니다. 수많은 그래미와 아카데미 영화음악상을 포함한 많은 영화제에서의 작곡상 수상과 세계 각국의 빌보드 순위에서 상위권에 이름을 올린 것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전문가와 대중들에게서 모두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Rockit from “Future Shock”

 시카고 출신이었던 허비 핸콕은 중산층이었던 부모의 가정에 태어나 어려서 부터 클래식 음악교육을 받았습니다.  그의 뛰어난 음악적 재능은 7살에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공연을 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고등학교 때까지 그는 따로 재즈를 배운 적이 없었고, 고등학생이 된 이후에야 주변의 친구들과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을 통해 재즈의 매력에 빠져들게 됩니다. 

  그는 혼자 재즈를 공부하면서 당대최고의 재즈피아니스트 빌 엔반스(Bill Evans), 프랑스 작곡가 모리스 라벨(Maurice Ravel)의 음악 등을 받아들이면서 성장합니다. 대학을 들어가서는 시카고 지역 재즈피아니스트 크리스 앤더슨(Chris Anderson)를 찾아가 재즈를 본격적으로 배우게 되고 2년 후 그의 첫 음반 “Takin’ Off”를 발매합니다. 

Watermelon Man from “Takin’ Off”

 첫 음반에 수록된 곡 Watermelon Man 은 바로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습니다. 아직 핸콕은 무명의 신참이었으니까요. 그런데 허비 핸콕과 잠시 공연에서 만났던 라틴음악의 거장 몽고 산타마리아(Mongo Santamaria)는 이 곡을 맘에 들어하며 “내가 한번 레코딩 해도 되겠니?”라고 물었습니다. 당연히 핸콕은 허락했고 그 리메이크 버전은 큰 히트를 기록합니다. 역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만남인가 봅니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중요한 만남이 일어나는데,  당대최고의 재즈연주자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가 허비 핸콕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것입니다.

 당시 재즈신에서 마일스 데이비스는 스타중에 스타이자, 살아있는 전설이었습니다. 엄청난 카리스마로 관객을 압도하는 그의 연주는 전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았습니다. 특히 마일스는 가장 뛰어난 연주자들을 자신의 밴드에 멤버로 불러 연주하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즉 마일스 밴드의 멤버가 된다는 것은 그 시대 최고의 재즈연주자임을 공인받는 것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허비 핸콕이 고둥하교시절 부터 존경했던 빌 에반스도 마일스 밴드룰 거쳐갔었습니다. 마침 그 시절은 마일스가 새로운 밴드를 만들려고 하던 즈음이었는데, 결국 허비 핸콕은 새로운 마일스 밴드의 피아니스트로 합류하게 됩니다. 

 허비 핸콕은 마일스 밴드의 멤버로 전 세계를 무대로 명성을 날리며 공연하면서도 자신의 이름으로 된 음반활동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곡들과 훌륭한 음반들이 계속되었고, 그 중에서도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곡은 아마도 Cantaloupe Island 일 것입니다. 이 곡은 지금까지도 주는 신선한 느낌때문에 힙합뮤지션들이 많이 샘플링해서 사용하는 곡이기도 합니다.

Cantaloupe Island from “Empyrean Isles”

 1970년대가 되면서 재즈신에서는 전통적인 재즈에 전자악기들을 첨가하며 새로운 스타일의 음악을 만들려는 시도가 본격적으로 이뤄졌습니다. 이런 음악을 퓨젼재즈(Fusion Jazz)라고 합니다. 허비 핸콕은 이런 시도에 아주 열려있는 연주자였고, 이 새로운 흐름을 이끌어 갈 음악적 아이디어가 넘쳐난 아티스트였습니다. 특히 그는 아프리카 전통에 기반한 흑인음악과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댄스음악인 펑크(Funk)의 요소를 재즈에 담아내려고 했습니다.  

Chameleon from “Headhunters”

 듣기만 해도 몸이 들썩이는 위의 곡 Chameleon 이 담긴 음반 “Headhunters”는 큰 대중적 성공을 거뒀지만 동시에 재즈 전통주의자들에게 큰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일렉트릭 베이스, 신디사이저, 댄스음악의 그루브가 어우러진 이런 음악이 무슨 재즈냐 하는 내용이었죠. 그러나 허비 핸콕이 열어제친 이 방향으로 수많은 젊은 연주자들이 더욱 넓게 길을 만들어 갔고, 수십년이 지난 지금 그 음반은 역사적 퓨젼재즈 음반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Dis Is Da Drum from “Dis Is Da Drum”

 계속해서 동시대와 호흡하며 그 시대를 반영하는 음반활동을 이어간 허비 핸콕은 2000년대 부터는 팝음악의 스타들과 협업하며 자신의 음악적 스펙트럼을 넓혀가고 또 재즈를 대중과 연결하려는 접점을 계속해서 만들어 냈습니다. 그와 함께 작업한 음악가의 리스트는 끝이 없습니다. 중요한 몇몇만 거론해 봐도, 카를로스 산타나, 폴 사이먼, 애니 레녹스, 존 메이어, 크리스티나 아귈레라, 스팅 등을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A Song for You with Christian Aguilera

Sister Moon with Sting

 2007년, 핸콕은 1970년대 포크싱어 조니 미첼(Joni Mitchell)의 노래들을 팝과 재즈신의 스타들과 협업해서 만든 “River:, The Joni Letters”라는 음반을 내놓습니다. 음반의 주인공인 조니 미첼을 포함해 티나 터너, 노라 존스, 코린 베일리 레이, 레너드 코헨 등이 게스트 싱어로 함께 했습니다. 이 음반은 그래미 역사상 세번째로 올해의 음반 부분에서 재즈음악이 수상하는 기록을 만들어 냈습니다. 

River from “River: The Joni Letters”

 지금 허비 핸콕은 LA에 본부가 위치한 Herbie Hancock Institute of Jazz 의 이사장을 맡고 있습니다.  그의 열정이 음악 자체 뿐 아니라 그 음악을 다음 세대에게도 전하기 위하기 위한 교육에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제 아이가 다니는 LA지역에 고등학교에도 종종 찾아와 재즈 교육을 담당하는 분들이 Hancock Institute 에서 왔다는 말을 전해듣고 반가웠던 기억도 납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허비 핸콕의 일생을 다시 돌아보며 드는 한가지 생각이 있습니다. 언제나 긍정적인 에너지를 가지고 멈추지 않고 새로운 곳을 향해 자신의 열정을 불태우는 그였기에, 그 열정을 이룰 수 있는 좋은 만남과 협업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것입니다. 혹시라도 누구라도 의욕이 떨어지고 삶이 고단하게 느껴질 때라면 먼저 허비 핸콕의 음악을 들으며 힘을 얻어보면 어떨까 생각하게 됩니다.

P.S.: 코비드 시기부터 개인적인 이유로 오랫동안 글을 이어가지 못했습니다. 혹시라도 다음 글을 기다리셨던 분들에겐 송구스럽다는 말씀을 드리고 댓글 남겨주시면 다시 의욕을 찾아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