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종종 볼 수 있는 친구들에게 무엇을 보았는 지 물을 때가 있다.

얼마 전에 숲속을 산책하고 돌아온 친구에게 무엇을 보고 왔는 지 물은 적이 있다.

별로 특별한 것을 본 것이 없다고 그는 대답했다.

나는 자문해 보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한 시간이나 숲속을 산책하고도 볼 수 없었다니?

볼 수 없는 나도 손끝의 촉감을 통해서 수백 가지의 흥미로운 것들을 발견하는데...

봄에는 기대에 찬 손으로 나뭇가지에 돋아나는 꽃눈을 만질 수 있으며,

겨울잠을 자고 깨어나는 새순을 만질 수도 있는데,

촉감만으로도 이러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데,

보는 경우엔 얼마나 많은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까?

내가 만약 3일 동안만이라도 볼 수 있다면...

 

-헬렌켈러 <헬렌켈러 자서전> 중에서-

 

이 글을 읽으면서 별 생각없이 누리고 있는 우리 지체의 혜택에 대해

조금 더 심각하게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우선, 타자를 마음껏 칠 수 있는 양손의 자유로움은 어떤가요?

얼마 전에 한국에 있는 오빠가 눈길에 미끄러져 땅바닥에 손을 짚었는데

그만 왼손 가운데 손가락이 부러졌다고 합니다.

워낙 오른손잡이라 평상시에는 별로 쓸일도 없어 보이는 왼손 가운데 손가락이

막상 사고를 당하고나니 어찌나 쓸일이 많이 생기든지..

왼손 가운데 손가락에 대한 고마움을 다치고나서야 백배 천배 느끼고 있다고요.

 

그 말을 듣고나니 당장 주부인 저는

손가락에 부상을 입으면 밥 해 먹기 힘들겠구나...

청소하기도 힘들겠구나..

샤워하기도 어렵겠구나..

결국 무척 생활이 불편해지겠구나...싶었습니다.

그러니 어찌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두 손이 감사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오만가지 색상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우리의 눈은 어떤가요?

몇 년 전부터 남편은 프로그레시브 렌즈, 즉 다초점 렌즈를 끼게 되었습니다.

보통 노안이 오는 사람들의 안경 아래에 돋보기가 곁들여져 나이들어 보이기 십상이었던 것이

이제는 최신 기술로 말미암아 렌즈는 보통인 것 같은데 초점이 여러개 있는 것이지요.

비록 노안이 오고 다초점 렌즈 신세를 지긴하지만

개나리의 노란빛을 마음껏 즐길 수 있고,

이제 막 싹이 돋아나기 시작한 텃밭의 쑥갖의 싱그러운 초록빛을 즐길 수 있으니

참말로 감사해야 할 일이지요.

 

저도 슬슬 노안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보통은 책을 볼 때나 tv를 시청할 때 안경을 쓰곤 했는데

언제부턴가 책을 볼 때는 오히려 안경을 벗는 것이 편하거든요.

'결국 올 것이 왔구나!' 생각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시각적인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기에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마음껏 뛰어다닐 수 있는 두 다리는 또 어떤가요?

80 대 중반이신 시어머니는 다리 관절 수술을 몇 번 받으신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일어나실 때 우리처럼 다리를 구부리지 못하고

죽~ 펴신 채로 일어나셔야 하지요.

특히나 궂은 날씨에는 통증이 더 심하게 느껴지니 많이 힘드시다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당신의 두 다리로 걸을 수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알고 지내는 연로한 할아버지 한 분도 얼마 전에 길에서 미끄러지셨습니다.

가볍게 삐인 정도겠지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 발목이 부러지셨다네요.

평소 활발하게 활동하던 분이라

한달 이상을 깁스를 하고 집안에 계시자니 얼마나 힘이 드실지... 

분명히 당신은 지금, 두 다리의 고마움에 대해 감사하고, 감사하고, 또 감사할 테지요. 

그렇다면...멀쩡한 두 다리를 가진 우리들은 그 감사함을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을까요.

 

이렇듯 우리 지체에 대한 고마움을 생각하다가

'혀'에 대한 생각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잘못 사용하면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잘 사용하면 사람을 살리기도 하는...'혀'...

그 혀가 주는 혜택이 참으로 큰 반면

잘못 사용해서 생기는 치명적인 상처때문에

눈도 두개요, 귀도 두개요, 콧구멍도 두개지만 입만 하나인 모양입니다.

보고 듣기는 두배로 하고 말하기는 그 절반만 하라는 뜻에서요.

 

요즘 청소년들은 말하는 중에 조금씩 나쁜 말을 섞어 사용하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좀 더 cool 하게 보인다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워낙 나쁜 말을 섞어 말하니까 오히려 사용하지 않는 아이들이

어딘가 부족하고, 모자라고, 시대에 뒤떨어진 생각까지 든다고요.

그래서 착한 아이들도 말하는 중에 어느 정도 나쁜 말을 사용하는 것이 기정 사실이라고요.

 

그래서 언젠가 우리 아이들에게 물은 적이 있습니다.

 

*엄마: "혹시..너희들도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 나쁜 말 쓰니?"

*아이들: "아니오, 안 써요."

*엄마: "그럼 친구들이 뭐라 안하니?"

*아이들: "처음에는 써보라고, 장난삼아서 글씨 써주고 그냥 읽어보라고..그랬는데

              그래도 우리가 안하니까 이제는 우리 앞에서는 나쁜 말 안해요." 

 

모두가 나쁜 말을 하는 세상에서 나쁜 말을 사용하지 않는 아이들이

그저 그것만으로도 감사한데

친구들에게 좋은 영향까지 미친다니

참으로 '혀'를 잘 제어한 축복이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비단 청소년 뿐만 아니라 배울 만큼 배우고 인생을 살만큼 산 사람도

나쁜 말을 섞어 하는데 조금도 지체함이 없는 경우도 보게 됩니다.

결국 말하는 것도 습관이고 보면

처음에 재미 삼아 한 두번 했던 것이 평생 입에 붙어 고치기가 힘들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혀는...아름답게 사용해야 하는 것이 아닐지요.  

 

헬렌켈러의 자서전을 보고 생각해본 우리 지체의 혜택..

그 혜택에 대해 매일 매일 감사함과 더불어

그 지체를 제대로 써보자 맘 먹어 봅니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나이긴 하지만

그런 지체가 없는 다음에야 결코 '나'가 아니니까요.

 

봄으로 가는 길목에서 발이 시린 복희 아줌마가 인사드립니다.^__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