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는 일 없이 놀기만 잘 하는 이쁜아짐.

노는 계획만 잘 실천하는 이쁜아짐.

외박도 차암 잘 하는 이쁜아짐.

 

 

기획은 다섯 달 전에 들어간 거였고

구체적인 계획은 두 달 전에 잡혔던 슬립 오버.

 

 

영계 친구들 중 한 명의 남편이 주말 동안 집을 비우게 되서

하룻밤 자면서 술도 한 잔 곁들여서 수다 찬찬히 나눠 보자 취지로

이번 슬립 오버를 기획하게 됐는데

술은 세 명이서 준비했던 백세주 세 명을 채 못 마시고

두 병에서 끝내고

수다는 이제 막 시작한 거 같은데 벌써 새벽 한 시가 넘었다 그래서 또 자고.

 

 

남편은 남편대로 외박.

둘째 시누 딸래미 생일 잔치 참석하느라 그 집에 갔고요,

그 집에서

잔치 날을 이번 주냐 다음 주냐 이러고 잡았다 취소했다 어쩌고 저쩌고 하다

저 날로 낙찰을 보는 바람에 저는 못 갔죠.

 

 

친구 남편이 비행기 표 끊은 두 달 전 그 날 제 약속은 확정이었고

둘째 시누네 딸래미 잔치는 두 주 전 잡힌 거라

선약 우선 존중 원칙에 따라 저희 부부는 찢어졌는데

요령없는 남편은 제가 못 간다는 소식을 둘째 시누한테 전하면서

'저 사람은 친구들이랑 슬립 오버 하기로 해서 못 가고 나만 갈거야'

이렇게 간단 명료하게.

 

 

저 집도 애라고 많기를 하나 달랑 하나.

자기 형제들 4남매 중에 아이 낳고 사는 사람 자기 하나.

시부모님께는 온리 손주.

그래서 매 년

아이 생일 잔치를 친구들하고 하는 것 외에

저렇게 집안 식구들 불러서 따로 꼬박 하는데

저의 불참 이유를 저리 간단하게 설명하면 듣는 사람 섭섭하잖아요.

 

 

전후좌우 상황 설명을 좀 하라고...

생일 잔치 지난 주에 했었으면 내가 갈 수 있었다고...

그런데 갑자기 이번 주는

내 약속이 두 달 전부터 잡혀 있었던 거라 못 가는 거라고...

그래야 저 쪽에서 기분이 안 나쁠 거 아니야...

 

 

그랬더니,

맞아요 맞아 부인 말이 맞아요.

하면서

갑자기 자기 막내 동생하고 부모님한테 전화 걸어서 마구 설명을 하고

다시 둘째 시누한테 전화해서

또 설명을 하고.

 

 

끝이 없는 남편 교육의 길. 에휴...

 

 

그런데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제가 여태 저 집 딸래미 생일 잔치를 한 번도 참석한 일이 없는 거 같아요.

매번 이런 식으로 제 스케줄이 꼬였었던 것 같아요.

친구들이랑 노는 약속 때문은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일을 하느라 주말 동안 다녀 올 수가 없었다던가

아무튼 항상 뭔가가 있었어요.

 

 

좀 미안해 졌어요.

 

 

친구 집에 갈 때 빈 손으로 가기도 그렇고

겸사겸사

또 초콜렛 칩 쿠키를 구워서

이것 참...쿠키 굽기 손댄지 얼마 안 됐지만

해 보니 생색 제대로 나면서 하기는 쉽고.

잘 됐다, 요걸로 때우자, 하고

 

 

이번엔 마흔 개 나왔는데

남편이 네 개 시식하고

열 여덟개 남편 싸주고

내가 열 개 싸고

집에 여덟게 남기고.

 

 

금요일 오후에 남편이 먼저 집을 나서고

저는 맨하탄에서 일하는 친구 퇴근 시간 맞추느라 좀 더 있다 나가고

맨하탄에서 친구와 일차 접선하여

둘이 시외 버스 터미널 가서 뉴져지로 가는 버스를 타고

목적지에 도착하여

호스트 친구가 아이 둘이랑 씨름하며 준비해 놓은 저녁을 맛있게 먹고

 

 

호스트 친구가 아이들 재우러 들어간 동안

저는 집에서 들고 간 소스를 꺼내서 골뱅이 무침 준비.

친구가 미리 끓여 놓은 어묵국과

골뱅이 무침으로 간단한 안주 해 놓고

백세주 시작.

 

 

안주고 술이고 이미 시작한 이후에 호스트 친구가

 

 

아잉...사진 좀 찍어 둘 걸...

 

 

저는 호스트 친구가 미리 해 놨던 저녁도 많이 먹었고

어묵국도 많이 먹었는데

저 친구는 골뱅이 무침 맛있다고 잘 먹더라고요.

 

 

아줌마들은 다른 사람이 해 준 건 다 맛있다는 진리 확인.

 

 

 

 

우리가 감수성만 가지고 친구를 좋아하는게 가능했던

지란지교를 꿈꾸며 이런 수필을 나누며

좋았다 삐졌다 그래서 울었다 화해했다 이런거 친구랑 할 수 있는건

밥 먹여주고 잠 재워주고 옷 입혀주고

이런거 해주는 부모가 있는 시절에

어쨌거나 저쨌거나 날 밖으면 또 같이 학교라는 곳에서 모여 얼굴 보는

그런 생활이 가능한 시절엔

싸워도 돼요. 화해할 기회가 있으니까.

 

 

다 자라

결혼하고

사회 생활하고

아이도 키우고

 

 

그냥 내 하루 하루가 더 중요한 상황에서 사귀는 친구는

뭐 하나가 어긋나면

우리는 그것에 매달릴 여유가 없는 상황들인지라...

 

 

직장이 있고

남편이 있고

아이가 있고

내가 이 셋 중에 하나만 있거나 둘이 있거나 셋 다 있거나

내 친구나

이 중에 하나만 있거나 둘이 있거나 셋 다 있거나

 

 

 

이 나이에는

친구라는 것이 아우...많이 복잡해요.

직장, 배우자, 아이들, 이 모든 상황을 다 감안하고 뛰어 넘어야

비로써

만날 수 있는 것이 친구인 나이라

 

 

 

그 모든 것을 다 처리하고 어렵게 만났을 때는

무조건

 

 

좋은 시간만 보내야 해요.

 

 

일분 일초가 아까울 만큼.

 

 

이제 이 나이에는

만나서 뭔가 찝찝하고 기분 나쁘고 이런 관계는

진짜 시간 아까워서 못 하겠고

그냥 좋은 사람들하고만 만나도 가는 시간이 아쉽고 막 그러니깐.

 

 

내가 여고생일 때는

싸가지 없는 애 하고도 씨름을 할 수가 있었어요.

 

 

지가 말로는,

나랑 친구하고 싶다니까,

오늘 가르치고

내일 변하다 한 번 보고

이렇든 저렇든

어차피 맨날 학교에서 볼 거니까.

 

 

 

아니 아무리 학기 초라지만,

너는 공부도 잘해서 우리 반 일등으로 들어 왔다는 애가

내 이름을 그제도 물어 보고 어제도 물어 보더니 오늘도 물어 보냐?

 

 

 

고등학교들 들어 가서

번호 대로 잘라서 교실 말고 화학실 청소조로 보내 졌는데

공부도 잘 하고 거기다 얼굴까지 예뻐서

자연스럽게

8명 중에 대장 노릇하게된 애가 제 이름을 사흘 연속 물어 보더군요.

 

 

그 때 저는 이미 절친이 되어 버린 친구가 생겼었는데

그 애와 나를 기준으로 청소 기준이 잘려서 ㅎㅎㅎㅎ

제 절친은 저 무리에 없었어요.

 

 

사흘 연속 내 이름 물어 보길래 빈정이 상해서

 

 

너 내 이름 지금 몇 번째 물어 보는 건 줄 알아?

이름을 물어 보거든 기억을 하던가

기억을 못 하겠거든 물어 보지를 말던가.

 

 

 

제가 이랬더니

나머지 무리들이 깜짝! 놀래서.

 

 

생긴거 후지다고 진짜 여고생 시절부터 욕 많이 봤네요.

 

 

저 얘기 절친한테 했더니

너무 재수 없다고 난리를 치는데

제 절친은 진짜 예쁘게 생겼었는데

(얼굴이 다가 아니라고 저를 항상 위로해 줬었어요)

공부가 좀 많이 안됐고

저 재수는 공부도 잘 하고 얼굴도 예쁘고.

저는 공부 평범, 얼굴 많이 안됐고.

 

 

 

저 재수도 어쨌든 저랑 친구가 되긴 됐어요.

 

 

 

친구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자기가.

그런 도전 처음 받아 봤다고ㅎㅎ

다들 주변에 떠 받들어 주는 애들만 있었는데.

제 반응 신선 했다고.

 

 

 

 

저는 친구해 주고 싶은 생각 전혀 없었지만

제 절친이

걍 해 주라고. 그러길래.

 

 

 

이 나이에는 저런거 안돼요.

싸가지 없고 재수 없는 캐릭터를

이해하고 화해하고 받아 들이고

이럴 시간적 감정적 여건이 안되잖아요.

좋아하는 사람들 만나기도 얼마나 힘든데

저런 캐릭터들하고 감정 싸움할 여건이 어디 되나요.

 

 

더 중요한 건

내가 저런 시절이었을 때

나도 내 나름 한 싸가지 캐릭터 였을텐데

내가 운이 좋아

내 옆에 친구들이 있었던 거지

지금 만약 내가

저 시절 그 때 처럼 행동한다면

내 옆에 있어 줄 사람,

아마 똑같은 이유로 없을 거예요.

 

 

 

똑같은 이유로

나도 뭐 하나 잘못하면

한 큐에 나도 누군가에게 바로 짤리는 그런 처지일 거예요.

 

 

조금 친해 졌다 싶으면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맨날 나는 집에만 있는다고 연막치고 나가려고 하지도 않고

내 기분 땡기면 아무 때나 전화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옆에 있는 친구들이기에

지금 내 친구들은 너무나 완소.

 

 

사람이 잘 나가다 안 좋은 일로 추락을 하면

많은 인간 관계들이 자연스럽게 정리가 되더라고요.

 

 

동갑내기 친구들은

내가 그냥 아무 생각없이 막 살 때나

그 이후로 쭈욱

이런 저런 고비를 넘길 때

그냥 항상 있는 친구들이고

 

 

나이 먹어 사귄 친구들은

나 시절 좋을 때 알았다가

왕창 고꾸라 지면서 남은 친구들.

얼굴 보며 직접 만나는 친구는 영계 친구들 둘 밖에 없어도

몇 달에 한 번씩이라도 꾸준히 전화하고 연락하면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친구들은 더 있어요.

이 친구들은 다 인터넷으로 만난 친구들.

 

 

 

내가 왜 이렇게 사나...

남들은 다 열심히 사는데...

나는 왜 이렇게 한심하게 살지...

 

 

이런 생각이 드는 날

정말 오랜 만에 전화 통화를 하면

 

 

전부 다 폭풍 칭찬.

(그냥 내가 내 자랑을 마구 쏟아 부으면

아 그렇다라고 동의 해 줌)

 

 

아...미치도록 고마운 사람들.

 

 

 

이런 얘기가 뭐라고

재밌다고 더 자주 올려 달라고 해 주시는 분들,

진짜 더 미치도록 고마운 분들,

허접한 사람의 고마운 친구들,

나는 어떻게 여기에 이런 일기같은 아무 얘기도 아닌 걸 이렇게 쓰면서

이렇게 큰 사랑을 받는지...

 

 

감사합니다.

진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