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데이트..긴 여운
김복희 (bokkp)
2016-5-21 20:04:19
토요일 오전 9시.엘에이에 사는 딸아이를 만나기 위해 기차를 탔다.단돈 10불이면 집 근처 역에서 거기까지 가는 기차를 이용할 수 있는 데다엘에이에 있는 대중교통, 버스나 전철을 모두 이용할 수 있다 하고,어차피 엘에이에선 딸아이의 차를 이용할 테니 주차 걱정도 안녕이고,운전하면서 트래픽 신경 안써도 되고,이렇듯 느긋하게 칼럼까지 쓸 수 있으니가히 1석 4조라 아니할 수 없겠다.언젠가부터 딸아이는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거의 매일 안부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그 전에는 많아야 일주일에 두번 정도였을까?카톡으로 늘상 소식을 접하기때문에 안부에도 그리 목마름은 없었는데이제는 그것에 더해 손수 전화까지 해주니 그저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다.하루종일 있었던 일을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하고 나면제 마음도 홀가분해지고 때로는 해결책도 얻어갔던 모양인지 이제는 거의 습관으로 자리잡은 모양이다.어쩌다 한번 이야기하는 사람하고는 할 이야기가 한계가 있고딱히 할말도 없는게 인지상정인데매일 통화를 하고 매일 얼굴을 보고 이야기하는 사람과는마치 마르지않는 샘물처럼 대화 주제가 끝이 없다.딸아이와 나도 마찬가지다.매일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뭐가 문젠지, 뭐가 힘든지, 무슨 필요가 있고 어떤 격려가 필요한지 더 잘 알게 된다.마침 밥통이 고장났다고 하고전달해줄 서류가 있고 받아올 사인이 있어서겸사겸사 반찬 몇 개 만들어 나선 길이다.바쁜 아이 시간 뺏는 걸 별로 좋아라하지 않는 남편은애들이 시간내서 집에 오는건 언제라도 환영이지만부러 찾아가는 건 그리 탐탁치않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하지만 엄마 맘은 어디 그런가?게다가 데이트 할 시간은 고작 4시간인데...(저녁 기차가 있긴 하지만 저녁은 남편과 먹을 예정이다딸아이의 시간을 너무 많이 뺏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고..)기차가 역에 도착을 하고 전철을 탔다.전철을 타기 전 딸아이에게 전화를 하려고 봤더니 지하로 내려와서인지 완전 먹통이다.(서울 지하철과는 사뭇 다르다. 와이파이는 물론이고 전화도 빵빵 터지더구만)다시 지상으로 뛰어 올라가 약속장소로 출발하라는 통화를 하고숨을 헐떡이며 전철을 탔다.타자마자 전철은 출발하고...이제 카운트다운!!삼주 만에 만난 딸아이는 지난번보다 쬐끔 더 말라있다.평생 다이어트를 모르고 사는 아이라고 하면 그 마름의 정도가 어느정도인지 짐작이 가겠지만팔뚝도 더 가늘어지고 다리도 더 마른 것 같다.스스로도 조금 더 말랐노라고 고백을 한다.그러면서 혼자 사는 삶이 녹록치않음을 시인한다.(그래...엄마 밥 먹고 살 때가 좋았지?엄마도 그렇다...한국 다녀오고 나니 엄마가 해주셨던 밥이 이렇게 그리울 수가 없구나.)이쁘고 깜찍한, 제법 기능까지 다양한 밥통을 하나 사주고나니 출출하다.보쌈 먹기로 의기투합..보쌈으로 제법 이름을 날리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보쌈 '중'자로 하나 시키니 둘이 배가 터지도록 실컷 먹을 수 있다.맛있는 점심을 사주고 싶은 엄마 마음..멀리까지 와준 엄마에게 점심을 사주고 싶은 딸아이 마음..두 사람이 같은 마음인데 딸아이의 마음이 엄마 마음보다 훨씬 컸던 모양인지얼렁뚱땅 점심을 얻어먹고 만다.커피까지 사겠다는 딸아이를 만류하여 겨우 커피비는 내가 냈지만...^^(가난한 대학원생의 피같은 돈을 이렇게 또 우려먹고 마는구나...)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주고 받다보니어느새 집에 돌아갈 기차 탈 시간이 되어간다.아쉽지만..다음을 기약하며 각자의 보금자리로 돌아가야겠지?3시 15분 기차가 출발하고 이제 나는 아침에 오던 길을 다시 되돌아간다.오전과는 다른 풍경이지만기차 안에는 여전히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늦은 점심을 먹는 사람,계속 부족한 잠을 청하는 사람,글을 쓰거나 나처럼 타블렛을 갖고 일하는 사람,테이블에 둘러앉아 게임을 하거나 담소를 나누는 사람...다양한 사람들이 있는 만큼 그들이 하는 일도 다르고 사는 모양, 사연도 제각각이리라.딸아이와의 짧은 데이트를 위해 오늘 하루 비우길 참 잘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오늘, 우리는 다시는 없는 우리일테니..앞으론 종종 다시는 없을 우리를 위해 좀 더 시간을 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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