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혼을 안 하는 이유 (2)

그녀는 당당하게 마트 점장을 찾아서 내 친구가 이 곳에서 일하고 싶어한다며 나를 소개했다. 그러자 마중물이 부어진 것처럼 내 입에서 일본어가 쏟아져 나왔다. 다음 날 이력서를 들고 찾아간 사무실에서 드디어 일자리를 얻었다. 이후 귀국 전까지 그곳에서 돈과 추억을 쌓았다. 다 그녀 덕택이었다. 계획대로 그녀는 출국 15일 전에 일을 그만두고 일본 각지로 여행을 다녔다. 어깨에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다녔다. 그 뿐 아니었다. 그녀는 내가 자고 있으면 방에 불을 켜지 않은 채 뒤꿈치를 들고 다녔고 내가 좋은 걸 골라 과일을 건네면 그것을 마다하고 제일 작거나 못난 것을 찾아 정말 맛있게 먹었다. 헤어질 때는 소중히 들고 다니던, 내가 예쁘다고 칭찬했던 가죽가방을 선물로 주고 떠났다. 그녀의 다음 행선지는 나로서는 아직도 못 가본 싱가포르였다.

네 번째 룸메이트는 나보다 몇 주 늦게 기숙사에 들어온, 내 세번째 룸메이트와도 가깝게 지내던 대만인이었다. 베스트 프렌드와 함께 어학연수를 하러 일본에 왔는데 어느 날 내 방 문을 두드리더니 룸메이트가 되도 되겠냐고 물었다. 좁은 방이어서 혼자 쓰면 좋았지만 그녀에게 안 된다는 말을 할 권리는 없었다. 그녀는 지금 친구와 함께 방을 쓰기가 곤란 해졌다고 말했다.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아서 그러라고 했다. 그녀는 일본어가 서툴렀고 주로 밤에 들어와서 조용히 잠만 잤다. 정말 함께 한 시간이 거의 없던, 따로 또 같이 한 룸메이트였다.

그리고 남편은 내 생애 다섯 번째 룸메이트가 되었다. 결혼식을 통해 같이 살겠다고 만인에게 선포한 점이 다르지만 형식적으로 룸메이트와 다를 바 없었다. 처음에 남편은 아주아주 올빼미형이면서 불규칙한 생활의 달인이었다. 나는 규칙적이고 일관된 패턴을 좋아해서 그럼 각자의 방식대로 살면 되겠다고 생각했지만 남편은 서로의 한 다리씩을 바짝 묶고 달리는 이인삼각 달리기를 원했다. 그래서인지 언제부턴가 나는 올빼미로 생활하기 시작했다. 남편은 결혼 초기, 첫번째 룸메이트처럼 나랑 생활패턴이 달랐고 두번째 룸메이트처럼 항상 내가 지은 밥을 먹어 치우고 세번째 룸메이트처럼 내 인생에 많은 도움을 주고 네번째 룸메이트처럼 혼자가 편한 내 삶에 끼어들었다. 우리는 비슷한 면도 있고 다른 면도 있었다. 예를 들면, 우리는 언제부턴가 서로에게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이것은 비슷한 면이었다. 단 짜증의 내용이 달랐다. 내 것은 남편의 둔한 판단(생활 바보)을 참아야 하는 짜증이고 남편 것은 내 짜증을 참다가 나는 짜증이었다. 나는 혼자라면 팍팍 진행될 일이 남편으로 인해 늦어지면서 뻔한 시행착오를 겪을 때 왕짜증이 났다. 남편은 (나와 시시비비에 있어 이견이 있을 때) 열 번에 한두 번은 맞는 자신의 주장이 선뜻 안 받아들여질 때 왕짜증이 났을 것이다. 부부는 엄연히 분리된 뇌에서 회로가 다르게 작동하는 독립된 개체인데 다리를 묶고 함께 달려야 하니(부부의 운명이랄까) 이런 짜증이 발생한다. 그런데 행동과 판단은 다르지만 우리 사이에 윤활유 역할을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존중과 인내와 책임이었다. 열 번 중에 한번만 짜증을 내는 것도 그런 일환이었다. 우리 사이엔 사랑도 있겠지만 이혼을 결심하는 많은 커플에게도 애초에 사랑이 있었을 터이므로 열외로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실은 인내와 책임과 존중을 통해 서로 비슷한 성향으로 변화했다는 점이다.

우리는 흔히 이혼한 사람은 그 사람에게 무언가 결점이 있을 거라는 편견을 가지지만 두 룸메이트가 함께 잘 지내지 못 하는 이유는 서로 이질적이기 때문이다. 두 다리를 꽁꽁 묶어서 이인삼각 달리기를 하려는 마음이 부족한 것은 그 이질감 때문이다. 잘 살고 있는 부부는 내외가 다 성격과 인격이 훌륭하고 온전해서가 아니다. 둘 사이에 놓인 존중과 인내와 책임에 대한 중량과 기대치가 비등비등해서 이질감의 극대화가 안 생기는 것이다(일방적으로 한쪽이 참는 경우는 열외로 한다). 이상한 사람도 잘 맞는 사람을 만나면 잘 산다.

나는 한번 사는 인생,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고 늘 생각한다. 그래서 같이 있을 때 당신을 불행하게 만드는 사람과 함께 살 필요가 없다고 늘 주장한다. 생활패턴이 다른데 배려와 사랑도 없던 첫번째 룸메이트, 사고방식이 너무 달랐던 두번째 룸메이트 같은 타입과 결혼했다면 나는 이혼했을 것이다. 내가 이혼하지 않는 이유는 남편과 비교적 코드가 맞고 존중, 인내, 책임에 대한 서로의 기대에 부응하며 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주위의 시선, 경제적 궁핍, 외로움, 자식에게 미안함… 이혼을 꺼리게 하는 수만가지 이유에 견주어 영혼을 갉아먹는 배우자가 있다면 그 중에 감내할 수 있는 것을 껴안고 사는 게 인생이 아닐까, 하는... 그 선택은 내가 하는 것이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