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여인의 향기'에서 알파치노는 "실수할까봐 걱정돼요"라며

탱고 추기를 두려워하는 여인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한다.
"두려워할 필요 없어요. 실수하면 다시 추면 되니까요.
실수해서 발이 엉키기 시작했다면, 당신은 지금 탱고를 시작한 겁니다."
알파치노가 말한 핵심은 하나다.
중요한 것은 발이 뒤엉키는 것도 아니고 실수도 아니다.
지금 멋진 춤을 추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 서광원의《시작하라..그들처럼》에서 -

언제 보았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알파치노가 맹인으로 열연했던 영화 '여인의 향기(scent of a woman)'는

저로하여금 알파치노라는 배우가 연기 잘하는 명배우임을 다시금 각인시켜준 영화입니다.

매 장면이 다 명장면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여인의 향기' 하면 떠오르는 장면은

알파치노가 멋진 레스토랑에서 처음 만난 여인과 탱고를 췄던 장면인데요.

맹인인 알파치노의 표정이 탱고의 박자와 어우러지는 것만으로도 이미 멋진 일이건만

위에 소개한 대사까지 가미되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영화가 주는 메시지가 명확해지는 것 같습니다.

작년 9월에 대학교 1학년, 새내기가 된 딸아이가

어느새 1학년 마지막 쿼터 중간고사를 보게 됐습니다.

가족과 떨어져 본 적이 거의 없는 터라 기숙사에 살게 된다는 것이 조금은 들뜨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도 된다고 고백하던 아이의 모습을 기억합니다.

그렇게 들뜸과 떨림으로 시작했던 아이의 첫 출발이

어느새 두 고개를 넘고 세 고개를 넘으려 하고 있습니다.

두려움으로 조금 발이 뒤엉켰지만 이미 아이의 첫 발은 내디뎌졌고

그렇게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들은 누구나 두려움을 갖고 있습니다.

실수할까봐 두렵고,

다칠까봐 두렵고,

아플까봐 두렵습니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두렵고,

스스로 자책감이 들어 낙담이 될까 두렵습니다.

일일이 열거할 수 없는 숱한 두려움 가운데 살면서도

우리는 매일 아침에 눈을 뜨고 매일 첫 발을 내딛습니다.

실수도 하고,

다치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지만..

때론 낙담하고, 다른 사람을 의식하며 살기도 하지만..

그렇게 다시 하루를 살아내고 있습니다.

문득 하루살이와 매미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오늘 밖에 모르는 하루살이와

일년 밖에 모르는 매미의 이야기.

우리에게는 내일도 있고 내년도 있고 앞으로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조금 실수할지라도 지금 한 발을 내디뎌봅니다.

조금 두렵지만..지금 내디딘 내디딤에 확신을 갖고 조심스레 앞으로 나아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