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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iley의 뜨개공방

맞지않는 신발 hey kyung lee (paseoka) 2022-1-16  00:28:05
딸아이 나이키 운동화를 사면서 내것까지 같이 주문을 해봤다. 그런데 온라인으로 뭘 사는게 싫은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신어보지 않고, 눈으로 직접 보지 않고, 주문을 했기에 애매모호한 물건이 온다는것이다. 모양자체가 사진과는 많이 틀려서 썩 맘에 들지도 않고, 딱맞다고 하기엔 좀 불편하고 그렇다고 안맞다하기엔 그렇고, 그런 애매모호한 물건이 온적이 나에게는 그동안 거의 99% 였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라인으로 주문을 한데에는 나름 이유가 있었다. 블랙 프라이데이에 샤핑을 나가기가 싫어서 사이버 먼데이 샤핑을 했기때문이다. 울며 겨자먹기로 한두번 신고나갔다가 나는 두번을 다 발톱이 빠지게 아픈경험을 하고나서야 나보다 발이 좀 작은 동생에게 줘버렸다.동생은 이게 웬떡이냐고.. 일하러 나갈때 신어야겠다며… 내가 보기엔 동생에게는 좀 커보였지만… 공짜는 소도 잡아먹는다 하지 않았던가…! 암튼 이미 신어서 리턴할수도 없고 동생이라도 신어주겠다고하니 얼마나 다행인가! 내발에 맞지 않는 신발은 많은걸 생각나게 했다. 그동안 난 내발에 맞지않는것들을 얼마나 가지려고 애썼던가… 발에 맞지 않아서 발톱이 빠지게 아파도 그동안 참아온게 억울해서 내지는 그신발이 버리기 아까워서 계속 그고통을 감수해야했던 일이 얼마나 많았던가… 생각해보았다. 결국 내게 상처만이 돌아왔던 일들… 가장 먼저 생각나는것하나를 꼽자면 당연히 “이민생활”이다. 나는 외국생활이 나에게 맞지않는다고 생각한다. 발톱이 빠지고 새로나고 또 빠지고 새로나기를 수십번 견뎌냈지만, 이민생활이라는 운동화는 나에게 죽을때까지 맞지않는 신발인듯하다. 나는 이민을 와서 별의별일들을 다 겪어내야만 했었다. 십대때 부모님의 손에 끌려 파라과이라는 곳으로 이민을 가서 그어린 나이에 가족을 책임지겠다는 신념하나로 살기시작했고, 영주권을 받기위해 또다시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갔지만, 거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나에게는… 이작은 어깨에는 온집안을 일으켜세워야겠다는 의무감이나 책임감 말고는 다른짐은 없었다. 아무도 내게 강요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 도대체 왜! 내가 그렇게 어린나이에 무거운 짐을 지고 힘들게 살았어야 했는지, 지금도 도무지 이해가 안가지만 이제는 그런 생각을 안하려고 무진장 노력중이다. 잃어버린 내 청춘! 하지만, 지난과거는 과거일뿐.. 이제는 현실에 만족하고 미래의 희망을 바라보고 살아야하겠다. 그래서 이제라도 나는 한국행을 작정하고 가는것이다. 비록 갔다가 딸아이 때문에 금방 다시 돌아온다 할지라도 나는 언젠가는 꼭 고국으로 돌아갈생각이다. 인구절벽 나라 한국. 이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살아질 위기에 놓인 나라가 바로 한국이라지만, 내가 사는 동안엔 그런일이 일어나지 않을것 아닌가…? 내발에 맞는 운동화… 발톱이 더이상 아프지 않는 그런 신발을 나는 기필코 찾아갈것이다. 나는 삼십대 후반에 쓸개를 떼어내야만 했다. 바로 이민을 와서 고기를 너무 많이 먹은탓이다. 체질적으로 채식을 해야 하는 내체질을 거슬러서 나는 오랜세월 고기를 너무 즐겼었다. 하지만 이젠 고기가 들어간 국도 자제할정도로 고기를 예전처럼 즐기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비건으로 살생각은 없다. 그냥 예전처럼 무식하게 육류를 너무 많이 즐기지는 않고있을뿐이다. 내가 만일 이민을 안오고 한국에 살았다면… 아직도 쓸개를 제거하지않고 가지고 살고 있지 않을까 싶다. 아르헨티나는 소고기가 돼지고기보다도 쌌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그당시엔 그랬다. 그리고 파라과이 소와는 다르게 육질이 부드러워 입에서 살살 녹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고기가 치명적이었던 것이다. 쓸개를 떼어낼당시에는 미국에 살고 있었다. 그날은 아이들과 함께 Cheesecake Factory 라는 곳에서 저녁을 먹고 들어와 잠을 자고 있었다. 갑자기 내 배가 철판이 되어버린것같은 느낌으로 숨을 제대로 쉴수 없을정도로 나의 복부가 굳어가는것을 참아야했다. 결국, 새벽 세시경 굿사마리탄 병원으로 실려갔을땐 이미 난 정신을 거의 잃어버렸다. 쓸개(담낭)안에 그리고 담관에 담석이 오십개가 넘게 있었다고 수술한 의사가 말해주었다. 세상에… 오십개가 넘었다고… 한국에서는 어려서부터 고기가 비싸서 우리집 밥상에는 올라갈일도 별로 없었지만, 가끔 부자 고모집에 가서 사골로 끓인 떡국만 먹고와도 속이 느글거리고 메슥거릴정도로 나는 고기를 좋아하지 않았었다. 내몸에서 고기를 거부하는듯했기때문이다. 그런데 이민을 오니 모든 한국인들 대부분이 다 고기를 주반찬으로 먹는것이다. 누구를 초대하면 당연히 고기파티였다. 고기를 준비하지않고 초대를 하면 욕을 먹을정도였다. 그러다보니 나의 식생활은 점점 육류로 바뀌어갔고 소화제를 달고 살면서도 고기를 먹어야만 할것같았다. 얼마나 어리석은 짓이었던가. 나의 쓸개를 돌려다오 라고 말하고 싶을정도로 난 이제 고기를 더이상 즐기지 않는다. 누군가를 초대를 할때엔 아직도 고기를 굽는다. 하지만, 누군가에게서 초대를 받을때엔 고기를 굽는다하면 안가려고 노력한다. 내가 손님일때엔 주는 고기를 안먹으면 예의가 아니지 않는가… 내게 맞지않는 운동화인 이민 생활을 이젠 청산하련다. 나에겐 더이상의 발톱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이민생활은 나에게 맞지않는 친구였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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