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가 반려견을 입양했다.

입양하기 위해 여러 군데 입양 신청서를 제출했는데
팬데믹에 개를 키우려는 사람들이 많아선지
입양기관에서 보호자를 보통 까다롭게 고른게 아니었단다.
사는 집 사진까지 제출하고, 어떤 식으로 돌볼 것인지
구체적인 내용까지 작성했다고 하니
입양할 마음이 있어도 못하는 사람이 부지기수였을 터.
딱히 어떤 견종을 입양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지만,
태어난지 얼마 안 된 개는 제외시켰으니 그나마 선택의 폭은 더 좁아진 셈이었다.

몇 달을 기다리고
인터뷰하고
만나보고
결국엔 떨어지고 하다가
올해는 어려울 것 같다고 포기하겠다고 했는데...

포기하겠다고 말하기가 무섭게
허스키 계열의 견종만 전문으로 입양하는 기관에서 연락이 왔단다.

5살 된 허스키와 말라뮤트 믹스.
아주 큰 사이즈는 아니지만 대형견종이라 할 만한,
품격있는 외모를 가진, 매력적인 그녀.

입양기관에서 일단 일주일 트라이얼 기간을 준다는데
딸아이가 첫 눈에 반해버렸으니
일주일 트라이얼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싶었지만
그래도 사이즈가 있는 개인 만큼 혼자 컨트롤이 가능한지,
집에 사람이 없을 때도 혼자 잘 있는지,
훈련된 정도는 어느 정도인지 그 기간을 통해 점검해볼 수 있었단다.

짖지않아 집 지키는건 젬병이지만
오히려 아파트 주민들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아 다행이고
외모가 순하고 품격있어 산책 나갈 때마다
지나는 사람의 사랑을 듬뿍 받는단다.

전에 기르던 보호자가 먹을 것을 시도때도 없이 줬는지
살이 많이 쪄 다이어트를 시키는게 관건이고
가능하면 하루에 여러번 산책을 나가는 것이 일이겠지만
그 녀석의 귀여움이 불편함을 감수할 만큼 압도적임을 부인할 수 없단다.

게다가 사진만으로 내 마음을 사로잡아 버렸으니
손자녀를 대하는 할머니 마음에 비할 바 아니다.

얼마 전에 리처드 기어 주연의 '하치 이야기'라는 영화를 보았는데
그 영화를 보고 하치(견종:아키타견)의 주인에 대한 충성스러운 사랑에
어찌나 큰 감동을 받았는지 개를 키우면 큰 개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털 빠지는게 싫어 집 안에서는 못 키우겠고
밖에서..더 개답게..키우리라..생각했었다.

그런데 딸아이가 허스키 믹스견을 입양했으니
내가 그 녀석에 이리도 열광하는 게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딸아이는 10월에 엘라( 딸 아이가 붙여준 이름)를 데리고 집에 오겠단다.
그 말을 하며..
아주 조심스럽게...
물어볼 것이 있다며 눈치를 본다.

"뭔데?"

"집에 가면 엘라 밖에 놔둬야 되요?"

사실 그 문제에 대해 엘라를 입양한 날 혼자 생각을 했더랬다.
난 개를 집안에서 키우는게 싫은 사람인데
만약 엘라가 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 집이니 밖으로?
딸아이도 손님이니 손님 방식으로?

미리 고민했고, 미리 결정해두었기에
대답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곧바로 할 수 있었다.

"당연히 집 안에 있어야지."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딸아이는 안도하고 환호했다.
엄마가 밖에 놔둬야 한다고 하면 어떻게 설득할까
나름의 시나리오까지 짜놓을 정도로 고민했는데
엄마의 대답이 생각보다 너무 금방, 쉽게 나왔기 때문이다.

"엘라 밖에 있어야 한다고 할까봐 엄청 걱정했는데...괜찮아요? 엄마는 개 집 안에서 키우는거 싫어하잖아요."

"맞아. 난 집 안에서 개 키우는거 지금도 싫어. 아마 내가 개를 키우면 집안에 두지 않겠지. 하지만 넌 손님이고 엘라는 너의 개고 너의 개는 네 방식으로 대하는게 맞는 것 같아서....엄마가 털은 감수해야지"

솔직히 나의 깊은 생각 끝에는,
딸아이의 반려견을 그녀의 방식대로 대하지 않으면
딸아이 얼굴 보기 더 힘들어진다...는
생각이 있었다.
큰 것(딸의 방문)을 얻기 위해 작은 것(엘라의 털빠짐)은 참아내야만 했다.

그 결정 덕택에 딸아이의 본가 방문은 자유로워졌다.
언제든 놀러와도 엄마 눈치 안 보고 집 안에 둘 수 있으니...

"근데...털은 많이 빠지니?"

"네, 좀 많이 빠져요. 아마 나 다녀간 후 며질간은 계속 털이 나올거에요."

결국 나는 딸도 털도 다 얻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