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외삼촌이 살아 있을 때다.

타지에서 떠돌다가 J시로 돌아온 너의 외삼촌은 수요일이면 엄마를 찾아왔다. 특별히 볼일이 있었던 게 아니라 자전거를타고 왔다가 엄마의 얼굴이나 보고 가는 게 다였다. 어느 때는 방으로 들어오지도 않고 대문에서 동생! 하고 불러서 잘 있었는가? 묻고는 너의 엄마가 마당으로 나가볼 새도 없이 그럼, 나 가네! 하고서 자전거를 돌려세워 돌아가기도 했다. 네가아는 한 엄마와 외삼촌은 그리 다정한 사이는 아니었다. 네가 모르는 시절, 어쩌면 네가 태어나기도 전에 외삼촌이 아버지에게 꽤 많은 돈을 꿔갔는데 그걸 갚지 않았던 것 같다. 너의 엄마는 이따금 그 이야기를 꺼내며 외삼촌을 원망하곤 했다. 외삼촌이 진 빚 때문에 고모나 아버지 얼굴을 바로 보지 못하겠다고 했다. 빚은 외삼촌이 졌지만 빚을 갚지 못한 게 너의 엄마을 힘들게 했던 것 같다. 외삼촌에게서 사오년간 소식이 끊겼을 때 엄마는 니 외삼촌은 대체 어디서 뭘 하는지! 를 입에 달고 살았다. 너는 엄마가 외삼촌을 걱정하는 건지 원망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지금의 엄마 집이 새로 지어지기 전의일이다. 지금은 지상에 없는 그 집의 마루는 마당과 대문을 향해 놓여 있었다. 네가 엄마 집에 가 있을 때인데 누군가 대문을 밀고 들어오는 소리가 나고 연이어 동생 있는가? 하는 소리가 들렸다. 너와 방 안에서 귤을 까먹고 있던 엄마가 그 목소리를 듣고 화닥닥 방문을 열고 나갔다. 어찌나 빨랐는지 모른다. 누구이기에 저리 반가운 걸까? 궁금해 너도 뒤따랐다. 잠시 마루에 서서 대문 쪽을 살피던 엄마가 대문간에 서 있는 존재를 향해 오빠! 소리를 치며 내달았다. 신발을 신는 둥 마는 둥하고. 외삼촌이었다. 바람같이 달려간 너의 엄마는 외삼촌의 가슴팍에 주먹을 내지르며 오빠! 오빠!를 불렀다. 너는 마루에 선 채로 엄마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너의 엄마가 누군가를 향해 오빠!하고 부르는 소리를 처음 들었다. 외삼촌을 말해야 할 때는 늘 너의 외삼촌이라고 했다. 잠시 너를 멍하게 한 것의 정체를 너는 곧 알아차렸다. 외삼촌이 갑자기 생긴 것도 아닌데 엄마가 외삼촌을 향해 오빠! 반가운 콧소리를 내며 달려가는 것을 목격했을 때 왜 그렇게 놀랐는지를. 아, 엄마도 오빠가 있었구나! 새삼스럽게 깨달았던 것이다. 네가 엄마를 생각하며 혼자 웃을 때가 있는데, 그날의 엄마, 늙은 엄마가 어리광 섞인 목소리로 오빠! 외치며 마루를 뛰어내리고 마당을 가로질러 대문간의 외삼촌에게 달려가던 그 모습이 연상될 때이다. 그때의 엄마는 너보다도 더 어린 소녀였다. 엄마의 그 모습은 너의 뇌리에 박혔다. 엄마에게도...라는 상상을 하게했다. 당연한 일을 왜 그제야 깨달았는지. 너에게 엄마는 처음부터 엄마였다. 너의 엄마에게도 첫걸음을 뗄 때가있었다거나 세살 때가 있었다거나 열두살 혹은 스무살이 있었다는 것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너는 처음부터 엄마를 엄마로만 여겼다. 처음부터 엄말 태어난 인간으로. 엄마가 너의 외삼촌을 두고 오빠!부르며 달려가는 그 순간의 엄마를 보기전까지는. 엄마도 네가 오빠들에게 갖는 감정을 마음속에 지니고 사는 인간이란 깨달음은 곧 엄마에게도 어린 시절이 있었구나,로 전환되었다. 그때부터인 것 같다. 간혹 너는 실제로는 1936년에 태어났으나 호적에는 1938년으로 기록된 엄마의유년을, 소녀시절을, 처녀시절을, 신혼이었을 때를, 너를 낳았을 때를 생각해보곤 했다.

----신경숙의 소설<엄마를 부탁해> 중에서----

엄마에게 어린 시절이 있었을까?

어린아이였던 너는 소녀시절을, 처녀시절을 신혼을 거쳐 아이를 낳아 엄마가 되었다.

너의 그 시절은 고스란히 네 안에 있지만

한번도 너의 엄마의 어린 시절을 인정하고 보듬아주고 살지는 못했다.

너 역시 작가처럼 문득...이 글을 보고서야 비로소 엄마에게도 유년시절이 있음을 상기해낸다.

너의 엄마는 옷 욕심과 먹거리 욕심이 유난히 많았다.

눈에 띄거나 마음에 드는 옷이 있으면 스타일이 비슷한 것이 몇 벌 있다 하더라도

주저하지 않고 척척 사들이곤 했다.

먹거리도 마찬가지였다.

냉동실에 가득가득 쌓여 냉장고 문만 열면 쌓여있는 음식이 우르르 쏟아질 판인데도

늘 풍족하게 사서 쟁이고 쟁이고 쟁이기를 계속했다.

너는 그런 엄마가 늘 못마땅해 엄마..어지간히 사서 쟁여..라고 늘 볼멘소리를 했다.

하지만 한번도 엄마는 왜 저렇게 옷 욕심이, 먹거리 욕심이 많을까?

진지하게 생각해보지는 않았다.

너의 엄마는 3남매 중 맏딸이었다.

아래로 너의 외삼촌이 있었고 그 아래로 이모가 있었는데

이모는 사변둥이, 즉 6.25 사변 때 태어난 그것도 유복자였다.

그 당시 외할머니 나이가 32세 쯤이었으니까 엄마는 겨우 열살을 넘긴 나이였다.

열두살의 여자아이..

아직 중학생도 되지 않은 여자 아이에게

남편을 잃어 청상과부가 된 엄마와 두 동생들은 어떤 의미였을까?

너는 12살에 전쟁을 맞은, 게다가 가족의 생계까지 짊어져야 했을 맏딸의 숙명을 생각해본다.

먹을 것이 풍족하지 못했고,

입을 것이 풍족하지 못했던 그 시절..

어쩌면 너의 엄마는 잘 먹고 잘 입는 세상을 늘 꿈꾸며 살았을 지 모른다.

그래서 너의 엄마는 그 시절의 보상심리로 옷 욕심을, 먹거리 욕심을 내는지도 모른다.

엄마에게 그렇게 불우한 어린 시절이 있음을 유추해내자

신기하게도 너는 엄마의 그런 행위가 불쌍하고 가엽게 여겨지기 시작한다.

이 세상에 원인이 없는 결과란 정말 없는 것이다.

엄마에게도 어린 시절이 있었다.

그것도 불우하고 불우했던, 매 끼니를 걱정해야 했고, 어린 동생들을 보살펴야 했던,

지금의 너로서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던 극한의 시간들..

그 시간들을 생략하고 엄마는 없다.

엄마는 그 시간 속에서 그렇게 우뚝 살아있는거니까.

다음번에 아이들이 방문하면 너는 너의 어린시절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해주기로 작정해본다.

우리 아이들도 너처럼, 작가의 글 속에 있는 너처럼,

엄마는 그저 태어났을 때부터 엄마였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