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겨울은  많은 일들이 있었다.   비도 많이 내렸고, 날도 많이 추워 밤이 되면 땅밑에 숨어있던 냉기가 스멀 스멀 올라와 바닥부터 켭켭이 쌓이는 것 같았다.  히터를 틀어도 바닥에 쌓인 냉기를 몰아 내지는 못하는 것 같다.

   날짜는 가고 3월이 되었는데   벗꽃이 피긴 하지만  비가 내리고 날씨가 흐려,  한국처럼 짜잔하고 계절 바뀐것을 느낄 수 없다.  비가 계속오니  겨울의 연장선 인것 같다.  

    어느날 부터 난 기력을 잃었다.  그렇다고 입맛이 없는 건 아니고 오히려 밥먹고 돌아서면 금새 배가고파 또 무언가를 먹게된다.  달달한 맥심 커피, 쿠크다스, 귤도 먹어보고 그런데 힘이 없다.  이렇게 많이 먹고 잠도 밤에 늘어지게 자고, 낮에 시간날때 마다 낮잠도 틈틈히 자는데 왜이렇게 배 고프고 힘이 없을까?

   병든 닭처럼 계속 자도 피곤하고 속도 미식 거리고 소화도 안되는것 같은데 식욕은 전혀 줄지 않는 것이라면 혹시 내 안에 다른 생명이 자라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지.  구층제 먹을 계절이다.   체중이 줄지 않고 늘어나는 것을 보니,    아마도 이 놈은 처음에 실처럼 얇았지만 겨울내내 음식을 나랑 같이 나눠 먹으며 구렁이 처럼 굵어 졌나 보다.  이 구렁이만 나가면 몸무게도 줄겠지.  난 가족들을 불러 가족들에게 한국에서 가져온 구충제를 한개씩 나눠 줬다.   그런데 하루 이틀 지나도 전혀 변화가 없다.   여전히  소화도 잘 안되는데 먹을거는 자꾸 땡기고 기력이 없다.    한 알으로는 부족한 가 보다.   나는 가족들을 불러   한알 씩 더 나눠 줬다. 애들은 싫다고 난리다.  지난 번 먹을 때는 물로 꿀꺽 삼켜 먹었는데 효과가 없는 것 같아 꼭꼭 씹어 가루로 만들어 먹으라 시키고 나도 그렇게 했다.   일주일이 지나도 효과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혹시 갱년기 인가?

   나는 봄도 되었고 해서, 남편 방에 있는 안 읽는 책 들을 정리하기로 했다.  책을 정리하다가 잊고 재냈던  LP판이 들어있는 상자를 발견했다.  우리집에는 수십장의 LP판들이 있다.   남편이 결혼할때 가져온건데, 턴테이블이 없어,  한번도 들어보지도 못하고 버리기 아까워 태평양을 건너고, 대륙횡단을 하면서도 지금까지 가지고 있다.    존재를 잊고 있다가, 보통은 이사할때나, 존재를 확인하게 된다.    난 이십년 넘게 관심도 없었던 LP판들을 천천히 한장 한장 넘겨 보았다.

   정경화가 연주한 사계가 보였다.  봄이면 항상 라디오 에서 질리게 들었던 그 곡.   라디오 멘트가 갑자기 떠올랐다.   “비발디 사계  1악장 봄,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연주로 듣겠습니다.  “  아! 잊고 있었구나.  봄이 되면 해오던 봄 맞이 의식들.  라디오에서는 비발디 사계와 벗꽃 엔딩 노래가 울려 퍼지고, 야채 가게에는 봄동, 비듬나물 등 봄나물들이 넘쳐나는 것.  봄동으로 쌈싸먹으고, 씹는 맛이 좋았던 세발 나물,  냉이 된장찌개.  한국에서는 당연한 일이라 의식하지 않고 행했던 소소한 봄철 일상들이  갑자기 나에게 다가왔다.  느릿느릿 돌던 피가 갑자기 빨라지는 것 같다.  그리고 서글퍼 졌다.  향긋한 봄나물이 먹고싶다.  먹고 나면 힘이 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