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다수의 여자들은 어려서부터 결혼에 대한 환상을 갖기 마련이다. 키가 큰 남자와 결혼을 하고 싶다던가, 결혼식장을 온통 핑크색으로 치장하고 싶다던가, 피로연 때 First Dance 곡으로 어떤 노래를 선택하고 싶다던가…  결혼에 대한 꿈들은 얼마든지 여자의 머릿속에서 나래를 펼칠 수 있고 결혼을 꿈꾸는 모습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에게는 결혼에 대한 소박한 꿈이 세가지 있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이 꿈들은 크고 작은 시련과 변화를 겪으며 성장했고 구체화 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나는,

첫째로는 초등학교 동창을 만나서 결혼하고 싶었으며,

둘째로는 만으로 스물여섯이 되는 해에 결혼을 하고 싶었고,

마지막으로 결혼식 때 눈물을 보이지 않는 씩씩하고 밝은 신부가 되고 싶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놀랍게도 이 세가지 꿈을 다 이루었다. 재벌가에 아들을 만나서 결혼하겠다던지 열아홉에 결혼하겠다는 꿈에 비해서 나의 소망이 현실적이고 수수했던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한국에서도 쉽게 만나지지 않는 초등학교 동창을 미국에서 만나게 된 것도 또 그 사람과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게 된 것도 결코 흔해빠진 일은 아닐 것이다. 더욱이 스물여섯에도 학생 신분을 면치 못했던 남편의 상황 때문에 도저히 그 해에는 결혼을 못할 것이라 생각했건만 2월에 프러포즈를 받고 4월에 상견례가 이루어지고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12월엔 웨딩마치까지 올리게 된 것이다. 기적처럼 모든 것이 일사천리도 진행되는 것이 놀랍기만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결혼식… 나는 이상하리만큼 행복했다. 자꾸만 입가에 미소가 번지고 함께하는 모든 사람들이 사랑스럽고 또 고마웠다. 마법에라도 걸린 것처럼 나에겐 결혼식에 준비된 모든 것들이 완벽해 보였고 또 마음에 쏙 들었다.  덕분에 나는 결혼할 때까지도 살은 단 1파운드도 감량하지 못했지만 적어도 눈물을 보이지 않는 것 만큼은 꿈을 이루게 되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체중을 10파운드 감량하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 걸 그랬나 보다.

이렇게 나는 거침없이 사랑에 빠졌고 3년간의 열애 끝에 꿈꾸던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이런 달콤한 스토리들은 비단 나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와 비슷한 혹은 훨씬 근사하고 멋진 연애담을 가슴에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안다. 그리고 세상을 살아가며 몸과 마음이 지치고 고단할 때 아름다웠던 순간들을 하나씩 꺼내보며 행복해 하기도 하고 또 그 시절을 그리워하기도 한다는 것을 안다.

내가 그랬다. 연애시절에 남편에게 선물했던 일기장을 펼치면 어느새 뜨거웠던 이십대 초반으로 날아가 있었다. 매일같이 만나는게 부담스러워서 일주일에 삼일만 만나면 어떨까라고 말했을 때 “어떻게 사랑한다면서 매일같이 내가 보고싶지 않을 수 있어?”라며 불같이 화를 내던 남편이 그때는 다소 답답해 보이기도하고 나에게 집착하는 것 같아서 늘 다툼의 요소가 되었는데… 지금은 미치도록 그리운 순간이 될 줄이야… 

얼마 전 정기적으로 모이는 동네 아줌마 모임에서 “남편”에 대한 이야기가 도마 위에 올랐고 순식간에 분위기롤 압도하고 말았다. 이런 자리에서 남편 자랑이라던지 알콩달콩 닭살 부부의 행각들이 밝혀지면 부러움은 살망정 별 재미가 없는 법이지만 적당한 험담이 시작되면 공감대가 200% 형성되고 처음 보는 사람도 금방 친구가 되어 하하호호 웃음이 만발하게 되어있다. 우리들 중 가장 성격이 좋고 유창한 말솜씨를 자랑하셨던 한 분의 사연인즉 가끔씩 남편이 너무 미울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정말 자고 있는 남편의 숨소리도 싫고 밥 먹는 모습은 또 얼마나 조잡한지 정이 뚝뚝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를 포함해서 모두들 웃음을 터트렸지만 그것은 공감에서 비롯된 것이었을 것이다. ‘어째서 사람이 미워지면 가장 원초적인 모습일 때, 정말 사소하고 아무것도 아닌 작은 부분이 싫어지고 신경 쓰이는 것일까’ 생각하면서 나에게도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았다.

두번째 사연은 내가 몇 달만에 칼럼을 쓸 수 있게 해준 가장 큰 원동력이 되어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분은 어느 날 시댁과의 문제로 남편에게 맺힌 것이 많았고 틈틈이 복수의 기회를 노리다가 드디어 일을 저지르시고 말았는데… 그 복수가 얼마나 기가 막힌지 듣는 순간 헉~ 하고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가도 그런 복수를 하고 말았다는 것이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웃음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복수인즉 남편의 칫솔을 살며시 꺼내 변기에 한번 푹 담근 후 다시 원위치 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왜 그러고 사나…”하며 한심해 하기는커녕 웬일인지 이 부부의 모습이 참으로 정답게 느껴졌다.

모두들 이렇게 살아가고 있구나 생각하니 외롭지 않았다. 앞으로 굳이 한창 때 주고 받았던 연애편지를 들추며 지난날을 추억하지 않아도, 우리에게도 열정적인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확인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다른 부부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나는 마치 그럴듯한 복수를 한 것처럼 가슴이 확 트이고 시원해져 버렸다.

아름다운 결혼을 꿈꾸던 아가씨는 어디 가고 결혼 생활의 복수를 논의하며 즐거워하고 있는지 스멀스멀 흐르는 세월을 탓하는 것도 부질없는 짓임을 안다. 나는 또 다시 꿈을 꾸리라. 나의 결혼 생활을, 나의 사랑을 키워나가기 위해... 예전처럼 세가지 소원을 만들고 열심히 사랑하며 살아가리다.

 ♡♡미시 메모♡♡

참으로 오랜만에 칼럼을 업데이트하면서 그동안 제가 참 무미건조한 삶을 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독서와 담 쌓은 핑계를 무조건 바쁜 일상에게만 할 수 없다는 것도 말이죠.

이제 캘리포니아에도 가을이 찾아왔습니다. (비록 아직도 운전할 때는 에어컨을 켜는 것이 필수이지만...) 처음 캘리포니아에 왔을 때는 이곳에 사계절이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아 겨울에도 반바지에 슬리퍼를 신고 학교에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서늘한 바람에도 푸르고 높은 하늘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진정한 캘리포니아인이 되어가고 있는 듯 합니다. 캘리포니아의 가을 향기를 보내드리고 싶네요.

다음 칼럼에서 만나요. 앞으로 열심히 할 수 있도록 파이팅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