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드니까, 글쎄, 혓바닥도 같이 늙어 가는지 음식 맛을 잘 모르겠어.
내 딴에는 최대한 싱겁게 끓였는데 애들은 너무 짜다고 난리야.

콩나물도 맛없다, 김치도 맛없다, 엄마 솜씨가 왜 이렇게 형편 없어졌냐고 타박들이야.
남편은 아무 소리도 않는데 말이야.
그러고 보니 그 양반도 맛있어서 아무 소리 안 한 게 아니라 맛을 못느껴서 그랬나 봐.

- 박혜란의《다시, 나이듦에 대하여》중에서 -

이 글을 접했을 때 깜짝 놀랐습니다.

'아이쿠야, 이것은 내 이야기로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지요.

아직 40대 초반이라 이런 이야기를 하면 나보다 좀 더 나이드신 분들에게는 송구스럽습니다만

시대가 빠르게 변하는 것만큼 머릿속의 노화와 감각적인 노화는 빨리 오는 것 같거든요.

사실 요즘은 시대와 똑같은 보폭으로 발 맞추기가 힘든 탓에

그저 제자리 걸음만 걷고 있다 해도 그것은 이미 한참 뒤떨어져 버리는 것이 되고 맙니다.

게다가 시간이 어찌나 빠르게 흘러가는지

올해는 여느 해보다 더욱 더 빠르게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근데 이것이 비단 저만의 생각이 아니더군요.

많은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올해, 너무 빠르게 지난 것 같지 않아?" 하고 묻기 때문입니다.

이제 갓 대학 신입생인 딸아이의 입에서도 그 말이 나오는 걸 보면

이제 시간은 남녀노소를 가리지않고 빨리 가려고 작정을 한 것 같습니다.

다시 나이듦에 대해 생각하다가 문득 '품위'라는 단어를 생각해봤습니다.

해가 갈수록 곱다는 말과 품위가 있다는 말이

이쁘거나 아름답다는 말보다 더 가슴에 와닿는 요즈음,

'품위'라는 말에 대한 이해는 어쩌면 나 자신을 더 성숙하게 만들어줄 지도 모르거든요.

사전적인 의미로의 품위는 사람이 갖추어야 할 위엄이나 기품이라고 합니다.

깔끔한 정장에 멋스러운 가방을 들고 점잖은 머리 모양을 한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일단 외적인 면에서 참으로 품위가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그런 외적인 품위는 돈이 있고 없고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돈이 없으면 없는대로 깔끔하고 단정하게

품위있는 모습을 유지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니 일단, 품위있는 옷을 입고 단정하게 차리기만 하면

누구나 품위있는 모습으로 자신을 드러낼 수는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겉으로는 백번 품위있는 모습을 가장하고 있어도

그 사람의 행동이나 말투가 품위를 반영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에게 품위가 있다..라는 말은 결코 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한껏 품위있는 겉모습을 하고

쌍스러운 욕설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

인종차별은 기본이고 자기만이 최고라 생각하는 교만에 빠진 사람들..

부부가 맺은 언약에 흠집을 내는 사람들..

사기치고, 거짓말하고, 폭력을 일삼고, 살림의 과시에 자신을 내주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과연 품위있는 사람들일까요?

그래서 진정, 품위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겉사람과 속사람이 일치되야 하겠구나..생각합니다.   

오히려 겉은 좀 초라해도

말을 가려하고 상대를 배려하는 사람,

성을 내기 보다는 일의 원인을 찾아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

나보다 못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동정심이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훨씬 품위있는 사람이겠구나...생각합니다.   

그래서 품위란 말은 겉사람 보다는 속사람에 있는거구나..생각합니다.

나이듦과 품위있음이 비례가 되어 발전해나가기를 바라면서..

올해보다 내년에 한층 더 성숙한 우리가 되어보기를~

그래서 한살 더 나이듦은 한살 더 품위있어짐을 여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_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