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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iley의 뜨개공방

자갈치시장 hey kyung lee (paseoka) 2022-6-17  07:37:46
어느덧 한국에서 생활한지가 한달하고도 열흘이 지나가고 있다.
한 육개월은 된듯한 기분이 드는이유는 그간 너무나도 많은일들을 해냈기 때문인가보다.
우리는 ktx를타고 부산과 서울을 세번이나 오갔으며, 딸아이와는 또 다르게 나는 부산에서도 왕성한 활동을 펼쳤기 때문인듯하다.

나는 트로트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요즘은 젊은이나 나이든 분들이나 트로트가 대세지만 솔직히 하루종일 가요무대를 시청하시는 엄마를 십년넘게 모신덕에 좀 싫증이 난터이다. 그런데 내가 자갈치아지매 노래를 알게된건 불과 한 일이년전이다. 어느 노래경연대회에서 탈락위기에 놓였던 여가수 후보가 자갈치아지매 란 노래를 불러 패자부활전에서 살아남는 장면을 보면서 그노래를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 그 여가수후보의 간절하고 애절한 마음이 그노래에 녹아나는것을 보면서도 그랬지만 노랫가사가 가보지도 않은 부산의 어느 자갈치 시장에 나의 상상력을 끌어갔던게 생각이 난다. 그이후로 나는 자갈치아지매 란 노래를 콧노래로 가끔 불렀었다. 바로 그 부산 자갈치시장을 내가 혼자서 가본것이다. 엄마가 삼천포출신이셔서 어려서부터 엄마로부터 즐겨 듣다가 따라부르던 그 ‘삼천포아가씨’ 라는 노래를 나도모르게 가끔 흥얼거렸었는데 자갈치아지매란 노래를 듣고부터는 엄마의 고향노래까지 잊어버릴정도여서 나는 꼭 자갈치 시장을 가보리라는 마음을 먹고 어딘지도 모르는 자갈치 시장을 전철역 하나만 찾아서 간것이다. 후각이 발달하고 민감한 나는 전철역에서 내리면 무조건 바다내음을 맡아본다. 바다바람이 부는곳을 향하기도 한다. 그것은 광안리 해수욕장 역에서도 그랬었고 해운대 전철역에서도 그랬듯이 자갈치 역에서도 나의 후각을 이용해 바다내음을 맡거나 바람이 부는 쪽만 찾아도쉽게 방향을 잡을수가 있었다. 내가 바다를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바다가 나를 부르는 느낌. 나에게 바람으로 끌어당기는 그어떤 힘… 그러면 난 나도 모르게 바다쪽으로 나의 감각을 모두 열고 향해간다.

자갈치시장은 내가 상상했던 그대로였다. 아지매들이 나를 부른다. 오징어가 물이 좋다. 생선구이 드시고 가라. 쥐포 아귀포 부터 문어말린것까지 그어느것하나 내가 싫어하는것은 단하나도 없었다. 그언젠가 어느 한의원에서 팔체질로 체질을 구분해서 치료해주는 한의사를 통해 나는 내가 금양 체질임을 알게되었다. 그어떤 육류도 먹어서는 안되지만 다만 바다에서 나온 생선류는 먹어도 나에게 좋다고 했었다.
그도그럴것이 나는 어려서부터 이상하게 고기만 먹으면 체했었다. 하지만 바다에서 나온 김이나 삼천포 이모가 끓여주시던 물메기국,장어미역국, 파래무침 같은것들은 생각만해도 군침이 돌고 아무리 많이 먹어도 체하지도 않았던 기억이 난다. 물론 성인이 되어서도 그랬다. 아무튼 나는 그렇게 자갈치 시장에서 이쪽끝 저쪽끝을 오가며 행복한 장보기를 시작했다. 백화점 가격의 열배이상 싼 가격들, 그리고 시식을 해보라고 권하는 인심좋은 어느가게 아주머니덕에 거의 모든걸 다 맛보면서 따뜻한 차까지 일회용 컵에 주시는바람에 시식후 내입에 맞는것만 착착 골라서 살수가 있었다. 미국에서는 비싸고 너무 달아서 잘 안사먹던 오징어포 오징어채 들까지 너무나 저렴하면서도 별로 짜거나 달지도 않으면서 감칠맛 끝판왕이었다.
몇달만 전에 왔었어도 코로나 바이러스때문에 이런일은 상상도 할수없었을텐데… 시식을 하게 도와준 자갈치시장 아지매는 장사를 너무 잘하시는것같다. 그렇게 아낌없이 먹어보라고 퍼주시니 안살수가 없지 않은가. 따뜻하고 맛나는 차까지 주전자에 끓여서 준비하시는 그분은 대박 장사수단이 좋은분인듯했다.

자갈치 시장 주변으로는 옷가게들도 많았다. 서울에 가서 남대문 동대문시장이 예전같지가 않아 물건을 하나도 못사고 돌아왔던터라 난 시장보다는 백화점에서 거의 모든 샤핑을 다했었다. 그런데 오랜만에 아주 저렴한 옷가게들을 발견하고는 백화점에서는 구경할수없었던 아버지께서 좋아하시는 여름용 조끼. 외출용 반바지 등을 득템했다. 단돈 오천원하는 조끼는 만일 백화점이었다면 적어도 오륙 만원은 족히 넘었을법한 것이다. 아버지 드릴 반바지도 백화점같으면 아마도 육칠만원은 훨씬 넘었을텐데 단돈 오천원에 그좋은 퀄리티의 반바지를 산것이다.

남포역으로 통한 지하샤핑몰에서는 백화점에서 아무리 찾아도 살수없었던 엄마용 보라색 브라도 여러개 살수 있었다. 가슴에 너무 조이면 답답해하시는 엄마는 보통 브라는 잘 못하신다. 할머니가 된이후로 엄마가 즐겨 하시는 브라가 따로 있는데 요즘은 그런 스타일의 브라를 눈씻고 찾아도 없어서 엄마가 착용하시고 계시는 브라는 아마도 십년이 훌쩍 넘은걸로 알고 있다. 딸랑 두개남은 보라브라는 너무나 심하게 해져서 구멍이 날정도라 몇번을 버리려고 했지만 절대로 못버리게 하시니 동생과 나는 고민중 고민이었다. 막상 버린다해도 비슷한 보라색의 브라를 구할수도 없고 어쩌다 비슷한걸 찾아서 갖다드린다해도 보라색이 아니라고 퇴자맞은게 한두번이 아니다. 한국오면 꼭 엄마가 즐겨하시는 브라를 보라색으로 사다드리리라 결심했었는데 한달동안 단한개도 못샀던것이다. 그날 나는 보라색의 엄마가 원하시는 스타일의 브라를 여러개 살수있었다.

짐이 무거웠고 다시금 전철을 갈아타고 계단들을 오르내리고 집에까지 걸어서 가야하지만 난 행복했다. 동생한테 내가 손에든 그많은것들을 전철역내 벤치에 앉아서 찍어보냈다. 동생이 놀라면서 한마디 했다. 맨날 팔아프다면서 그렇게 무거운걸 들고 걸어다니니 그렇지! 하는것이다. 그러면서 한마디 더햇다. 수십년을 원하는데는 어디든지 차를 끌고 다녔는데 한국가서 차한대없이 그고생을 하고다녀도 한국이 그렇게 좋냐고 묻는것이다. 난 단연코 한마디 햇다. “응!” 내가 기다리던 전철이 도착해서 타느라 동생과의 카톡은 불과 한 일분도 채 안되어 끊어야 했다. 다행히 전철에 내가 앉을좌석이 남아있었다. 전철에 앉아 나는 속으로 자갈치 아지매노래를 흥얼거리며 만족스러운 얼굴로 왔다.
자갈치 시장 은 꼭 앞으로 자주 오리라 다짐했다. 담엔 딸도 데리고 와야겠다.

광안리 해수욕장에서는 거의 매일 불꽃놀이를 선상에서 한다. 그 배를 타고 불꽃놀이를 육지에서가 아닌 선상에서 보고싶은데 딸이 배타는걸 무서워해서 못하고 있다. 대신 선상의 불꽃놀이가 보이는 회전스시에서 딸과함께 저녁을 먹고 광안리해변의 식당가 도로를 걸었다. 젊은 딸아이 또래 여자애들이 아주 많았다. 남자친구와 걷는사람… 또래 친구와 걷는 여자아이들이 많았다. 딸도 친구들과 함께 이여행을 즐기면 좋겠다는 생각이 매번 들었다. Make up 을 배우고 싶어하는 딸이 1:1 로 가르쳐주는 학원을 찾았다고 말을 한다. 딸아이가 뭔가 배우고 싶어서 찾아보는건 첨있는일이다. 학원을 보내서 화장하는법도 배우고 한국말도 잘활용할수 있는 기회를 삼아야겠다. 사실 서울에 있는 대학에 한글을 배우는 단기코스가 있어서 학생비자를 받아올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일단 한국에 와서 적응을 한후 8월에 미국들어가서 비자를 받아와도 될것같아서 미뤘는데… 미국을 그리워하는 딸이 이곳 한국에서의 생활을 좋아하게 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래서 서울을 자주 오가고 있긴 하지만… 또래들은 다 미국이든 한국이든 대학에 들어가 공부하는데 딸아이만 학교를 일년 쉰다고하면 한국의 내친구들이나 지인들은 이해가 잘 안간다고 하면서도 그렇게 마음먹을수 있다는게 부럽다고들 한다.
사실 한국의 학생들을 볼때마다 우리딸은 자기가 미국에서 학교를 다녔다는걸 너무 다행으로 알고있다. 한국의 학생들이 너무 불쌍하다고 한다. 심한 경쟁에서 이겨내고 적어도 서울의 대학을 들어가기 위해서 고3들이 기숙사가서 하루종일 공부하고 주말에나 집에와서 집밥을 먹는 친구아들들을 보고는 딸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쩌랴… 경쟁이 치열한데 살아남으려면 말이다. 좁은땅덩어리에 자본은 하나없고 오직 머리로만 그리고 기술력으로만 승부를 걸수밖에 없는 이곳에서 지형학적 위험까지 도사리니… 한국의 국민의식 시민의식이… 나만 잘되자… 우리집 자식만 살면된다식으로 변화할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렇게 일궈낸 발전… 그 한가운데에 우리는 와서 보고 즐기고 먹고 숨쉰다. 느끼는바가 매순간 많다. 한국여행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점을 주고 있는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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