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사면령도 안내렸는데, 영주권을 내는걸 도와주겠다는 전 이민국 부청장을 만날기회가 생겼다. 남미는 모든일이 다 그렇게 돈만있으면 이루어진다. 미국같으면 불가능한일일텐데… 남미에서는 모든것이 가능한 그런곳이니만큼 별의별 이상야릇한일들이 다 일어나기도 한다. 암튼 그 전 이민국 부청장덕에 우리는 합법적으로 비자를 받고 입국했다는 증거를 제출하고 신체검사도 받고 이민청으로 들어가서 가족전체가 열손가락 지장도 찍었다. 하혈을 심하게 몇년간 하셨던 엄마는 자궁에 오렌지만한 혹이 있다는 진단을 받고 한국으로 나가서 수술도 받으셨다. 모든것이 어렵게 어렵게지만, 하나씩 둘씩 해결되가고 있었고, 우리가족은 봉제공장을 한지 4년만에 드디어 자그마한 집도 하나 살수 있었다. 나와 동생은 하이스쿨을 졸업하게 되었으며, 동생은 컴퓨터 그래픽을 나는 의상디자인을 공부하기 위해 대학도 들어가게 되었다. 불체자라는 신분으로 살아간다는게 얼마나 불행하고 우울한일인지 어려서 겪었기때문에, 나는 다시는 그런 서류미비자로 살고싶지않았고 그러지 않겠노라고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을 했었다. 월세를 얻기위해 오빠와 둘이서 하루종일 버스를 타고 돌아다니다가 걷기도 많이하고 이렇게 많은집들과 아파트들이 있는데 왜 우리가족은 집한채가 없을까…ㅠㅠ 하고 하늘을 보며 한숨을 내쉰적도 많았고, 봉제공장일을 할때엔 성수기에 일감이 밀려들어와서 서로 자기네 일감을 먼저좀 해달라고 독촉하는통에 졸음을 참아가며 밤늦게 일하다가 미싱바늘이 손가락에 박힌채 부러진적도 여러번 있었다. 나는 십대에 내지는 이십대에 철없이 부모속이나 썩히고 반항이나 하는 그런 친구들을 볼때마다 복에겨워서 요강에 똥싸는것들이라고 생각하며 사람으로 보이지가 않았다. 얼마나 할일이 많고 가족들을 위해 희생할일이 많은데 철없이 구는아이들을 보면 이해가 안갔던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나에게도 결혼할사람이 나타났다. 결혼을 하고 친정을 떠나 친정집에서 그리멀지않은 새아파트에서 남편과 사는동안 내가 그리도 동경하던 그 친구남매와 그들의 어머니가 우리가 사는 아파트 꼭대기층에 산다는걸 알고 너무나 기뻐했던 기억이 난다. 나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그친구도 결혼을 했고 서로가 아는 몇몇 부부들을 함께 동반해서 우리는 여행도 같이 다녔었다. 아르헨티나는 대국이었으므로 차를 타고 끝없이 펼쳐지는 대평원을 달리면서 초원에서 풀을 뜯는 소들도 흔히 볼수 있었고, 대자연의 경관을 만끽하기 딱 좋은 나라였다. 남미의 알프스라고 불리는 바릴로체라는곳도 있고, 칠레 국경에 걸쳐있는 안데스 산맥을 따라서 Salta 라는곳도 수천킬로미터를 달려서 차 서너대로 너다섯팀이 연휴를 이용해 … 다니기도 했다. 그렇게 대서양 바다와 안데스 산맥으로 다니면서 우리는 아사도(숯불에 구운 남미식 송아지 바베큐)도 구워 먹곤했었다. 아사도와 아르헨티나산 포도주는 남편이 가장 사랑하는 것이었고 아사도만큼은 어딜가나 항상 남편이 구웠다. 생각해보면 그때가 참 행복했던 시절이었던것같다. 그때 그렇게 좋았는데… 그친구와 난 오히려 싱글로 만났을때와는 사뭇 다르게 남편들과 다같이 공통대화거리도 많았고, 서먹한 분위기도 많이 없어졌었던것같다. 그일이 있기전엔… 그랬었다. 내가 살면서 누군가에게 그토록 하지말아야 할짓을 한건 아마 그때가 최고이지 않았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