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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굴러가는 아이들

소리없는 아우성 김복희 (bokkp) 2019-3-29  11:52:54
누구나 알고보면 깊숙한 문제가 있고 함께 살기가 힘든 사람이다. 
우리에게는 스스로를 잘 이해하고 현실적인 기대를 갖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문화가 필요하다. 
더 인내하고, 용서하고, 이해하고, 감사할 수 있게 주기적으로 일깨워줄 문화가 필요하다. 
그 출발점은 우리가 천성적으로 허술한 존재임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이다. 

 - - - - - - The School Of Life의 (끌림) 중에서 - - - - -  


PD 수첩을 봤다. 
'소리없는 아우성' 이라는 부제가 달렸고 청소년 자해를 다룬 내용이다. 
깜짝 놀랐다. 

그저 놀란 정도가 아니라 보는 내내 너무 여러가지 감정이 교차했다. 
무섭기도 하고, 측은하기도 하고, 심장이 심하게 떨리기도 하고, 가슴 깊은 곳에선 슬픔도 차올랐다. 

자해를 하는 학생의 입장이 되기도 했다가 그 학생의 부모가 되기도 했다. 
내가 중학생이었을 때 내 앞에 앉은 아이가 퇴학을 당한 일이 있었다. 
도덕적 해이가 심각한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그 아이의 퇴학은 전적으로 부당해 보이지만 
40년 전에는 학교에서 요구하는 도덕 표준이 무척 높았다. 
그래서 아이는 퇴학을 당했다.  

아이의 손가락에는 자신이 잉크로 써넣은 여러 문신이 만들어져 있었고 
팔에도 간혹 칼자국이 보였다. 
그게 뭔지 그땐 몰랐었는데 생각해보니 그것이 자해가 아니었을까 싶다. 

문제아로 낙인 찍힌 아이들에게서만 간혹 발견되곤 했던 자해의 흔적들. 
학교는 그들의 싹을 도려내면 다시 평범하게 아무 일 없이 굴러갔다.  

그런데..40년이 지난 후.. 
청소년 자해는 비단 학교에 적응을 못하는 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엄친아들.. 집안도 좋고, 공부도 잘하는 아이들이 그 폭풍의 눈에 있다는 것이다.  
부모들의 기대는 하루가 지날수록 하늘을 찌르고, 
거기에 부응하지 못하면 쉽게 낙오자로 만들어버리는 집안과 학교의 공기는 또 어떤가? 

그 때문에 아이들의 스트레스는 부모의 기대에 비례해지고 
불안, 초조, 말못할 고민, 상실감, 폐배감, 자존감 하락이 커져만 가는 것이 사실이다.  

심리학자, 정신과 의사들은 말다. 
아이들은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몸에 칼을 댐으로 자기를 봐달라고 소리치고 있는 것이라고.. 
이제 그들의 소리없는 아우성에 관심을 가질 때라고.. 
이 아이들의 자해에 어른들도 책임이 있다고.. 

퇴학을 당했던 내 앞자리, 
그 아이는 지금쯤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거칠긴 했지만 착한 성품에 오똑한 코를 가진, 
까무잡잡한 피부에 마르고 작은 아이였는데 문득 그 아이가 궁금해진다. 
어디선가 두 발을 굳건히 땅에 내딛고 잘 살고 있기를 기대해본다. 

만약..40년 전에 지금보다 높은 도덕표준이 요구되던 그 때에 
그 아이의 부모나 선생님이나 친구들이 그 아이의 소리없는 아우성에 조금만 더 깨어있었더라면...
결과는 어땠을까? 

그 어느 때 보다도 우리 아이들에게 현실적인 기대를 갖고 이해하고 용서할 마음을 갖게 된다. 
그들도 허술하고 나는 더 허술하다.
그것을 먼저 인정하면 답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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