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는 대학원을 마치면 두어 달 간은 여행도 하면서 좀  쉬다가

9월쯤 일을 시작하고 싶다고 했다.

쉼 없이 달려온23년 간의 학교 생활이 지겹기도 했을 테고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 아무래도 시간적 여유가 없을 거라

여행을 좋아하고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아이는 그리 마음을 먹은 것 같다.

그녀의 결정에 엄마는 마음 다해 동조했다.

꾀 한번 부리지 않고 자기 자리를 지키며 참 열심히도 달려온 아이.

충분히 쉴 자격이 있음이다.

 

여행을 계획하면서

아무래도 시간이 많은 엄마랑 단 둘이 미국 횡단 기차여행을 해보자고

암트랙 웹사이트도 들락거려보고 언제쯤이 좋을지 의견도 조율했다.

한참 그런 이야기들이 오가던 3월쯤,

거의 암트랙을 예약할 그 시점에,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미국과 세계 상황이 2월과는 많이 달라졌고

여행 이야기는 먼 남의 나라 이야기, 사치가 되어버렸다.

 

근사하게 논문을 발표하고 23년 학교 생활을 마무리하고 싶었던

그녀의 계획은 그렇게 수포로 돌아갔고, 여행도 물 건너가 버렸지만

논문 심사, 심지어 졸업식까지 모두 화상회의 앱으로 마칠 수 있었다.

격리 생활 중에 그런 모든 일이 가능했다니..

현대 과학의 진보가 없었다면 이루어지지 않았을  일이라고 생각되는 대목이다.

 

논문을 준비하면서 일자리를 찾는 일까지 병행한 그녀는 7월부터 일할 직장을 찾게 되었다.

몇 차례의 전화 인터뷰를 거쳐

프레젠테이션, 대면 인터뷰 등이 화상회의 앱으로 이루어졌는데

마침내 offer를 받던 날, 딸아이가 처음으로 뱉은 한마디는

무엇보다도 더 이상 하루종일 화상회의 앱으로 인터뷰를 안해도 되서 좋단다.

꼼짝없이 한 자리에 앉아 사람만 바꿔가며 같은 맥락의 질문에 같은 대답을 해야 했을테니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으리라.

코로나 사태로 여행도, 노는 것도 힘들어진 때에

마침 회사 쪽에서도 7월부터 일을 해달라고 해 7월 중순부터 재택 근무로 일을 시작하게 됐다.

 

마침내, 내일 딸아이는 회사가 있는 도시로 이사를 간다.

집에서 차로 7시간 걸리는 곳으로 떠나게 되어 자주 못 볼 것이 불 보듯 뻔하지만

비행기로 두 달에 한번씩은 오겠단다.

 ‘말이 쉽지…그게 그렇게 쉽나~’

그래도 그렇게 말해주니 엄마는 고마울 따름이다.

코로나가 잡히지 않는 한 비행기 타고 다니는 건 당분간 격리가 필요한 일이고

잘하면 그녀의 얼굴은 올 연말이나 되야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사 가기 전 2주 동안 그녀는 집에서 엄마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대학교 여름방학 이후론 2주 동안이나 함께 보낸건 참 오랜만이다.

 함께 퍼즐하고, 뜨게질하고, 드라마 보고, 먹고, 치우고, 정리하고, 짐 챙기고…

함께 한 시간이 길어질수록

떠나야 할 시간이 가까워졌다.

그렇게 그 날은 내일이 되었다.

 

아빠는 담담하지만

엄마도 애써 담담하지만

헤어지는 건 연습해도 잘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래도 쿨하게 웃으면서 보내줘야지.’

엄마는 생각은 늘 그렇게 하지만 항상 눈이 먼저 울고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잘 살아!

하던 대로 해!

우리도 하던 대로 할게!

계속 널 응원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