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정보가 유효하지 않습니다.
보안을위해 재로그인해주십시오.

혼자 굴러가는 아이들

아파서 배우는 지혜 김복희 (bokkp) 2020-7-31  09:01:07


알이 작은 사과와 당근이 생겼다.
당근은 우리집에서 여간해서 잘 소비가 되지않는 야채 중 하나.
냉장고에 자리만 차지하고 있길래 사과랑 함께 갈아 마셔버리기로 작정했다.

빠르고 손쉬운 방법을 생각해낸게 기특해서였을까?
자만했다.
굳이 핑계를 대자면
사과는 알이 작았고
칼은 엊그제 남편이 갈아줘서 날이 설대로 서있었다.

삐끗~
찰나였다.
왼손가락 검지 첫 마디가 움푹 패였다.
아픔을 느낄 새도 없이 피가 쏟아졌고
당장 손에 잡히는 페이퍼 타올로 손가락을 감쌌다.
그리고 고무줄을 찾아 지혈부터 했다.

지혈이 된 것 같아 약을 바르려고 손가락을 들여다보니
꽤나 깊다.
손가락 깊이, 그 너머에 있는 속이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깊다.
순간 '움푹'이란 표현이 참으로 적절하다는 걸 느꼈다.

후회가 물밀듯이 밀려들었다.
좀 더 조심했어야지...
뭐가 그리 급했니..
부엌 칼을 쓴 30년 동안 무수히 되뇌었던 말이었음에도
잠깐 방심하면 꼭 사단이 난다.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안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왔음에도,
여차해서 겨우 워험을 비껴갔던게 부지기수였음에도,
서두르다가
방심하다가
된통 당하기 일쑤다.
그러므로..
이 아픔은 나의 서두름에, 방심에 대한 댓가다.

아이들이 운전을 막 시작했을 때,
고속도로를 가다가 출구를 놓치면
서두르지말고
다음 출구에서 내려 돌아가라고 가르쳤다.
시간상으로 길어야 10분이고,
그런 실수를 감안해 조금 서둘러 출발하라고도했다.

참말이지, 말은 청산유수다.
여느 선생님 찜쪄먹는다.
그런데도 정작 늘 서두르고 방심하는 사람은
말이 번듯하고 좋은 '나'라는 사실.
더불어 그 역시 반성한다.

손가락 끝이 다쳤을 뿐인데 신경쓰이는게 한두가지가 아니다.
우선 타이핑이 힘들다.
컴퓨터로 타이핑을 하려 했더니 자꾸 오타가 난다.
그래서 이 컬럼은 휴대폰으로 작성하고 있다.
엄지 두개를 이용한 엄지 타법으로.

또 샤워하고 세수하고 손 씻기가 힘들다.
음식 준비하고 설거지하는 것도..
다치기 전에는 그저 검지 손가락 하나였다면
다친 후는 그 손가락 하나의 존재감이 어느 때보다도 도드라진다.

생각해보니 우리의 지체는 참 겸손하다.
서로 협력해서 일하지만 내가 잘났네, 네가 못났네 하지 않는다.
싸우지도 않는다.
다만 어느 부분이 다치면 그 부분의 존재감이 어마어마하게 커진다.
그제서야 그 부분이 지금까지 조용히
제 몫을 해내고 있었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내 몸이니까 내 맘대로가 아니라
내 몸이니까 더 아끼고 사랑해야겠다.
덜 다치게,
덜 아프게,
그것이 말없이 제 할일을 해내는 내 지체들에게 
감사함을 나타내는 방법이리라.


Back 목록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