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인팅 키트 완성 작품)

연말에 아이들이 다녀갔다.
이번엔 딸아이가 페인팅 키트를 가져왔다.
회사에서 연말 선물 나눔을 했는데
엄마하고 하면 재밌겠다 싶어 덥석 집어왔단다.

16"×20" 캔버스에 선으로 그림이 그려져있고 숫자가 적혀있다.
그 숫자 위에 같은 숫자가 적힌 물감을 칠하면 된다.
예전에 우리가 자주 했던 말로 '색칠공부'.

함께 했던 일주일 내내
틈날 때마다 색칠한 결과, 가기 전 끝마칠 수 있었다.

그저 아무 생각없이 캔버스에 적힌 숫자와 그것에 맞는 물감만 칠했는데...
색을 칠하면서도 '설마...뭐가 되겠어?'하며 큰 기대를 갖지 않았는데...
완성작은 기대 이상이다.^^
역시 큰 기대를 안하면 오히려 기쁨이 더 큰 법이다.

하지만 완성작에 대한 기쁨이나 성취 그런 것보다도 함께 색칠하면서 딸아이와 나눈 대화가 두고두고 내 맘을 따뜻하게 적신다.

여러 대화가 있었지만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대화 주제는 '사랑의 방법'.
언젠가 읽은 책 중에 사랑을 나타내는 다섯가지 방법이 있드란다.
1. 말
굳이 설명이 필요없겠다. 사랑을 말로 나타내는 것이니..사랑해, 알러뷰, 오아이니 등~~
2. 스킨십
입맞춤, 포옹, 손잡기, 팔짱끼기..등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는 사랑스럽고 가벼운 터치~~
3. 서비스, 봉사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음식이나 설거지를 한다든지 내 작은 수고를 통해 사랑을 표현하는 것.
4. 선물
말 그대로 선물..
5. 시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내는 온전한 시간, 온전한 집중.

딸아이는 다섯 가지 중 자신이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은 다섯번째 '시간' 인 것 같다고 말했다.
성격상 사랑한다는 말이나 스킨십은 어렵고 서비스나 선물은 필요하면 할 수 있는거지만, 시간은 오롯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쓸 수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듣자, 갑자기 머리를 때리는 깨달음이 왔다.

펜데믹 때문에 매주 월요일 밤에 화상회의 앱으로 만나 일상을 공유했고,
일년에 세번 씩은 대면해서 만날 기회를 만들어 집에서 모였다.
사는 곳이 다 달라 다함께 그 정도 모이는건 서로가 최선을 다하는거라고,
그리고 우리는 가족이니까 마땅히,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곱씹어 생각해보니
집에 있는 동안 딸아이는 자신의 시간을 온전히 우리에게 내주었다.
함께 게임하고, 영화 보고, 매끼 함께 식사하고, 색칠하고...
할 수만 있다면 온전히 함께 시간을 보냈다.

사실 그것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저 늘 그래왔기에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만 여겼었는데
딸 아이는 자신의 방식으로 우리를 사랑하고 있음을 계속 나타냈던 것이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딸아이에게 그렇게 깊은 뜻이 있는 줄은 정말 몰랐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딸아이가 했던 모든 일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 아이가 사랑을 나타냈던 그 모든 순간 순간을..
그리고 딸아이에게 진심으로 감사했다.

연말 휴가가 끝나고
다들 자신의 거처로 돌아가 다시 우리는 화상회의 앱으로 만난다.
매주 월요일 밤, 한번도 핑계대지않고 온전히 시간을 내어주는 아이들.
그것이 우리끼리의 약속이기 이전에
사랑이 동기였음을 난 이제 확실히 알겠다.

말이든,
스킨십이든,
서비스든,
선물이든,
시간이든,
어떤 방법이 되었든...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은 표현되어야 한다.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적절한 때에 사랑을 표현해보자.
표현하지 않은 사랑은 그것이 설사 사랑이었다 하더라도 결코 알아낼 방법이 없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