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똥 기저귀 빨아 키운 것이 9월이면 벌써 고등학생이 된다고...

하아...세월 가는 거 무섭다...

둘째 언니 딸래미 중학교 졸업식 다녀 왔어요.

재력으로는 찌그러져도 머릿수로는 안 밀리는 집안이라

떼로 몰려 갔다 왔습니다.

 

 

원래 지금 껏 저 아이 학교 행사는 저 집 엄마 아빠 보다

저랑 셋째 성이 더 참석을 많이 해 온 바라

쟤 학교에서 뭐 한다 하면

저랑 셋째 성은 그 날 휴가 씁니다.

저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어떤 일이 있어도 갑니다.

 

 

 

쟤 태어났을 때

이쁜아짐 아가씨 신분이던 시절이고

인터넷으로 조리법 검색해 먹고 이런거 하기 이전 시절이라

산후조리라고 제대로 해 준 것도 없고

(지금 같았으면 훨씬 더 잘 해 먹였을텐데...넘 아쉽.

노여사는 산후조리 이런거 취급 안 하시는 양반이라

현경 양은 내가 둘째는 셋째 성이 산후 조리 해 줌)

주구장창 미역국만 끓여 먹였지만

 

 

한 달 동안 기저귀는 빨아 줬어요.

한국 시댁에서 천 기저귀 좀 보내주랴...하셨다길래

쓰던 안쓰던 보내 주신다 하면 일단 받으라고 제가 부추겨 가지고

천 기저귀 왔길래 제가 산후 조리 해주는 동안은 그거 썼어요.

언니는 곧 다시 일하러 나갈 것이고

그러면 아이는 맡길 것이고 그러자면 당근 종이 기저귀 써야 할 것이고

내가 해주는 동안만이라도

애기 천 기저귀 채워 주겠다고.

 

 

아침에 그 집 가서 전 날 널어 놓았던 기저귀 착착 걷어 내서 개켜 놓고

밤 사이에 나온 것들이랑

그 날 하루 쓴 것들

저녁 나절에 화장실 가서

욕조에 뜨거운 물 틀어 놓고

쉬야 기저귀는 비교적 가볍게 흔들 흔들

건더기 기저귀는 먼저 흔들 흔들 후

비누 칠 해서 좀 비벼 가지고

비누 물 푼 전용 들통에 넣어가지고 푹푹 삶아서

(이거 삶은 빨래는 깨끗이 헹구는 것이 왕 노가다라는 거 해보신 분들 다 아시죠. 엄청 힘든 거)

맑은 물 나올 때까지 헹궈서 꼭꼭 짜서 건조대에 다시 착착 널어 놓고 퇴근.

 

 

저것이 걷기 시작하고 아주아주 또래보다 빠르게 말을 시작하고

그 때의 즐거움은 지금 생각해도 말로 표현이 안 될 정도로

너무 너무 하루 하루가 즐거움의 극치였던 시절.

 

 

재 너서리 예비 소집일이라고 또 그 집 뛰어 갔더만

이제는 갓난쟁이 동생까지 생겨서

비쩍 마른 지네 엄마한테는 업어 달란 소리도 생전 안하는 것이

덩치 좋은 이모는 천하장사인 줄 알고 보자마자 업어 달라고.

옆에서 지네 엄마가 이모 허리 아파서 안된다고 해도

납싹 업혀서는

내가 허리 아픈 줄도 모르고 너를 그렇게 업고 니네 학교까지 갔다 이것아.

 

 

엄마는 동생이 타고 있는 유모차 밀고 천천히 따라 오고

내 등에 업혀있는 저 아이랑

 

 

현경아, 학교에서 온 편지 봤지?

학교 가면 쉬야는 혼자 해야 하는데 할 수 있지?

학교에서 공부하다 아프면 뭐라고 하라고 했지?

 

 

아이 엠 씩.

 

 

공부하다 쉬 마려우면 뭐라고 하라고 했지?

 

 

아이 니드 투 피.

 

 

가정 통신문에 그렇게 써 있더라고요.

집에서 영어를 쓰지 않는 가정의 경우, 저 두 문장 만큼은 꼭 영어로 습득시켜 보내 달라고요.

그리고 학교에서는 규칙이

어느 누구도 아이가 화장실 갔을 때 도와줄 수 없도록 되어 있으니

아이가 화장실 이용하기 편한 옷 차림해서 보내고 (벨트같은 것 피해 달라고)

혼자 화장실 쓸 수 있도록 훈련시켜 보내 달라고.

 

 

쟤를 업고 가면서

제가 질문하고 현경이가 대답하고.

학교 도착했더니

엄마 바짓 가랑이 잡고 우는 애들은 신경도 안 쓰고

지 엄마랑 이모 쳐다 보면서 환하게 웃고 손 흔들고 씩씩하게 들어가던 모습이

저 아이 공교육 시작의 첫 날이었는데.

 

 

일 년 후,

너서리 졸업식 갔더니

선생님이 저 보고

아 현경이가 말하던 그 이모님이시군요.

 

 

지가 일 년을 학교를 다녔대도 영어 한 마디도 못 하던 것이

무슨 말을 할 줄 안다고

지 이모 얘기까지 선생님한테 했다는 건지

가족들 모두 어이 없고 우스워서.

 

 

킨더 가든 예비 소집 일 또 갔고

킨더 가든 졸업식에도 또 갔고

초등 4학년 때는 학교에서 시범으로 볼룸 댄스 동호회를 처음으로 운영해서 발표회를 한다길래

또 정장 입고 뛰쳐 가서

바닥에 누워 가면서 사진에 동영상 찍어 대고

(컴터 고장으로 이 때 사진과 동영상 다 날렸음.

이 날 정말 울고 싶었음)

 

 

초등 졸업식 날이

한국에 수술하러 갔다 뉴욕 돌아오기 전 날.

한 끝 차이로 못 간다고 우리가 어쩌다 이런 실수를 했을까 하면서

셋째 성이랑 둘이 서울에서의 마지막 밤을

하루 차이로 거길 못 가네...하면서 둘이 손잡고 슬퍼하고.

 

 

셋째 성이 한국가기 전에 애 엄마한테 미리 찔러 준 돈으로 사입은 원피스 입고

(애 입고 싶다는 걸로 새 옷 이쁜 거 졸업식에 입을거 사주라고)

공항에 마중나온 현경 양.

 

 

지 이모부 뒤에 세우고

펜스 코 앞 한 자리 당당하게 차지하고 있다

짐 들고 나오는 저를 발견하고 반가와 어쩔 줄을 몰라하던 표정.

제가 손 짓으로 이리 오라고 했어요.

펜스 사이로 샤삭 나와도 좋다고.

잽싸게 바로 뛰어 나와서 허그를 하고 뽀뽀를 하고.

 

 

 

이젠 컸다고

멋 내는 것에 관심이 올인.

(그러면서 머리는 며칠 동안 안 감아서 떡이 져서 다니고...무슨 조화인지 모르겠삼)

남자 친구도 생겼었다 없어진 듯 하고

졸업 기념으로 샌들 한 켤레 사준다 했더니 하이힐로 골랐다고

(애들 신발은 맞대요. 언니가 무슨 애들 신발을 이딴 걸 만들어 파냐고

저한테 푸념하더니 안된다고 못 사게 했다는데 제가 언니한테 그냥 사주라고 했어요.

지도 신어 봐야 하이힐의 고통을 알지.

무릎도 제대로 못 펴고 어기적 어기적 걷던 꼴이라니ㅋㅋㅋ)

둘째 언니 말로는 저 아이의 몸에 제 피가 진하게 흐르고 있다고.

이 말만 반복을 합디다.

 

 

 

저는 저대로

입을 옷이 없는 것도 아니구만

토마토 잘 키우기 위한 부가 물품들 산다고 걸어서 왕복 한 시간 반 거리 홈디포를 다녀 오면서

이것 저것 샀는데도 13불 밖에 안 들었네, 하고 좋아하다

뜬금없이 몹쓸 옷가게 앞에 마네킹 입혀 놓은 원피스 지나다 보고

정신줄 놓고 30불 짜리 새 옷 사고.

 

 

졸업하는 학생과

그녀의 어머니 머리 만져 주러 아침에 그 집 간다고 하는

제 전속 미용사 큰 언니한테

그럼 내 머리는 어쩔 거냐고 난리를 쳐대니

(그냥 간단하게 고대기로 머리 펴주는 것만 해주면 된다는데

그 간단한거 뭐하러 하냐고요.

복잡한 내 머리에 올인해야지)

 

사람들이 죄다 내 편은 없고

나더러 이상하다고.

 

 

내가 얼마나 쌈박한 원피스를 사다 놨는데

내가 이 옷을 입고 머리는 흰머리를 하고 가야 하겠느냐,

그 날 아침에 우리 집에 와서

내 머리 염색해 주고 나 올림 머리를 해 주는게 순리지

왜 어린 학생 머리는 만져 주며

만져줘 봐야 태도 안 날 학생 어머니 머리를 왜 해 주겠다는 거냐,

하고 3일을 난리를 쳤는데도

아무도 내 편이 없네...

흰 머리 염색은 다음에 하고

아침 일찍 그 집으로 오면 올림 머리는 해 줄 수 있다고 그리로 오라고.

 

 

아놔..

 

 

비굴하게 사는 건

나의 철학과 정말 안 맞는 라이프 스타일인데...

올림 머리라도 할라고

구차하게 아침 일찍 학생 집으로 갔어요.

 

 

쌈박한 원피스 입고

화장도 정성껏 하고

악세사리까지 완벽하게 코디해서 짠~ 하고 등장 했건만

내 언니라는 사람들은

한 번 쓱 쳐다 보고 아무 반응도 없고.

 

 

남편만 똥줄이 타서

사람마다 붙잡고, 저 사람 오늘 너무 예쁘지 않냐고, 일일이 물어 보고.

다들 짜증나 죽겠다는 표정으로 간신히 대꾸해 주다가

가져간 제 코디 꾸러미에서

서랍에 몇년 간 묵혀 두었던 자그마하고 앙증맞은 인조 속눈썹 챙겨간 거 꺼냈더니..

세상이 이렇게나 각박할 수가 없다...

그 차가운 비웃음...

 

 

늦잠 좀 자고

졸업식 장으로 바로 오기로 했던 큰 조카양 현장에서 만났더니,

비로서 나의 동지가 왔다!

 

 

 

오우 이모 올 킬인데?~~~~~~~~

 

 

내 말이. 어때 괜찮아?

 

 

죽여~~

 

 

고마워~~~

 

 

 

 

졸업식 끝나고

한 쪽엔 현경 양 다른 한 쪽엔 큰 조카 양하고 셋이 나란히 걷자니

큰 조카 양이 지 엄마한테 칭찬을,

엄마, 이모 머리 이쁘게 잘 했네.

 

 

현경이랑 둘이서

이모 오늘 너무 이쁘다고.

 

 

이래서 딸들은 키워 놓으면 친구가 된다는 건지..

쟤네들 다 크니까

패션을 논할 친구들이 되네요.

쟤네 엄마들 하고는 패션에 관해 말 안 섞음.

자기가 사람들 머리 좀 만진다고 심지어 내 코디에 지적질하는 큰 언니.

그 옷에 진주 목걸이 안 어울린다고.

콧방귀 꼈삼.

본인 코디나 신경쓰시지 흥~

 

 

그녀의 딸은 연신

 

 

 

이모 진짜 오늘 올 킬이야. 제일 예뻐.

 

 

계속 이러길래,

 

 

나도 그런 포부로 왔는데..

사람은 항상 겸손해야 해야 해.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왕관 쓰고 온 학부형 있던데?

 

 

허걱...뭐 왕관?? 진짜???

 

 

응. 우리 앞 쪽으로 어떤 아줌마가 왕관 큰 거 쓰고 앉아 있더라.

사진 찍고 싶었는데 못 찍었다.

이모 앞으로 분발해야겠어.

 

 

 

 

그런데...

여기서 더 어떻게 분발을 하나...

나는 왕관까지는 쓸 자신이 없는데…

 

 

현경이 아기 때는

이 집 저 집 정말 여러 집 다니다가

언니 친구의 이모님 되시는 분이 뉴욕에 사신다고

한국에 있던 친구가 자기 이모한테 물어 보고 다리를 놔줘서

한 동안 그 분이 키워 주셨는데

키운 정이라는게 정말 큰 것 같아요.

이 분이 현경이 동생 생기면서 둘은 힘에 부치시다고 그만 오실 때까지

현경이 하나일 때는 정말로 공들여 키워 주셨어요.

안 보니까 눈에 밟힌다면서 잘 크냐, 잘 있냐, 언니한테 전화 자주 하시고

어쩔 땐 보고 싶어서 눈물이 난다고 하시고

전화 좀 바꿔봐라, 목소리라도 들어 보자 그러시면서.

 

 

이 철 없는 이모는 주말에 놀러 가서 아이 황당한 헤어스타일에 경악하면서

애를 봐주는 건 좋은데 애 엄마한테 물어도 안 보고

여자애 머리를 이렇게 싹둑 잘라 놓으면 어떡하냐고

앞으로는 다시는 이렇게 하지 마시라고 말을 하라고

왜 말을 못 하냐고 언니한테 신경질 바가지로 내고.

인물을 다 망쳐 놨네 어쩌네 하면서 난리를 치고 그랬는데.

 

 

망가진 헤어 컷이야 애기가 어디 나가 사회 생활 하는 것도 아니고

놔두면 금방 자라는데

노인네가 애 인물 망치려고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앞머리가 긴 듯 하니까 답답해 보여서 당신 손으로 잘라 준 것 뿐일텐데

애 머리 자를 동안 애 답답하지 말라고 애 위해서 그런 마음으로 자르신 거고

전문가가 아니니 결과가 촌스러웠을 뿐인데

극성도 하여간 어지간히 떨었어요 제가.

베이비 시터 전전하며 컸어도 다 좋은 분들한테 사랑 받으면서 컸는데

그 때는 모르고

지금에야 그게 참으로 감사함.

 

 

저 이모님 되시는 분이 건강 문제도 그렇고 애 둘은 힘들다고 하셔서 그만 두실 때쯤 

직장 때려치기 밥 먹듯 하느라 이쁜아짐 또 다시 백수 신분이 된 것과

시기가 맞아서

제가 저 아이들 베이비 싯 반 년 정도 했더랬어요.

저 반 년 동안의 경험 이후에는

아무리 애들 키우는 엄마지만 우리는 여자니까 밖에 나갈 때는 좀 꾸미고 다녀요,

마켓 올 때 그렇게 후줄근하게 다니지 말아요,

하는 사람 있으면 입을 확 꼬매주고 싶어졌음.

 

 

에너지 넘치는 세 살 짜리 아이 상대하면서

갓난쟁이 우유 먹이고 기저귀 갈고 낮잠도 재워야 하고

하루에 한 번 정도는 가까운 공원에라도 나갔다 와야지 하면 챙길 물건이 얼마나 많은데

저 스케줄에

내 밥 챙겨 먹고 샤워 한 번 제대로 하기도 힘이 드는데

꾸미고 어쩌고

그건 대단히 부지런하면서 체력이 넘쳐나는 사람들이나 하는 거고

난 보통 사람인데다 게으르기까지 해서

세수 대충하고 머리는 질끈 묶고

그저 아는 사람이나 안 만났으면 하는 심정으로 애들 데리고 나갔었음.

 

 

저러다 언니는 아이들 베이비 시터를 다시 구했지만

사람 사는 일이 돌발 상황이라는 것이 항상 생기기 마련이라

베이비 시터가 못 오는 날은

언니가 부랴 부랴 이른 아침부터 애들 실어서 저희 집 데려다 놓고 일 가야 할 때가 종종 있었지요.

그 때도 결혼 전이었던 이쁜아짐

저것들 둘 데리고 하루 종일 씨름 하는 날은 진이 다 빠지고,

 

 

현경양은 애기 때도 봐주기가 수월 했는데

동생 녀석은 울기도 징하게 울고 엄청 힘든 아동이었어요.

업어줘도 울고, 안아줘도 울고, 우유도 싫다 하고, 예민해서 낮잠도 잘 안 자고,

내 배 위에 올려 놓아야만 잠을 자니

애 배 위에 올려 놓고 제가 뭘 해요.

저 아동 잘 동안 저는 아무 것도 못하고

아무리 조심스럽게 내려 놔도 내려 놓으면 바로 깨서 울고.

저럴 때는 딱 심정이, 아 돌아 버리겠다…였어요.

애기 물론 이쁘죠. 그런데 저런 상황에서는 ‘사랑스럽기만한’ 아기 아니예요.

‘우울증’을 부르는 아기예요. 솔직한 심정이 그랬습니다.

누나는 심심해서 언제 이모가 나랑 놀아주나…이러면서 구석에서 혼자 놀고 있고.

 

 

그 당시 남친이었던 남편이 학교 마치고 오후에 제 집에 오면

그 때 저는 한숨 돌렸어요.

남편이 현경이랑 놀아 줄 수 있으니까.

 

 

애기 잠 들라고 해. 나도 잠깐 잘께.

 

 

하고 나서 낮잠 자고 일어 났더니

영어 못하는 한국인 아동 현경 양과

한국어 못하는 미국인 어른 남친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더군요.

 

 

우리 하는 말하고 이모 남자친구가 하는 말하고 다르다는 것 까지는 개념이 생긴 현경 양,

코메디 프로에서 영어를 쏼라쏼라 하는게

그냥 생긴게 아니고

진짜로 쟤가 남편한테 그러고 있더라고요.

 

 

저한테 하는 한국말을 무조건 혀를 굴려서 하면서

의사소통을 시도하고 있고

남편은 도대체 못 알아 듣겠으니 난감해 하고 있고,

싱크대에 남편이 거진 쓰러질 모양으로 간신히 기대 서 있고

코딱지 만한 네 살 짜리 현경양이 너무 너무 화가 나서 막 쏘아 부치고 있는 거예요.

두 팔을 들었다 놨다 거진 삿대질까지 할 기세로.

 

 

배 고파ㄹ 밥 줘ㄹ

 

 

끝에 혀 굴리면서.

 

 

남편이 너무나 난처한 표정으로

 

 

현경, 아 임 쏘리. 아 돈 노 왓 유 원트. 현경 아 임 쏘리. 아 임 쏘리..

 

 

쩔쩔 매고 있고.

 

 

거실로 나온 저를 보고 현경양 얼굴이 이제 됐다, 이런 표정으로,

그러나 너무 화가나서

씩씩 거리면서 저한테 와가지고 하는 말,

 

 

 

이모!!! 쟤 바보야!!!!!!!!

 

 

 

저 진짜 웃겨서 죽을 뻔 했어요.

 

애 밥 줬어요 얼른.

밥 먹으면서도 혀를 끌끌 차더군요.

어떻게 어른이 애가 배 고프다는 말도 못 알아 듣냐고 하면서.

 

 

그 때 쯤에 현경이가 그린 그림이예요.

종이랑 펜 좀 달라고 하더니 저런 그림을 그렸길래

그림 속 제 모습이 밝아 보여서

제가 그게 좀 의외여서 물어 봤어요.

 

 

이모는 우리 보면 맨날 웃잖아.

 

 

첫번 째 그림은

애기인 동생은 안고 조금 큰 자기는 손을 잡고 있는 이모의 모습이고

두번 째 그림엔 멋내는 이모 모습의 디테일도 담겨 있습니다.

제가 귀걸이 한 거래요.

 

 

나는 저 때도 맨날 맨날 인생이 우울하고 신경질 만땅에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는데

저 아이 눈에 비친 제 모습은

활짝 웃는 모습이라 많이 당황했던 기억.

 

 

내 집에 와서 저런 거나 그리던 것이 벌써 중학교 졸업하고 고등학생이 된다니..

 

 

어린 아기 키우시는 분들

조금만 더 힘내세요.

다 크고 나니까 이렇게 아쉬울 수가 없어요.

조렇게 이쁜 짓 할 때 왜 더 물고 빨고 못했는지.

애는 크고 이모는 늙고 세월을 이렇게 가고..

 

 

 

저거 아까워서 나중에 시집은 어케 보내나...ㅋㅋㅋㅋㅋㅋㅋㅋ

이렇게 보고만 있어도 아까운데...

 

 

애한테 벌벌 떤다고 그간 숱하게 욕을 먹었어도

나는 오늘도 굴하지 않고

내 옆에 껌딱지처럼 붙어 누워 있는 이 아이 더울까봐

팔 아파도 부채질을 해 줍니다.

이마에 머리도 쓸어 주고

궁댕이도 두드려 주면서

어디서 이렇게 이쁜게 나왔나...감탄하면서

음식 주문 해달라고 넣어 준 광고 메뉴판으로

부채질을 해 줍니다.

 

 

집에선 나 마실 물도 안 떠다 먹는 공주짓만 하는 마누라가

조카양 더울까봐 부채질 열심히 해주는 모습에

남편이 사진도 찍습니다.

 

 

나 더 늙으면 얘가 언제 내 옆자리 붙어 이렇게 한가하게 누워 있겠냐 싶어

예전에 물고 빨고 더 못한 것 보상하듯이

부채질 해 줬어요.

주어진 이 순간을 최대한 즐기려고.

 

 

나 결혼 하던 날

자기가 크면 폴하고 결혼 하려고 했는데

(불과 일년 전에는 쟤 바보라고 난리치던 같은 남자)

이모가 먼저 해버렸다고 분개하던 다섯 살 짜리가

고등학생 됩니다.

 

 

 

애들 크는게 이렇게 시원 섭섭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