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회사 주식이 가파르게 올라 신이 난 어느 날, 난 그 주식을 팔아서 뭘 할까 고민에 빠져 신나했다. 여행을 하고 집에 그림도 사고 오래된 소파도 바꿀 수 있는 돈이었다. 그러나 남편은 약간 좋아하는 것 같으면서도 그렇게 좋아하는 티를 내지 않는다. 너무 세파에 찌들다 보니 좋아하는 감정을 잊어버린 것 같다.

내가 남편한테 주식 올라 좋지 않냐고 물으니까, 남편은 노후가 걱정이라며, 잠실에 집을 산 친구가 이제는 집값이 많이 올라 몇 십억 부자가 되었다며 우리는 참 가난하단다.

우리 남편은 언제쯤 기뻐할 수 있을까? 

남편이 기뻐할 수 있는 그런 날이 올까? 

그런 날이 온들 남편은 기뻐할 수 있을까?

누군가로부터 내 팔자가 좋다는 소리를 듣게 되면, 예전이었다면 "니가 내 속을 몰라서 그런 소리 하는 거라고" 우겨댔을 텐데, 요즘은 그냥 맞다고 내 팔자가 제일 좋다고 대답한다. 속이 어떻든 팔자가 좋아 보이는 게 나쁘지도 않고, 예전에는 팔자가 좋아 보이는 사람을 보면 샘이 나서 못 견뎠는데, 요즘은 별로 샘도 안 나서 남들도 내 팔자가 좋다고 샘내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어서다.

나는 진짜 머리숱이 적다. 뒤에서 보면 정수리가 휑하다.   남에게는 희극 캐릭터인 골룸이 나에게는 비극의  캐릭터이다.   골룸이 저렇게 생기고 싶어서 저렇게 생겼겠는가.   자신이 선택할 수 없었던 외모의 열등감을 다른 것으로 극복하려다 보니, 절대반지를 갖고 싶었던 것이겠지.    생긴것도 속상한데 의지의 인물이 아닌 탐욕의 상징으로 묘사되다니 골룸은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머리숱에 있어 평생 불만인 내가 어느날 거울에 뒷모습을 비추면서 걱정하다가  갑자기 큰 깨달음을 얻었다. 어짜피 애써 보려고 안하면 내 뒷모습은 내가 볼일 없을  텐데, 사람들이 내 정수리를 보면서 휑하다고 생각하는 것까지 내가 걱정할 필요가 있을까하고. 그들의 감정은 그들에게 맡겨 두고, 난 환상 속에서 살 생각이다. 

내가 환상 속에서 살다 간들 누가 뭐라 하겠는가? 어짜피 행복이라는 것은 남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아니라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인것을.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 알았다. 내가 부모님을 생각할때 떠오르는 이미지는  그 분들의 외모나  가진 것에서가 아니라  그 분들이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서 부터  나온다는 것을. 나는 우리 딸들한테 삶의 진실을 직시하는 우울한 엄마가 아니라 그냥 푼수처럼 행복하게 살다간 엄마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우리 엄마는 참 행복하게 살다가셨어' 라고 그리고 그렇게 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남편아! 얼마나 살겠다고 걱정하냐. 단순하게 지금 이 순간 그냥 이유 없이 행복해보자.

PS. 남편아, 고맙다. 네가 노심초사 늘 근심 걱정하고 노력한 덕분에 난 오늘 내 한 몸 편하다. 너가 나를 만난 것도 팔자고 내가 너를 만난 것도 팔자다. 내 팔자가 네 팔자보다 좋아서 미안하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