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날이나
맑은 햇빛이 쨍쨍하다가 갑자기 흐린 날이 되곤 하면 어김없이 호떡이 생각난다.
날씨가 받쳐주면야 부침개도 생각나고 팥죽도 생각나고 군밤에 군고구마 생각도 절로 나지만
뭐니뭐니해도 내겐 호떡이 제일 먼저다.
대학교 후문 옆 즐비하게 늘어선 포장마차에는 없는 게 없었다.
그래도 가난한 대학생 가벼운 주머니 속 동전 몇 푼이면 푸짐하게 즐길 수 있는 것은
단연 호떡이었는데 두개만 먹어도 배가 부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 향기로운 마가린 냄새는 덤이지 않았겠는가...
우리 삼총사는 오전 수업이 끝나면 늘 호떡집을 찾곤 했다.
우리를 찾으려면 호떡 집에 가면 된다며 심지어 호귀들 (호떡 귀신들)이란 별명까지 지어준 친구도 있었으니
그 정도면 거의 중독 수준이었달까?
높이가 허리 만큼이나 오는 다라이에 호떡 반죽을 가득 해오신 호떡집 아주머니의
신박한 손놀림에 넋이 빠지고 군침을 흘리는 것도 잠시..
그때 먹었던 호떡은 참 맛있고, 달았고, 배불렀다.
먹거리에 대한 기억은 시간이 지나도 계속 그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모양인지
미국에 와서 호떡 믹스를 만났을 때의 감격을 잊을 수가 없다.
그렇게 호떡 믹스를 사와 반죽을 하고 넓적한 대접으로 누름개를 대신해
겨울엔, 흐린 날엔 호떡을 해먹곤 했다.
언젠가 호떡 믹스에 누름개가 사은품으로 들어있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의 기쁨은 말로 다 형언할 수 없을 정도였다.
사은품이다보니 누름개의 사이즈도 작고 누를 때 적잖은 힘이 들어가긴 했지만
넓적한 대접에 비하면 새로운 세상이었다.
늘 호떡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고 늘 맛있는 호떡을 갈망하다가
마침내 호떡 반죽을 직접 해보면 어떨까..하는 기특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급기야~
인터넷에 떠도는 각종 레시피 가운데 내게 딱맞는 호떡 레시피를 찾게 되었다.
아는 언니에게 해줬더니 예전에 먹던 호떡 맛이라고 너무 좋아했다.
마침 그 언니가 한국에 다니러 가게 되었는데
다른 건 몰라도 호떡 누름개는 사갖고 와야 한다며
예전에 포장마차 호떡집 아줌마가 쓰던 호떡 누름개를 두개나 사갖고 왔다.
반죽 레시피에
호떡 누름개에
모든 것이 구비되었다.
이제...호떡집 아줌마가 되는 일만 남았다.
친구들이 모여 비빔밥을 해먹자고 약속한 날.
후식을 호떡으로 결정했다.
아몬드와 시나몬 가루, 흑설탕을 넣어 만든 호떡 소에
조금은 고급지게 버터로 호떡을 구워냈다.
대박, 인기다.
때마침 흐린 날씨 연출.
호떡의 맛이 배가 됐다.
누구에게나 추억의 음식이 있다.
엄마가 해주신 개떡이나
노랗고 동그란 카스테라 기계에다 구어낸 카스테라도
가벼운 주머니를 부끄럽지 않게 해준 그 시절 그 호떡도
내겐 다 추억의 음식이다.
호떡 냄새 집안 가득 풍기는 흐린 어느 날.
호떡은 나에게 만이 아니라 다른 이에게도 그렇게 추억이 되었다.
4
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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