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인터넷 신문을 도배하는 응사 열풍에 힘입어
지난 9월부터 제 2의 신혼이 된 남편과 며칠밤 응사를 시청했고,
급기야 한국과 속도를 맞추고 오늘, 마지막회까지 시청했습니다.^^

응답하라 1994...오버!!

1994년..그때 난 뭘하고 있었나?
드라마에서 년도를 제시하자 어김없이 그런 질문이 고개를 들고 맙니다.

그때 난..미시시피 학교 아파트에서 
딸아이를 낳아 1년 여를 키우고 있었고
어느 한 집에서 빌린 모래시계 비디오를 돌려보고 있었을 테지요.
일주일에 한번씩은 유모차를 끌고  International Wives Club에 나가 어줍잖은 영어를 써보는 일도 서슴치 않았고

은행에서 융자 받은 2000불로 1500불 상당의 386 컴퓨터를 오더하고는

한글 자판을 익히기 위해 해태가 하던 단어 내려오기 게임을 하기도 했습니다.

딸아이에게 죽어도 천 기저귀를 채워야 한다며 매일매일 하얀 천 기저귀를 널어 말렸던 아파트 뒤뜰..

그곳에서 빨래 널다가 불개미에 물려 죽을 뻔 했지만

건강 보험이 없어 병원에는 가지 못하고 그저 긁지 않으려고 두 손을 꼭 맞잡고 밤새 몸살을 했던 적도 있습니다.

미시시피..스탁빌..
한국과 비슷한 날씨였지만 여름엔 꼭 한차례씩 Thunder storm이 지나가곤 했던 곳.
유모차를 끌고 학교 아파트 주변을 산책하다가
동네 한국 아줌마들을 만나 잠깐 쉬기라도 하면
어김없이 달려들던 모기 떼...
삼삼오오 모여 퀼트를 배우고,
라자니아도 만들어 먹고,
비슷비슷한 형편에 생각하는 것도 거기서 거기였던 사람들...

그 사람들은 지금쯤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혹자는 나처럼 응사를 시청하면서 1994년의 미시시피 스탁빌을 추억하지는 않을까요?

응답했다 2013...오버

1994년..벌써 20년 전이 되버렸습니다.
2013년의 나는 아이들을 대학 보낸 대학생들의 엄마가 되었고,
밤이 긴 신혼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40대 후반..50을 바라보는 나이.

일찍 주부가 된 덕택에 남들처럼 치열한 삶을 살지는 않았지만

아이들과 함께 지지고 볶으며 지냈던 지난 시간들이

조금은 후회로 조금은 회한으로 다가옵니다.

가끔은 내 분에 못이겨 공연히 아이들을 닥달하기도 했고

가끔은 내가 가진 것을 쥐고 있느라 다른 사람을 돌볼 여유도 갖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을 얻기도 하고

사람들을 잃기도 했으며,

상처를 입기도 하고

상처가 치유되기도 했습니다.

응사 덕분에 돌아본 내 젊은 날..1994.
난 삐삐도 한번 가져보지 못했고
서태지와 아이들의 공연장도 한번 가보지 못했고
락 카페 한번 구경 못해본 미국 미시시피 촌 아줌마였지만
그래도 햇빛에 그을린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건강하고 밝은 아줌마였음에 분명합니다.

머나먼 타국 땅에 남편과 단 둘이 정착해

아이들을 낳아 기르면서 가족의 의미를 이해하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아줌마가 되었음에 감사합니다.

돌아보니 우리집에도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공존합니다.

아날로그 사진기, 캠코더를 비롯해

테이프 리코더, 시디 플레이어, 오래된 핸드폰들..

그때는 제일 첨단이었던 것들이었는데

지금은 그저 구식이 되어버린, 본전 생각에 내다 버리기는 아까운...추억의 소품들..

그것들이 쌓이고 쌓여서 우리의 인생이 되고 우리의 젊은 날이 되었겠지요. 

응사를 통해 우리 젊은 날을 회상해보긴 했지만
솔직히 고백하건대 나는 다시 1994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때를 추억하고, 그리워하긴 하지만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 아파하고, 고민하고, 그리움에 눈물 흘리고 싶진 않거든요.
나는 2013년 지금의 내가 좋습니다.
고운 아줌마로 늙어가고 1994년 보다 마음이 한껏 넓어지고 여유있어진 지금의 내가 너무 좋습니다.

상처를 받되 훌훌 털어버릴 줄도 알고

사람을 잃지않기 위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줄도 알고

그저 내것을 쥐고 있기에 급급하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하는 지금의 내가 너무 너무 좋습니다.

2013년 오늘의 내 모습이, 그리고 앞으로의 내 모습이 그것을 증명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년 후..

5년 후..

다시 큰 소리로 자신있게 외칠 수 있도록..

오늘 하루를 선물 받은 것처럼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응답하라...2020 오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