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문 멀리 미리 도착한 엄마의 모습을 보고 얼마나 당황했는지...

하얀 저고리에 검정색 치마의 한복을 입고 엄마 생각엔 예쁘다고 여긴 구두를 신고 가방을 들고 서 있는데...

왜 하필 한복을 입었을까, 그것도 색이 없는 한복을...학교에 온다면 예쁜 정장 한벌 사서 입지...그 때부터 이유없이 나는 엄마를 보고 퉁퉁거리기 시작했고 회의 장소만 겨우 알려주고 교실로 들어갔다. 

친구들은 인사를 하고 난리를 떠는데 난 엄마의 모습이 너무 부끄러워 친구들의 떠드는 모습마저 보기가 싫었다.

니들 엄마가 그렇게 하고 왔으면 너희들은 과연 기분이 어떨지 생각해 보라고 마음 속으로 되씹으며 하루를 보냈다.

고등학교 고학년때 마음 속으로 괜찮아하던 교회 오빠와 도서관에 공부하러 간 적이 있었다. 

그땐 정독 도서관이나 4.19 도서관, 남산 도서관에 학교가 없는 날, 친구들과 함께 가곤 했었다. 

물론 교회 오빠와 단둘이 간 것은 아니지만 버스를 탔는데 우연히 다른 친구들은 앞쪽에 앉았고 나와 이 오빠는 맨 뒷자리에 나는 창문쪽, 오빠는 내 옆에 앉았다.

차가 잠시 정차해 다른 사람들을 태우는 동안 난 설레는 마음으로 오빠를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밖을 보고 있는데 나의 아버지가 집에서 입던 옷차림으로 정류장에 서 있다가 나를 발견한 것이다. 

순간 난 얼굴을 오빠를 향해 돌렸고 아버지는 나를 향해 손을 흔들며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 교회 오빠는 벌떡 일어나 인사를 했고 나는 하는 수없이 손을 흔들기가 무섭게 버스는 출발했고 초라한 아버지의 모습이 부끄러워 오빠를 하루종일 피하고 말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 철없는 짓을 두고두고 후회하지만 한편으로 나의 정체성을 돌아보게 된다. 나의 환경과 처지와 맞지 않게 감정의 허영과 사치로 살았던 시절, 대학은 서울 대학교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그 때. 나에겐 "나"라는 정체성이 없어서 감정의 혼란을 겪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살면서 난 그 때의 엄마의 나이가 되어있고 내 남편은 내 아이들에게 그 때의 나의 아버지의 나이가 되어있다. 

다행히 아직은 내 아이들이 그 때 내가 나의 엄마에게서 느꼈던 그 창피함을 느끼는 것을 보지 못했고 가끔은 추접하게 엄마의 존재와 아버지의 존재에 대해 아이들에게 묻곤 한다. 그러면서 오래 전에 울 부모가 나에게 하지 않았던 말을 종종 하곤한다.

어떤 상황에도 불구하고 너희는 나의 가장 소중한 존재고 늘 사랑한단다...스스로 아이들이 다른 생각을 못하도록 도장을 찍곤 한다.

미국에 살면서 정말 많은 순간에 소수 민족의 서러움을 느낄 때가 있다. 그것이 인종차별이든 그저 사람의 관계이든 난 나란 존재의 다름을 다시한번 배운다. 고집이 아니라 객기라고 불리는 감정이 아니라 나의 현실과 존재를 다시한번 생각한다. 그러다보니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가끔은 외국인들보다 같은 민족에게 차별받는 느낌이 더 들곤하는 것은 나만의 생각인지 모르겠다.

한국 사람들 앞에서 영어로 이야기할 때가 있는데 외국인들과는 소통에 문제가 없는데 유독 한국인들은 영어 발음이 그게 뭐냐고 지적을 한다.

모임에 가면 나의 소형자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차는 왜 그런 차를 타냐고 비웃는 듯한 말을 하곤한다.

친구들을 만나면 명품 가방을 들지 않은 나에게 위 아래 훑는 친구들이 있다. 명품 선물을 안한 내 아이들까지 비난하면서.

다만 아직도 건강하게 매일 눈을 흘기지만 남편과 이혼하지 않고 살고 있고 내 일이 있어 매일이 바쁘고 

아이들이 스스로 제 할 일 잘하고 있다는 것 말고는 그들이 원하는 "보여지는"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러나 난 불편함도 부끄러움도 없는 것이 잘못인가?

다시한번 혼란기를 거쳐 살면서 내 부모가 나에게 심어준 정체성을 다시한번 감사하게 된다. 

모든 것에 블구하고 다행히 나는 나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