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요즘 법원에 자원봉사하러 다니면서 민사 학대 (Civil Harassment Restraining Order), 가정 폭력 (Domestic Violence Restraining Order), 노인 학대 (Elder Abuse Restraining Order) 등의 다양한 접근금지 명령 신청 재판을 마주하게 되는데요. 본인에게 닥치기 전까지는 당췌 알 수 없는 이 여러 유형의 접근금지 명령들이 어떤 상황/사람들에게 해당되는 것인지 설명을 드리려고 합니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civil harassment restraiing order, 즉 민사상의 접근금지 명령서 신청 재판은 민사법원에서 진행이 됐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 법원이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민사, 노인학대까지 다 묶어서 가정법원 판사가 다루게 되었지요.

1. 가정 폭력:

우선 제가 여러차례 언급한 DVRO 는 가정에서 있었던 폭력 또는 학대 사례를 다루는 재판인데요. 가해자와 피해자가 부부관계 여야만 신청 자격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가지 신청 자격 요건이 있는데요, 쉽게 설명 드리자면:

- 현재 혼인관계 이거나 domestic partner로 접수가 돼 있거나

- 과거에 혼인한 사이였거나 (지금은 이혼한) domestic partner로 접수한 사이였거나

- 현재 동거하는 사이 이거나

- 과거 동거하는 사이였거나

- 혈연이나 혼인이나 입양으로 연결된 사이이거나

- 현재 사귀거나 과거 사귀던 사이이거나, 현재 약혼한 사이이거나 과거 약혼한 사이였거나

- 18세 이하의 미성년자 자녀의 부모 사이이거나 (위에 해당이 안 되지만 함께 아이를 낳은 사이) 또는,

- Voluntary Declaration of Paternity 를 서명한 사이 (위에 해당이 안 되지만 자발적 친자 신고서에 서명한 사이)

중 하나에 들어가는 사이라면 가정 폭력 접근금지 명령 신청을 하실 수 있는 자격을 갖추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부모 자식간이나 형제간, 사촌지간에도 가정 폭력 접근금지 명령 신청을 들어가실 수 있습니다.

재판에서 가장 중요한 고려사항은 burden of proof (입증 책임) 인데요. 가정폭력 접근금지 사건의 경우 입증 책임의 기준은 preponderance of the evidence입니다. 이걸 직역하는 건 쉽지 않아 보이고, 법정에서 입증 책임은 세 단계로 나뉘는데 가장 기본적인 것이 preponderance of the evidnece이고 대부분의 민사 사건에서 이 기준이 쓰입니다. 이의 의미는 "more likely than not"이라는 걸 입증하면 된다는 것인데요. 문제제기를 한 사람이 입증 자료를 통해 (증언이 됐건 서류 증빙이 됐건)  trier of fact로 하여금 (보통 민사에서는 배심원, 캘리포니아 가정법원에서는 판사) 주장하는 내용이 more likely than not 실질적으로 있었던 일이겠구나 하고 믿게 할 수 있으면 되는 겁니다.

많은 가정폭력 사건들은 폭행이나 학대가 오랜 기간에 걸쳐 이뤄지고 재판 당일에 눈탱이가 밤탱이가 돼서 법원에 들어오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판사에게 제시된 증거가 양측의 증언밖에 없을 경우 가해자 vs 피해자 중 누구의 진술이 더 자세하고 신빙성이 있는지를 판단해 피해자가 입증 책임을 충실히 이행했는지를 결정하게 됩니다. 캘리포니아 가정법원에서는 요즘 피해자가 웬만큼 앞뒤 안 맞고 폭력 뿐만 아니라 공감할만한 학대 (싸이버 스토킹, 정신적 학대 포함) 사실도 신빙성있게 입증하지 못하는 게 아닌 이상ف년, 3년, 5년 등 permanent restraining order을 내려주는 추세입니다.     

2. 민사 학대:

캘리포니아 민사 소송법 527.6 (b)(3)에 따르면 civil harassment는:

- unlawful violence (불법적인 폭력) 또는

- a credible threat of violence (믿을만한/신빙성 있는 폭력 협박) 또는

- a knowing and willful course of conduct directed at a specific person that seriously alarms, annoys, or harasses the person and serves no legitimate purpose (정당한 사유 없이 의도적으로 행해지는, 상대를 심각하게 불안하게 하거나 귀찮게 하거나 괴롭히는 일련의 행위)

라고 정의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민사상의 접근금지 명령 신청을 넣으시는 분들의 대다수가 직장이나 이웃사이 등 자주 마주치는 사이인데 가해자가 피해자를 지속적으로 괴롭히는 경우입니다.

또한 민사 소송법 527.6 (b) (1)과 527.6 (b)(3)에서 해당 행위를:

- 보통 사람으로 하여금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당하게 할만한 행위일 뿐만 아니라

- 피해자에게 실질적으로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준 행위

여야 한다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가정법 사건과 달리 민사 접근금지 사건에서 입증 책임의 기준은 "clear and convincing evidence"입니다. 직역을 하면 명백하고 확실한 증거라는 뜻인데요. 이는 민사에서 요구되는 입증 책임 기준 중 preponderance of the evidence보다 한 단계 높은 것으로 형사사건에서 요구하는 beyond reasonable doubt과 preponderance of the evidence의 중간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당연히 가정 폭력사건에서 보다 훨씬 많은 증빙자료가 요구되는 것이고요. 판사나 배심원들로 하여금 "more likely than not" + so clear as to leave no substantial doubt in every reasonable mind"여야 한다고 설명들을 합니다. 증거가 확실해서 웬만한 보통 사람들이 봤을 때 상당한 의심점을 남기지 않을 정도의 수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또한 이 괴롭히고 귀찮게 하는 행위가 단 한번으로 끝났으면 해당사항이 없습니다. 가정폭력 사건은 단 한번의 사건으로도 접근금지 명령을 받을 수 있는 것에 반해 민사상의 접근금지 명령서를 받으시려면 "a pattern of conduct composed of a series of acts over a period of time, however short, evidencing a continuity of purpose"가 필요합니다. 즉, 피해자가 불쾌함이나 두려움을 표현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괴롭히고 귀찮게 한 패턴이 있어야 하는 것이죠. 일단 가정폭력 사건보다 훨씬 높은 입증 책임의 기준이 적용되기 때문에 civil harassment restraining order을 받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고 보시면 되고요. 아무래도 함께 살지도 않는 남남 사이에는 감정적으로 격해질 가능성이 훨씬 낮기 때문에 적용되는 법적 잣대가 다르지 않나 생각이 됩니다.

아... 쓰다보니 너무 길어 지네요.

오늘은 EPO 까지만 하겠습니다.

Emergency Protective Order, 줄여서 EPO라고 불리우는 응급 접근금지 명령서는 법원에서 직접 받으시는 것이 아니고 경찰이 건네주는 서류인데요. 보통 폭력사건에 경찰이 출동하게 되었을 시 경찰이 눈 앞의 상황을 보고 위급하다고 판단될 경우 magistrate judge에게 (행정판사) 전화를 넣어 EPO 응급 접근금지 명령서를 발행받게 되는데요. EPO의 최대기한은 7 calendar days 입니다 (달력상으로 7일, 즉 5 business days). 당장 접근금지 명령을 발행해 줌으로써 피해자가 법원에 들어가 민사건 가정폭력이건 노인 학대건 해당 접근금지 명령 신청서를 제출할 수 있게 시간을 벌어주는 개념이 크고요. 그 다음 접근금지 명령 재판을 검토하는 판사의 입장에서도 EPO를 받고 시작한 사건이라면 피해자 진술에 좀 더 신빙성을 주게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민사나 가정폭력 사건이나 똑같이 신청 서류를 제출하는 당일에 서면 심사를 통해 21일짜리 TRO (temporary restraining order)을 받게되고 (물론 TRO는 기각되고 재판 날짜만 잡아주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21일 후에 직접 증언을 하셔야 하는 재판이 열리게 됩니다. TRO가 가해자에게 송달된 이후에도 그걸 무시하고 계속 연락을 한다던지 (제 3자를 통해서 연락을 취하는 것도 명령을 어기는 것) 협박을 계속한다면 당연히 그 내용들을 녹취하시거나 캡쳐하셔서 재판 당일에 증빙자료로 들고 들어오셔야 합니다. TRO가 발행돼 있는 상황에서도 협박과 패악질을 계속 하는 것만큼 판사로 하여금 permanent restraining order을 내려주고 싶게 하는 게 없으니까요.   

아무쪼록 유용한 글이었길 바라며,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모두들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