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함께 [기생충]이란 영화를 봤다.
봉준호 감독, 칸 국제 영화제, 황금 종려상, 송강호, 장안의 화제, 미국 상영 1500만불 달성...
이것들은 기생충이라는 영화에 따라오는 수식어들 중 일부이다.
영화가 개봉하기도 전에 칸의 영광을 쟁취해서 화제가 되었음에도
이상하리만치 나는 그 영화에 무관심했다.
애써 기사를 찾아보지도 않았고 그 내용에도 그닥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래서 영화를 보기 전까지 그저 칸에서 황금 종려상을 받은, 송강호가 나오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 그뿐이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난 후에는 그 내용에 대해 철저하게 무관심하기를 참 다행이다 싶었다.
만약...스포일러를 접했다면 내가 그 정도까지 몰입할 수 있었을까?
극적인 반전과 그것이 나타내고자 하는 상징성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을까?
지금 이 글을 보는 누군가는 [기생충]이란 영화를 봤을 테고
또 누군가는 아직 보지 않았을 것이기에
영화 후기는 생략하기로 한다.
그리고 앞으로도 화제가 되는 영화는 내용에 철저히 무관심한 후 보는 것이
영화를 보는 재미가 배가되는 것임을 기억하기로 한다.
딸 아이가 유리구슬이 들어간 무거운 이불을 사왔다.
지금까지 사는 동안 듣도 보도 못한 이불인데
덮으면 포근하다고, 추위를 많이 타는 엄마 겨울에 덮으라고 사왔단다.
마음 속은...'참말 어이가 없네...무슨 이런 이불을 사왔다냐. 무겁기만 무겁고 덮을 수나 있을까?'
겉으로는..."진짜 포근해지는이불이야? 신기하네..당장 덮어봐야지!"
어쨌든 그날 밤 무거운 유리구슬 이불을 개시했다.
원래는 혼자 덮는 사이즈인데 옆으로 길게 펴서 남편과 함께 덮었다.
평소에 얌전하게 누워서 잠자는 스타일이 아니고 이리저리 뒤척이며 잠을 자는 나에게는
확실히 무거운 유리구슬 이불은 움직이지 않는데 효과가 있었다.
우선 무거워서 몸을 움직이기가 힘들고
양끝을 무게로 꽉 잡아줘서 바람이 들어올 틈을 주지 않아 따뜻했다.
배를 꼬옥 덮어주니 묵직한 느낌이 포근했다.
아침이 되고, 딸아이는 이불이 어땠냐고 물었다.
솔직히 첫날은 포근하고 바람을 잡아주는 따뜻한 느낌보다 무겁다는 느낌이 강해서
정확하게 느낌을 말해주고 며칠 더 덮어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유리구슬 이불 2주 째,
기온은 더 떨어졌고 이불을 덮는 우리는 훨씬 더 따뜻해졌다.
이제 이불의 무게도 적응이 되었고 앞으로 겨울엔 이 이불 없이는 지내기 힘들다는 생각도 하게 됐다.
때론 무관심함으로 얻게 되는 감동이 있고
몰랐던 것을 알게 되어 얻는 감동이 있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받게 되는 선물이
기대하고 받은 선물보다 더 기쁜 것처럼
내게 영화 [기생충]이 그랬고,
무거운 유리구슬 이불이 그랬다.
식탁 위에 곧 꽃을 피우려고 하는 '난' 화분이 있다.
아는 언니가 자기 집에 놔뒀다가는 죽을 것 같다며 우리집에다 던져놓은 것인데
남편이 분갈이를 해주고 살짜쿵 신경을 썼더니 싱싱해진 것은 물론이고 이제 꽃까지 피울 심산이다.
활짝 꽃이 피는 날.
화분을 들고 아는 언니 집에 가야겠다.
그 언니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을 것이기에 그 기쁨은 배가 되겠지.
내게 영화 [기생충]이 그랬고,
무거운 유리구슬 이불이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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