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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ical Face Reader

마흔 한 번째, 철 드는 관상과 철 들지 않는 관상 이야기 Hunkyung Park (ibis0130) 2019-8-22  16:17:01
Medical Face Reader(의학관상술사) - 41. 철드는 관상과 철들지 않는 관상 이야기

 
 6살 남짓, 누가 봐도 꼬꼬마 아이로 보이는 아이가 조용히 필자에게 다가와 도란 도란 이야기를 이어간 적이 있다. 필자가 임상에서 소아 치료를 하던 시절, 선천적 하지마비로 다리를 제대로 쓰지 못 하는 아이였다. 늘 친구처럼 대해주는 필자에게 한참의 시간이 지나서 마음을 열어주는 조용하고 차분한 아이였다. 그 날도 어김없이 치료실에서 치료를 하는데, 얼굴이 평소보다 많이 어두워보였다. 필자가 오늘 혹시 마음 아픈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자 자꾸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돌린다. 장난감 망치를 필자의 가슴에 때리는 시늉을 하며 아이쿠 ~ 아파라~ 선생님 마음이 너무 아프네! 그러면서 너스레를 떨자. 조용히 필자를 바라보다가 이야기를 꺼낸다. 절대로 엄마에게 아무말도 하지 말아달라고 신신당부를 3번을 한다. 그래서 약속 도장을 콩콩 찍고 나니, 조용 조용 이야기를 한다. 어젯 밤에 엄마가 이모랑 통화하며 울었다고 한다. 자기가 이렇게 평생 못 걷고 살 것을 걱정해서 엄마가 사정 설명을 이모에게 하다가 엄마가 자기 가슴을 치며 숨 죽여서 울었는데 자다가 자긴 그 이야기를 다 들었다고 했다. 

 수술비, 치료비, 여기 저기 유명하다는 병원 돌아다니는 동안 가세가 많이 기울었다는 걸 6살이 알고 있었다. 아빠가 밤낮으로 일 하지만, 자기에게 너무 많은 돈이 들어서 방법이 없다고 했다. 자긴 병원 안다녀도 되고, 어린이 집, 학교 나중에 그런 곳 모두 안가도 상관 없는데 엄마는 자기에게 그걸 다 시키고 싶어서 늘 욕심이란다. 6살 아이가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하나? 싶어서 필자도 눈이랑 코가 빨갛게 되어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아이가 자꾸 선생님도 울면 안된다고, 필자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차마 그렇게 어른스럽게 구는 아이 앞에서 계속 눈물 지을 수가 없어서 그냥 아이를 들어 품에 꼭 안아줬다. 자긴 다리는 못 쓰지만, 똑똑한 어린이라 머리쓰는 일 하며 살면 된단다. 한 동안 머리를 커다란 망치로 맞은 것 처럼 필자는 몇 일이고 마음이 아팠다. 

 6살이 알기엔 너무 힘들고, 고된 세상을 벌써 알아버렸다. 철 들지 말라고 하고 싶었다. 무겁고 힘든데 왜 벌써 부터 철이 들어서 혼자 그 마음 다 가지고 가려고 하냐고 필자가 타일렀다. 그렇게 살면, 6살만 볼 수 있는 세상을 못 보고 어른이 될텐데 그럼 선생님 마음이 참 아플 것 같다고 하니까. 아이가 그냥 빙그레 웃는다. 6살은 장난감 갖고 놀고 싶으면, 놀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다. 사탕이 먹고 싶으면 먹고 싶다고 하는 것이다. 10살 넘어가면 이제 눈치 보여서 못 한다. 니가 벌써 어른 같이 철들어서 세상 볼 수 있다는 것은 선생님하고 단둘이 비밀로만 하고, 밖에 나가서는 6살 처럼 행동하고 말하라고 조언해 줬다. 이러다가 니 마음 속에 병 생기면 그건 나중에 더 힘들지도 모른다고...그렇지만 어린 나이에 이런 걸 다 생각하는 네 모습에 선생님도 부끄러워 진다니까. 아이가 해맑게 웃으며 쵸콜렛 먹고 싶다고 이야기 해서 덮석 손에 쥐어준 적이 있다. 

 철 드는 사람에게 기한은 따로 없다. 필자가 만난 6살 아이 처럼 굳이 안 들어도 되는 나이에 무언가 깨닫고 철을 드는 사람이 있고, 70세. 80세 넘어도 내 마음대로 내 하고 싶은대로 하고 살겠노라고 철 안드는 사람도 있다. 그 무거운 것을 도대체 왜 들어야 하냐며 허허허 웃는 사람도 있다. 가지각색 다양하다. 이제 곧 50을 바라보는 사람이지만, 장난감 자동차가 너무 좋을 수 도 있고, 60세가 되고나니 빨간 스포츠카가 타고 싶을 수 있다. 그냥 사람 마다 다양하다. 평생 들지 않아도 되고, 들고 있다가 힘들면 잠시 내려놓아도 되고, 들어야 할 순간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어서 나도 모르게 손에 들게 될 수도 있다. 그게 인생에서 이야기하는 철 같다. 

 필자도 철부지 같던 시절이 있었다. 사실 요즘도 종종 도저히 힘들어서 들고 싶지 않은 분야에서는 그냥 다 놓아버린다. 매 순간 철들고 살기엔 버겁고 힘든 부분이 많아서, 남편에게 그냥 기대고 싶으면 다 던져버리고 남편 등 뒤에 숨어버린다. 어떨 때는 참 편하기도 하고 홀가분 하기도 하다. 그런데 도저히 안되겠다는 순간엔 묵묵히 들고 버틴다. 이 모습으론 안되겠다 싶을 때, 도망갈 곳이 더 이상 없을 때, 나 아니면 아무도 못 할 것 같을 때는 필자도 어쩔 수 없다. 

 그런데 관상 공부 하다보니 자꾸 공부하려고 책 펼때 마다, 인생을 가르쳐 주는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할 때마다, 새로운 무언가를 알게 될 때 마다 필자가 살아온 많은 삶에 대해 자꾸 채찍으로 온 몸을 맞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왜? 그 때는 몰랐지? 왜 저 때는 그런 생각만 들었지? 왜? 저 부분까지 알지 못 했지? 처음 이 공부 시작할 때만 해도 무슨 마법 부리는 것 처럼 얼굴만 보고도 사람과 세상을 알면 대단히 즐겁고 행복하기만 할 줄 알았는데 요즘엔 차라리 필자가 틀렸으면 좋겠다는 세상이 보일 때마다 쓰리고 아프다. 필자가 아끼는 사람이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가는데, 차마 필자 힘으로 구해낼 수 없는 순간이 오면 몇 일이고 마음이 아프다. 마음 속으로 제발 그 불구덩이 안에 들어가도 당신만은 살아나오라고 기도한다. 필자의 해석에 오류라도 생겨서 아예 그 불구덩이 생기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철 든 다는 것은 생각보다 아주 즐거운 일은 아닌 듯 싶다. 삶에 재미날 일도 사라지고, 근심 걱정은 늘어가고, 보고싶은 않은 것 까지 보이기 시작해서 자꾸 조심하게 되고 자꾸 다시 생각하게 된다. 점점 더 많은 것이 복잡해 지고, 무엇이든 쉬운 것이 없어진다. 고행을 하고 있는 종교인처럼, 한 걸음 한 걸음이 쉽지 않아진다. 물론, 그 고행 끝엔 아무도 모르는 행복이나 혹은 깨달음이 있을 수 있겠으나 그 길을 걸어가는 동안은 살얼음 판을 걷듯 쉽지 않은 것 같다. 

 철 들지 않은 사람들이 갖는 특유의 유쾌함과 행복감은 주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든다. 종종 주변에서 갑갑함을 느끼기도 하고 대신 책임져줘야 하는 일들이 생기기도 하지만, 본인 스스로는 누구보다 행복에 가깝다. 내 감정과 내 기분에 충실하니 고민도 적고, 매번 솔직할 수 있고, 복잡미묘한 것을 예민하게 관찰하지 않아도 된다. 물론, 나도 모르게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순간들은 힘들지 모르나, 또 그 순간을 넘기는 지기가 각자의 요령으로 생기기 나름인 것 같다. 

 사람 공부 하다보면, 어쩔 수 없이 철을 들어야 하는 것 같다. 이치를 알고, 사람을 보려면 원치 않아도 걸어야 할 길이 있는 것 같다. 필자가 강하게 거부하며 보지 않으려고 했던 세상이 있었는데 고개 한 번 돌리지 못 하고, 눈 한 번 깜빡이지 못 하고 정면으로 보게 한다. 생각보다 아픔도 많고 어려움이 많다는 걸 최근에야 느꼈다. 그 동안은 호기심의 샘이 열리는 기분으로, 쉬지 않고 '열려라 참깨!'만 외치며 신나게 돌진 했는데, 요즘엔 그 동안 걸어온 길을 처음부터 다시 걸어와야 하나? 혹시 필자가 빼놓고 보지 못 한 것은 없는지? 안 보고 지나친 것은 없는지 자꾸 신경이 쓰여서 뒤 돌아보게 되고, 다시 곱씹어 고민하게 된다. 이 공부 아직 20년도 하지 못 했는데...앞으로 걸어야 할 30년의 시간이 겁이 나기 시작한다. 

 더하기 빼기 할 때만 해도, 나름 재미나고 신났는데 미분 적분, 수학의 이론을 분석하려고 하니 삶의 무게가 감히 느껴져서 걱정이 밀려온다. 그런데 몇 날 몇 일은 끙끙 거리고 고민하다가 풀어낸 문제의 정답을 확인해서 맞출때 나오는 그 '희열'이 이 무게감을 이기려고 해서 자꾸 힘든데 뒤돌아가서 다시 기웃기웃 거리기 시작했다. 필자가 조금만 더 빨리 철이 들었거나, 조금만 더 많이 세상의 무게를 알았더라면 힘든 상황과 문제를 덜 만들었을 수도 있었을텐데..라는 후회를 남기며 오늘도 책장을 넘긴다. 

 철 드는 사람들은 인력으로 못 말린다. 본인이 겪고 느낀 세상의 무게 때문에 어쩔 수 없이라도 철이 든다. 어릴 땐 분명 마트 바닥에 누워 장난감 사달라고 소리를 고래 고래 지르면서 울 수 있었는데, 9살이 되니까 학교도 다니고 동생들 보기 낯 부끄러워서 차마 그러지 못 하고 입술 꽉 깨물고 지나가게 되는 아이처럼 말이다. 세상이 어지러워지니 누군가는 어렵고 힘든 세상 굳이 철까지 들면서 살 생각이 없다고 다 팽개치고 모른 척 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늘어나고 있다. 이 와중에 어지러운 세상의 문제가 아무래도 내 탓인가 보라며 깨달음을 얻고, 철 들어보겠다고 여기저기 삶의 이치를 찾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무엇이 정답인지 아직 필자는 모르겠다. 버거운데 들어야 하는지, 필요하지만 버려야 하는지. 그런데 자꾸 사람 공부하고 삶을 지켜보다 보니 힘들어도 들긴 들어야 하나보다 요즘엔 그 생각이 든다. 필자가 누군가에게 철 들 수 있는 방향을 일러줄 수 있다면 참 감사한 것이고, 이걸 통해 누군가가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그것은 더 감사한 일이란 걸 자주 느끼는 요즘이다. 아직 필자가 걸어온 길 보다 앞으로 걸어야 할 길이 너무 길고 험한 것 같아서 겁도 나고 걱정도 되지만, 지금이라도 이 길을 깨닫고 걸어올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기분 좋게 힘을 실어 걸어가는 중이다. 힘들게 산을 타지만, 정상에 올라가면 높고 넓은 세상을 볼 수 있듯이 견뎌야 볼 수 있는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꾸준히 올라가는 것 만이 정답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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