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데믹이 시작되고 진행한 프로젝트 중 하나는
집안 페인트 하기였다.
작년에 방들과 거실은 다 페인트를 마쳤지만 몰딩, 문틀, 문짝은 미뤄두었기에
쳐다볼 때마다 눈엣가시처럼 여겨졌지만 애써 고개를 돌리곤 했다.

일이란게 끝내지 않고 한번 미루게 되면 다시 시작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맛도 아는 맛이 무섭고
일도 해본 일이 무섭기에
얼마만큼 힘이 들고 얼마만큼 난장판이 될지 알기에 그런 것 같다.

그렇게 1년이 갔다.
남편이 여름 휴가를 냈고 우리는 다시 페인트 붓을 잡았다.

무엇보다도 페인팅을 할 때는 환기가 중요해서 기온 체크가 중요했다.
연일 100°F를 오르내리는 날씨라
문을 열고 일하기는 거의 불가능해서
기온이 내려가는 때만을 기다렸는데
거짓말처럼 일주일 정도 80°F 언저리가 되는 주를 D-week로 정할 수 있었다.

몰딩, 문짝, 문틀 페인팅을 하고,
터마이트가 갉아먹은 흔적이 있는 패티오 기둥도 교체하고,
전등도 교체했다.

휴가 일주일,
선물 같은 80°F week.
그렇게 공사를 마무리했다.

공사 중,
40분 거리에 사는 지인이 다녀가셨다.
나보다 나이가 20살은 많은 분이지만
나랑 많은 것을 공유하고, 나누시는 분이다.

공동으로 구매한 물건이 있어 내가 가지러 가는게 맞고, 당연히 그럴거라 생각했는데
갖다 주시겠다고 연락을 받았다.
한국마켓이 가까우니 필요한 것도 사다주시겠노라 제안까지.

페인팅하느라 집은 난리고,
내 모습도 일꾼의 그것이라 오신다는 말에 차 한 잔 조차 대접하지 못할 것 같아 선뜻 내키지않았는데
이미 작정하신 걸음이실 터.
흔쾌히 오시라 했다.

당신의 시간을 내서 기꺼이 먼 거리를 찾아주는 사람.
문득 지인이 그런 분이라는 깨달음이 왔다.

그리곤 나 자신을 돌아본다.
나는 어떤 사람이지?
기꺼이 시간을 내서 가는 사람인가?
아니면 시간이 나니까 가는 사람인가?

백번을 생각하고 천번을 생각해도 나는 시간을 내서 찾아가기 보다는 시간이 나서 가는 사람이라는 결론이 났다.
그만큼 희생 정신이 부족하다는 말씀.

그걸 알았다면 바뀌어야겠지.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겠지.

일단 암 투병 중이신 지인께 카톡으로 오랜만에 안부 인사를 건냈다.
꽃 사진과 함께.

위로가 필요하고,
격려가 필요하고,
사랑과 관심이 필요한 분...
우울했었는데 내 문자를 받았다며 고맙다 하신다.
덕분에 오히려 내가 더 위로와 격려와 사랑을 받았다.

작년에 내 또래의 딸을 잃은 분께도 오랜만에 소식을 전했더니
장문의 답장을 보내주셨다,
힘이 되주어 고맙다고,
위로해주어 고맙다고..

시간을 내어 먼 거리를 찾아갈 수 없다면,
시간을 내어 전화로나, 문자로 먼저 안부를 전해보는 것도 참 좋다는 걸 알았다.

그냥 ��~ 다른 사람이 보내온 동영상이나 정체모를 긴 내용의 이야기가 아니라 진심어린 안부의 글.

내가 당신께 관심을 갖고 있어요.
내가 당신을 위해 시간을 내었어요.
그러니 당신은 결코 혼자가 아니에요.

누군가는 분명 그 글을 보고 힘을 얻고, 위로를 받고, 가슴이 따뜻해질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