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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굴러가는 아이들

5월의 비, 선물 김복희 (bokkp) 2019-5-28  20:27:52
이곳 생활 22년 차, 
5월에 비가 내리고, 긴 옷에 가디건까지 챙겨 입고, 소파에서는 블랭킷으로 몸을 감싸고, 심심찮게 삼한사온을 경험한다. 

남가주에서만 40년 넘게 사셨다는 분도 이런 날씨는 처음 보셨다고 말했다. 
세계적으로 이상기온이 많다보니 이곳도 이런 날씨가 이상기온인게 틀림없다. 
이상기온, 지구 온난화, 엄청난 속도로 녹아내리는 빙하, 먹이를 잃어가는 북극 곰, 쓰레기 대란 등에 대한 것들은 
잠시 5월에 내리는 축복같은 비 때문에 잊기로 한다. 

그저 집에 들어앉아 빗소리만 듣고 있자니 문득 아까운 생각이 들어 우산을 받쳐들고 뜰에 나가본다. 
똑똑 또도독... 똑똑 또도독... 
비를 맞아선지 한껏 생기를 품은 나무들이 마치 큰 소리로 숨을 내쉬는 것 같다.  

작년에 큰 재미를 보지 못했던 복숭아 나무에 복숭아가 몇 개 열려있다. 
석류 나무는 올해 도대체 얼마나 많은 석류를 내려는지 붉은 꽃이 한 가득이다. 
작년에 심은 아보카도 나무도 잎이 제법 많이 났다. 
초록잎들이 참 이쁘다. 
이쁜 정도가 아니라 살아있다. 

 사람도 비를 맞으면 기억력이 살아나고 눈이 밝아지고 얼굴에도 생기가 돈다면 어떨까?  
오존층이 파괴됐네, 산성비가 내리네, 그래서 비를 맞는건 위험하네...지만 
비를 맞으며 다섯 살 먹은 어린아이 마냥 해맑은 마음을 갖게 되는건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 같다.  

어떤 이는 건망증이 많은 자신을 가리켜 "난, 요즘 잊음이 많아"라고 표현했단다. 
시적인 그 표현이 하도 멋져서 요즘 나도 종종 애용하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잊음이 많아지지만 빗속에 우산을 받쳐들고 추억들을 하나하나 끄집어낸다. 

언젠가, 우리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때 우산을 받쳐들고 했던 놀이들.  
비만 오면 뒷뜰로 나가 "엄마...엄마..."불러댔었다. 
그러고선 "엄마, 이 놀이가 뭐게요?" 하고 물어봤었지. 
우산을 펴들고 바닥에 앉아 있으면 버섯놀이. 
우산을 바람 부는 방향으로 갖다대고 그 바람에 이리 쏠리고 저리 쏠리며 바람을 마구마구 피하며 노는 바람 놀이. 
이제 아이들은 더 이상 버섯놀이도 바람놀이도 하지 않지만 
잊음이 많은 나에겐 그때 아이들의 지었던 표정까지 오롯이 기억난다. 

아이들과의 추억이 비와 함께 새록새록 선명해진다.  
한참을 우산 속에서 거닐다가 비가 거세지자 집안으로 들어간다. 
고즈넉한 5월의 비 내리는 밤. 
5월의 비는 건기여야 할 우리 동네에 참말이지 하늘이 준 큰 선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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