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막연히 ‘작가’가 하고 싶었다. 글을 잘 쓰는 것은 아니지만, ‘활자중독’처럼 끝없이 글 읽는 것이 좋았다. 대입 진학 시점. 조용히 ‘국문학과’에 진학하고 싶은 소망을 이야기 했다가 ‘굶어죽고 싶어서 그러는거야?!’라는 친구의 현실적인 조언에 충격을 받고(아마 내 글쓰기 실력과 모든 능력이 다 부족했기에 그 조언에 더 큰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먹고 사는데 절실히 필요하다는 ‘재주’를 찾아 남들처럼 보건계열로 전공을 선택했다.

그때 우연히 아버지가 슬쩍 권해주셨다.

‘ 사람 보는 일을 할 건데...관상 공부를 시작해 보는 것 어떻겠니?

  나름 수 많은 통계와 다년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학문이라는 점과 “얼굴만 보고 상대방을 알 수 있다”는 작은 환상에 취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공부법인 ‘독학’으로 관상 관련 책들을 보며 공부를 시작했다. 처음엔. 도통 이 책들이 내게 무엇을 말해주고 싶은 것인지 가슴이 답답할 지경이었다. ‘용맹스러운 기개, 넓고 광활한 이마, 대단히 강해 보이는 턱 등등....’소설로 읽으면 재미날 수 있겠으나...도무지 관상 책에 나와 있는 설명들은 허공에 떠 있는 구름 같았다.

그래서 그림과 함께 있는 관상 책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그림을 보면 좀 더 나아질 것이란 내 생각은...착각이었다는 걸 책 몇 장을 넘기고 알 수 있었다. 대략 짐작은 할 수 있었지만, 내 주위엔 관상 책에 나와 있는 ‘쓸개 코’라던가 ‘독수리의 날카로운 눈빛’이라든가...그 그림에 절묘한 얼굴을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 같았다. 동양 철학 자체가 워낙 인문학적이고 심오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책을 보면 볼수록 난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단순히 관상책으로는 도저히 사람을 알 수 없겠다는 작은 판단이 설 즈음에 드디어 대학에서 전공 공부가 시작되었다. 재활치료를 배우게 된 내 전공에서 해부학, 생리학, 병리학, 심리학, 정신의학, 진단의학 등등 다양한 양방 과목들이 정신없이 정보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공부가 본격화되면서 어두운 안개 속에만 있었던 내 관상 공부에 조금씩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세포 기전에 이런 문제가 생기면, 저런 질병이 생기고, 그럼 사람의 체형과 얼굴, 행동이 이렇게 변하겠구나. 비엔나 소세지가 꼬리에 꼬리를 물 듯 여기 저기 흩어져있던 내용들이 서로 연결되기 시작했다. 머릿속에 쌓아놓듯이 읽어가던 책들의 내용이 트랜스포머 로봇처럼 변신하고 합체를 하기 시작했다.

공부를 약 10년 정도 했을 무렵, 어느새 나는 병원에서 수 백명의 환자들을 만났고, 박사과정까지 시작했다. 세포를 하나하나 현미경으로 지켜보는 기초의학을 공부하며, 관상학의 체계는 점점 더 견고해 지기 시작했다.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는 동안에도 머리 속엔 온통 ‘사람을 보기만 하고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였다. 학생들에게도 효율적으로 환자를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수업 중에도 끊임없이 강조하기 시작했다.

환자들을 치료하는 동안 특히 말 못 하는 어린 아가들이 오면, 그 아이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몸 상태가 어떤지 책 속에 설명된 글처럼 명확히 알고 싶었다. 오랫동안 통증으로 고생했다는 환자들 역시 어떤 상황으로 인해 지금의 위험한 상황에 이르게 되었는지 격하게 알고 싶었다. 무엇하나 꽂히면 정답을 찾을 때까지 매달리는 성격이라 환자를 분석하는 다양한 기법부터 세포, 뇌, 심리, 행동 등까지 사람에 대해 답을 찾는 책이라면 열심히 매달리며 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지금은 사람을 보기만 해도 질병을 알 수 있다는 관상학의 진수 ‘한의학’ 공부까지 새롭게 시작했다. 아마도 필자는 공부를 평생 해야 하는 아주 강한 기세를 갖고 태어난 것은 아닌지 스스로 반문하며, 오늘도 책을 펼친다.(스스로가 똑똑하지 않은데 공부를 계속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길임을 알기에...)

그렇게 보낸 세월이 헛되지 않았는지 어느 날부터 내게 사람들이 찾아왔다

‘선생님 소문 듣고 왔어요~~’

다들 심장을 졸이며 내 앞에 다소곳이 앉는다. 어떤 이는 소리 내어 엉엉 울고 가기도 했고, 어떤 이는 말 없이 눈물만 줄줄 흘리다 가기도 했고, 어떤 이는 심장을 꼭 부여잡고 눈이 커지기도 했고, 어떤 이는 내 앞에서 발가벗고 있는 것 같다며 얼굴을 붉히기도 했다. 어떤 이는 고맙다는 말을 수 없이 되풀이하기도 했다. 어떤 이는 일부러 나를 피하기도 했다. 속내를 들키지 않으려고...

아마도 나와 맞는 사람들이 맞지 않았던 사람들 보다 더 많았으려니 생각했다. 내가 물론 모두 맞지도 모두 틀리지도 않았을지 모르나 내 앞에서 많은 고민과 시름을 내려놓고 가는 이들을 보면서 내가 공부하며 깨닫게 된 내용들과 사람들의 사연, 사람들을 볼 때 느끼는 나의 감정 등등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어차피 관상을 보는 법에 관련된 책이나 인터넷 글은 수 없이 보았을 사람들에게 알아듣기도 어려운 기법을 다시 설명해주는 불편함을 선사하기 보다는 알기 쉽게 작은 정보들과 사연들, 그리고 내가 겪는 감정을 소개해주면 어떨까? 라는 작은 의문에서 이 칼럼을 시작해 보고자 한다.

차후 이 칼럼이 필자의 염원처럼 자리를 잘 잡게 되면, 현대 의학으로 이를 증명할 수 있는 연구를 시행하여 많은 사람들이 쉽게 알 수 있는 내용을 바탕으로 한 ‘Medical face reader ( 의학 관상술사 ) 되는 법’에 대한 책을 저술하고 싶은 꿈을 갖고 작은 용기를 내어 문을 두드려본다.

‘똑똑똑.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