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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굴러가는 아이들

나의 콜럼버스 데이 김복희 (bokkp) 2018-5-31  15:32:13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내 첫 마디..
"오늘이 벌써 5월의 마지막날이다..."

그 말을 들은 남편의 첫 마디..
"오늘은 나만의 28주년 콜럼버스 데이다.."

뭔 소린가 했더니 28년 전 오늘은 
남편이 생전 처음 미국에 첫 발을 내디딘 날이란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고 그 날이 콜럼버스 데이가 되었으니
미국에 첫 발을 내딘 오늘도 자신만의 콜럼버스 데이라는 말씀.

뭐든 붙이기 나름이구나..싶으면서도
뭐든 붙이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심리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참말이지 달력을 보면 별별별 날들이 다 있다.
5월 달력만 보더라도 
근로자의 날, 어린이의 날, 어버이 날, 유권자의 날,스승의 날, 발명의 날, 부부의 날, 성년의 날, 방재의 날, 바다의 날...
달력의 3분의 1이 온통 날들로 가득찼고,
게다가 5월 전체를 아울러서는 가정의 달이라 이름붙였으니 
가히 날들의 잔치라 아니 할 수 없겠다.

특별히 그 날에 그것들을 기리는 것은 바람직한 일인 것 같아도
딸랑 그 날만 그것들에 대해 생각하고 잊어버리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말이다.

어버이 날만 해도 그렇다.
그 날엔 카네이션 꽃 사다 달아주고 이것 저것 선물해주다가
그 다음 날부터 어버이 잊고 지낸다면...그 선물이 그렇게나 감사하고 고마운 것이라 할 수 있는지..
그래서 나는 개인적으로 날들을 지키지 않는다.
이유인즉슨, 어느 특정한 날이 아니라 매일매일이 그 날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매일 어버이를 생각하고, 매일 스승을 생각하고, 부부를 생각하고, 바다를 생각하고...
매일 감사하고...

혹자는 '그 날만이라도 기억해주는게 어딘가?' 생각할 수도 있다.
그것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래서 그 날들이 존재하는 지도 모르겠다.

돌아돌아서 다시 콜럼버스 데이 이야기로 가보자.
자라서 미국에 온 사람은 모두 자기 만의 콜럼버스 데이를 갖고 있다.
나의 콜럼버스 데이는 6월 19일.
다음 달이면 27 주년이 된다.

이제는 미국에 산 세월이 한국에서 산 세월을 앞질러버려 
한국에 가면 좋으면서도 발에 꼭 맞지 않은 신을 신은 것처럼 이것저것 불편한 것들이 있다.
운전도 그렇고, 주차도 그렇고, 야식 문화도 그렇고, 먹자거리도 그렇고, 끼리끼리만 모이는 것도 그렇다.
분명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많은 한국이지만
27년 동안 시나브로 미국에 젖어 들어 사는 세월을 무시할 수는 없는 모양이다.
 
콜럼버스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와 부정적인 평가를 위키피디아에서 발췌했다.
콜럼버스가 아니었다면 또 다른 누군가가 신대륙을 발견하고 그의 이름을 붙였을지 모르겠다.
그랬다면 남편의 오늘은 또 다른 누군가의 이름을 붙인
나의 28 주년 *** 데이가 되었을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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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 평가[편집]

콜럼버스는 죽을 때까지(1506년) 자기가 발견한 땅을 인도라고 믿었는데, 그의 서회 항로 개척으로 인하여 아메리카 대륙이 비로소 유럽인의 활동 무대가 되었고, 현재의 미국(United States of America)이 탄생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토대가 생길 수 있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역사적 의의를 지니고 있다.

혹자는 선사 시대에 아시아인들이 이미 베링 해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에 정착하였고 그 전에도 바이킹들이 발견한 바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하지만, 당시에 아메리카 대륙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유럽인들의 세계관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는 점은 분명하다.

부정적 평가[편집]

두 번째 항해 동안 콜럼버스와 그의 부하들은 역사가들에 의해 '홀로코스트(집단학살)'이라고 명명되는 정책을 폈다. 타이노 원주민들은 조직적으로 노예화되고 살해되었다. 수백 명이 유럽으로 팔려갔고 다수는 그 과정에서 죽어갔다. 나머지 인디언들은 금을 가져오게 하여 그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수족을 잘랐다. 실제로 금이 그렇게 많지 않아서 많은 원주민들은 도망갔고, 스페인인들은 이들을 사냥의 방식으로 죽였다. 원주민들은 이에 저항하였으나 스페인의 무기가 훨씬 우수했기 때문에 스페인인들을 막아내기에 역부족이었고, 유럽에서 옮아온 전염병은 그들의 삶을 파괴했다. 절망 속에서 원주민들은 자식과 동반집단자살하였다. 25만 명에 달하던 타이노 원주민의 수는 2년 만에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나머지는 노예화되고 사망률이 높은 대농장에서 일해야 했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60년 만에 타이노 원주민은 수백 명만이 남았고, 100년이 더 흐른 뒤에는 손에 꼽을 인구만이 남았다. 이러한 잔혹한 정복자로서의 콜럼버스의 모습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 - -https://ko.wikipedia.org/wiki/크리스토퍼_콜럼버스에서 가져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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