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간 이후로는 늘 쫓기듯 지내왔어요. 부족한 국어, 부족한 수학, 부족한 음악... 우리나라에서 촘촘하게 준비된 아이들하고는 여러모로 비교가 되질 않았죠. 그나마 영어는 좀 낫겠거니 했는데 영어유치원 3년차 아이들 실력을 보니 그마저 한참 모자라더라구요. 읽고 작문하는 실력들이 어찌나 뛰어난지 제 co-teacher 로 있는 미국인이 아이들 작문하는 모습을 카메라로 찍더라구요. 자기 고향의 가족들에게 5세 (우리나이 7세) 아이들이 작문한다고 했더니 아무도 안믿더라며...^^

다행히 일년동안 고생한 덕에 작문도 그럭저럭 따라가는 듯 한데 이번엔 또 다른 문제가 생겼어요. 미국서 처럼 책을 한가득 펼쳐놓고 신나게 읽을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어진거죠. 미국서는 혼자 책읽고 미니북도 많이 만들고, 그림도 그리고, 책하고 노는 게 자연스러웠는데 여기서 일하는 엄마 따라다니며 학습지하랴 받아쓰기 시험 준비하랴 영어를 공부하더라도 주로 문제풀이나 주어진 주제에 맞춰 저널을 쓰는 데 그쳐 버렸거든요.

그런데 얼마전 아주 오랜만에 둘이 빈둥빈둥할 기회가 생겼어요. 제가 드러누워 빈둥거리고 있으니 저도 심심했는지 우리말로 된 과학책을 하나 가져오더라구요. 행성들을 보며 "엄마는 이 중에 뭐가 제일 좋아?" (요즘 이 질문 때문에 미칠 지경이라는... 뭐든 뭐가 제일 좋냐고 물어서...) 로 시작하더니 책을 하나씩 하나씩 계속 들고 오더라구요. 자기도 영어로 알고 있던 행성 이름과 우리말 명칭이 잘 매치되지 않으니 답답했던 모양이예요. 그래서 제가 "스케치북에 죽~ 그려봐" 그랬더니 아싸~! 하고는 신나게 그림을 그리더라구요. 그림을 그리려니 모양도 자세히 보게 되고, 아래다가 각각의 특징도 한가지씩 써 넣으려니 책도 열심히 읽더군요.

제가 한 일이라곤 "스케치북에 그려~"라고 아이디어를 준 것과 아이가 다 그린 종이를 "장하다~" 칭찬하며 자기 방 벽에 붙여준 것 뿐인데 자기 딴에는 무척 뿌듯했던 모양이예요. 다음 날엔 개구리 책을 읽더니만 또 그림을 그려왔어요.

개구리 알부터 개구리가 되기까지 과정을 책을 보면서 그리고 또 단계별로 특징을 썼더라구요. 여기서 살짝 한가지 도움(?)을 더 줬죠. 아이 성향상 뭐든 자기 맘에 흡족하게 되지 않으면 왕짜증을 내고 포기하려 하기 때문에 개구리를 그리는 모습이 영 불안했거든요. 그래서 OHP 필름을 한장 가져다 줬죠. 책 위에 대고 따라 그릴 수 있게요. 그랬더니 무지하게 신기해 하더라구요. 조금만 생각하면 아이들 꼬드기기는 참 쉽다는 ...^^ 물론 이 그림도 벽에다가 잘~ 붙여줬어요. 

뭐든 한가지 방법을 시도한다고 해서, 또 그게 성공한다고 해서 쭉 그걸로만 밀고 나갈 수는 없지만 작은 아이디어가 때로는 아이에게 신나는 동기가 되는 것 같아요.

또 한가지 느낀 건.... 지난 번 제 책 때문에 인터뷰 했던 어머니 한분께 들은 얘기가 떠오르더라구요. 아이들 장난감 너무 많이 사주면 안 좋다구요. 아이들이 심심하고 할 게 없어야 책으로 손이 가기 쉽다고 하시며 눈 앞에서 장난감을 치우라고 하셨었거든요. 물론 장난감을 가지고 놀긴 하지만 한곳에 치워놓고 놀 때만 꺼내놀 수 있게 하면 좋을 것 같아요.

별것 아닌 아이디어지만 함께 나누고 싶어 올려봅니다. 한동안 그려대더니 요 며칠은 또 안하네요. ^^ 얼마전 서점에 서 전집 명작동화를 낱권으로 팔길래 몇권 사줬는데 재미있는 모양이예요. 자기는 우리말 책만 읽을 거라 그러네요. 물론 그 명작들, 우리나라 아이들은 유치원 때 다 읽은 것들이지만요... ^^  (서점 아줌마가 아이를 보며 "음... 한참 읽을 나이죠. 6살? 이러더라구요.^^)

담에 또 재미있는 액티비티꺼리 생김 또 올릴께요~

**참, 학습스타일에 관한 요전번 칼럼에 대해 글 보내주신 분들 감사해요. 생생한 아이들 얘기 들려주셔서 참 좋았어요. 사례를 보면서 저도 이론이랑 맞춰볼 수 있는 공부가 되서 좋았구요. ^^ 모두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