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를 보니 어느새 보름이 지났다.

98세의 나이,
그만하면 장수하셨다고 사람들은 말했다.

하지만 식구들은 하나 같이 우리 아버지는 100수 하실거라 얘기하곤 했다.
치매가 왔지만 주위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정도는 아니었다.
점잖은 치매, 이쁜 치매라고 했다.
아무리 치매가 점잖게 왔다해도
아버지는 하루가 다르게 자신을 잃어갔다.
그의 기억 속에 더이상 우리는 없는 것 같았다.
먼 기억 저 편...
어린 시절 가장 행복했던 자신의 모습, 그 즈음에 있었을까?

영상 통화로 본 그는 늘 희미하게 웃고 계셨다.
나를 기억하지 못하지만,
괜찮다고 생각했다.
멋진 바바리를 걸친, 강단있는 풍채의 미남자를 내가 기억하니까.
그래도 작아지고 볼품 없어진 당신의 모습은 볼 때마다 아팠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2주 전쯤,
작은 언니가 아버지 앨범에서 찍은 사진을 한 가득 보내왔다.
두 분 결혼 사진부터 한창 나무같고 패기 넘치던 젊을 때 모습,
나이들어가며 더 부드러워진 당신의 모습,
가족들과 어울려 식사하고 즐거워하는 모습,
증손녀 유모차를 끌고 걸어가는 모습,
날 보내며 '이게 마지막일지도 몰라'하며 눈물 글썽이던 당신의 젖은 모습까지.

한참을 들여다보고 들여다보다가
아버지 일대기 비슷하게 동영상을 만들어봤다.
그런데 그때 만든 영상이 당신을 추모하는 추모 영상이 되고 말았다.
그 영상을 만든지 2주만에 갑작스럽게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을 비롯해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한 많은 사람들을 위해
Zoom으로 장례식이 준비되었다.
우리는 남가주에서, 북가주에서, 워싱턴주에서 그렇게 줌으로 당신을 추모했다.
추모영상은 나의 마지막 선물이 되고 말았다.

그가 떠난지 보름이 지났다.
살아있는 사람은 어떻게든 일상을 살아낸다.
긴 시간 아버지 곁에 계셨던 엄마는
영양제 주사를 맞으며 일상을 버텼고,
우리들은 문득 문득 울컥해했다.

며칠 전,
가족들은 아버지 묘소에 철쭉을 심고 왔다고 말했다.

"아버지가 철쭉을 좋아하셨나?"

생각해보니 나는 아버지에 대해 그닥 아는 것이 없었다.
내 아버지에 대해 내가 아는 10가지를 댈 자신이 없다.
어찌어찌 심사숙고해서 댄다 한들
당신을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카톡 프로필에,
사진을 정리하다가 찾은,
그리 젊지도 늙지도 않은 옅은 미소의 당신 사진을 걸어두었다.

내 기억 속에 당신은 그렇게, 살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