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우기가 시작된걸까?
작년, 엘리뇨 현상으로 비가 엄청나게 많이 올거라는 예보에도 불구하고
정말 개미 눈곱만큼 비가 오다 말았었는데
올해는 라니냐 현상으로 비가 덜 올거라드니
어제부터 비는 천둥과 함께 하염없이 내리고 있다.
화초들, 잔디들이 파랗게 반색하고
황토빛깔 자랑하던 뒷산도 온 몸으로 반긴다.
참말이지 이런 날은 저절로 따끈한 차 한 잔이 생각난다.
속 차가운 나에게 그만이라는 대추차.
거기에 홍삼까지 풀어넣으니 이건 보약이 따로없다.
완전 한약 맛이다. 쓰다.
지난 금요일 한달 여 만에 아이들이 집에 온다기에
그저 먹이고싶다는 생각에
슬로우쿠커 동원해 잘 여문 대추에, 향이 진한 생강에, 계피까지
하루종일 끓여놓았던 대추차다.
키만 훌쩍 크고 살이 없는 아들 녀석은 한 달 사이 더 말라
배와 등이 붙은 것처럼 홀쭉..
"살이 더 빠졌네?" 하고 물으니
"목이 좀...아파요. 수요일부터...큼큼.."
..음..불쌍불쌍...
그때 옆에 있던 딸아이..
"대학생 때는 진짜..맨날 아파요. 공부하고 숙제하고 잘 못먹고..잠도 잘 못자고.."
....아이고..불쌍한 것들...
아프면 아프다고 미리 말이나 해줄 것이지..
그래도 아들 녀석 아픈 줄도 모르면서 대추차를 끓여놓은 선견지명~
그 선견지명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후후훗..미소지으며 아들에게 내놓았다.
따끈한 대추차 마시고 며칠 집밥 먹고 쉬다 가면 낫지 않을까? 싶었는데
효과가 있긴 있었던 모양이다.
집에 와있는 동안 내내 자고 입맛이 없다면서도 밥 한 그릇 뚝딱 해치우고
대추차랑 과일도 주는대로 마시고, 먹고..
그래서인지 다시 학교로 돌아갈 때는 한결 나아진 모습으로 갈 수 있었다.
뒷뜰을 배경으로 비를 담은 비디오를 카톡으로 보내 살짜쿵 어떤지를 물으니
어제보다 낫다는 답이 왔다.
진짜..완전..다행이다.
큼큼거리던 아들의 목감기가
하루 종일 슬로우로 끓인 대추차를 먹고 나았는지,
오랜만에 집밥을 먹고 나았는지,
가족들을 만나 그저 좋아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그저 내 욕심은...
"어제보다 좀 더 나은 것 같아요."란 말 뒤에
"집에 다녀와서 더 좋아진 것 같아요."란 대답이 숨어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늘 아이들에게 집이 보약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골치 아프고 스트레스가 많이 쌓였었는데 집에 다녀와서 맘이 좀 풀렸다든가
몸이 잔뜩 안 좋아 꼼짝도 하기 싫었는데 집에 다녀와서 거뜬해졌다든가
문제가 있어 엄마랑 아빠와 의논을 했는데 거짓말처럼 해결책이 생겼다든가..
집에 오면 더 웃을 일이 생기고,
집에 오면 먹을 것이 생기고,
집에 오면 행복한 시간을 한아름 가져가는 것이라는 생각을
우리 아이들이 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에게 언제나 집은 새 힘을 주는 보약같은 곳이었으면 좋겠다.
그러려면...대추차를 미리 끓여놓는 선견지명도 필요하겠지만,
집이 주는 '따뜻하고 편안하고 행복한' 느낌을 계속 갖기 위한
나 스스로의 노력이 더 많이 필요하리라.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에게라도
"정말이지 우리집은 보약같아요." 라는 말을 할 수 있다면..
우리 아이들이 그런 말을 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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