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인생 어느 순간에 이르러서야 아버지의 삶을 들여다볼 눈을 뜨게 된다.
아들도 아버지처럼 실수도 실패도 해보고 후회도 하는 동안

아버지가 결코 완벽한 존재일 수 없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 깨달음과 연민은 아버지를 극복하는 디딤돌이다.

- 오태진의《사람향기 그리운 날엔》중에서 -

나에게 아버지는 늘 어려운 존재였습니다.

건장한 체구에, 실향민으로 살아온 세월의 무게까지 짊어진 그 근엄함은

자식들이 가까이 가기엔 누구라도 어지간한 용기가 필요했지요.

그래서 어릴 적엔 아예 가까이 다가갈 용기도 내지 못하다가

어느덧 나도 나이가 들어 50을 내다보는 엄마가 되고

아버지도 파파 할아버지가 된 지금.. 

아버지와의 통화에서 당신과 나의 거리가 시나브로 가까워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버지, 식사하셨어?"

"오냐...너는..?"

"전 먹었어요. 요즘 뭐하고 지내신대?"

"책도 보고, 산책도 하고..그러지."

" 아부지, 아프지마요..."

"오냐, 너희들도 건강해야지.."

아버지 곁에 살았을 때는 '다녀오겠습니다', '다녀왔습니다.'가 당신에게 했던 이야기 전부였다고 생각하니

새삼 아버지가 살아온 세월이 참말로 외로웠겠구나...싶어집니다.

요즘에는 아이들과 함께 대화하고 놀아주는 아버지들이 많아지고

또 아이들도 아버지와 스스럼없이 지내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 어렸을 때만 해도 그런 경우는 가뭄에 콩 나듯 아주 적었지요.

그래서 아버지와 잘 지내는 친구가 부러웠던 적도 있습니다.

고등학생 시절, 어느 겨울 밤,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내게 아버지가 말없이 내민 귤 몇 알..그 사랑을 기억하며  

우리 아버지의 세대.

가난했고, 그늘지고 무겁고 온통 넘어가야 할 산이고 벽이었음을 이제 이해하고나니

근엄했지만 외로웠을 아버지의 인생도 함께 이해가 되고 아파집니다.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셔야 할텐데...

당신의 아픔을 살포시 껴안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