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바랜 사진, 빛나는 사랑

고향에 가 이집저집 둘러 보면 집집마다 안방 문 위에 가족 사진이 걸려 있습니다.

액자에 들어 있는 사진의 색이 많이 바래 있고, 구석마다 거미줄이 쳐져 있고,

먼지가 쌓여 있고, 파리똥이 까맣게 묻어 있어도 사진은 늘 당당히 그 자리에 붙어 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자식은 부모의 첫번째 자랑이고 기쁨입니다.

작은 상장만 하나 받아도, 머리만 단정히 깎아도, 동네 어른들에게 인사만 한번 반듯하게 해도

세상을 얻은 듯 좋아하고 기뻐하는 우리의 부모님입니다.

그리고 그 기쁨의 순간을 안방 문 위에 걸어 놓고 방에 들고 날 때마다 바라보면서

객지로 떠난 자식들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고 하루의 힘을 얻습니다.

살면서 고향집 안방 문 위에 걸어 둔 사진 액자만 가끔씩 생각해도

우리는 충분히 겸손할 수 있고 성실할 수 있고 잘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사랑은 부모님이 안방 문 위에 걸어 둔 빛 바랜 사진 액자 안에 있습니다.

------<월간 좋은 생각 중에서>----

친정집 안방 문 위에는 빛 바랜 사진 액자가 걸려 있지 않지만

아직도 시댁에는 안방 문 위에 빛이 잔뜩 바랜 사진 액자가 가로로 줄줄이 걸려 있습니다.

관을 쓴 채 근엄한 모습을 하고 계시는 증조 할아버님,

한번도 뵌 적은 없지만 생각만으로도 자상함이 느껴지는 시아버님,

흰 저고리, 검정 무명 치마의 시어머니 모습은

사진 속에서는 여전히 젊고 어여쁘기만 합니다.

남편의 대학교 졸업 사진 속에는 세상 속으로 걸어가야 하는 조금은 겁먹은 청년의 모습도 보이고,

곁에 걸린 아주버님과는 빼다 박은 듯 닮아 있습니다.

아이들과 한번씩 한국에 다니러 갈 때마다 안방 문 위에 걸린 사진들은

으레 한번씩 화제거리가 되고

마치 먼 옛날을 여행하듯 되짚어 가며 낄낄거리며 좋아하게 됩니다.

요즘에는 옛날처럼 안방 문 위에 사진을 걸어두진 않지만

집집마다 사진 액자 한 두개는 탁자 위에 기본으로 놓아두고,

유행처럼 커다란 가족 사진도 찍어 벽에 걸어두는 것 같습니다.

우리집도 대문을 막 들어서면 여러개의 사진이 들어있는 커다란 액자가 하나 걸려 있는데

우리집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그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아이들의 성장기를 유추해내고

우리집의 역사를 읽어내곤 합니다.

저 역시 한번씩 그 사진들을 보면서

"아, 이땐 이랬지~"

"저럴 때도 있었지~" 하며 추억 속에 잠기기도 하구요.

디지털 카메라가 나오기 전까지는

사진을 찍으면 당연히 현상을 해야 하는 줄 알았는데

디지털 카메라가 나온 후에는 굳이 현상을 하지 않고 파일 형태로 만들어 놓게 되는게 다반사라

여간해서는 찾아서 보게 되지가 않는 것 같습니다.

정리해야 하는 사진 파일도 산더미로 쌓여 있는데

큰 맘을 먹지 않으면 그저 파일인 채로 그렇게 내팽개쳐지는 듯 합니다.

우리들의 추억이, 우리들의 시간이 그 속에 있는데...ㅠㅜ

9월이면 둘째까지 집을 나가게 되어 있어

그 전에 멋진 가족사진 한 장 찍어보려 합니다.

제법 큰 사이즈로 찍어 이젤 위에 올려놓으면 두고두고 미소가 지어지겠지요? 

어떤 옷을 입고 찍어볼까? 

배경은 어떤 곳으로 할까?

포즈는?

정식으로 가족사진을 찍을 생각에 벌써부터 마음이 들뜹니다.

가족 사진은 그렇게 빛이 바랬든 샤방샤방 바로 현상한 사진이든,  

기분을 좋게 하는 힘이 있는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