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전...지난 봄방학 때의 일입니다.
모처럼 집에 온 아들은 친구들과 점심 약속을 하고
아빠 차를 빌려 나갔습니다.
봄방학을 맞아 각지에 흩어졌던 친구들이 모여
점심도 먹고, 농구도 하고, 영화도 보고 온다며 조금 늦을거라는 말도 잊지 않았지요.
그런데 아들이 나간지 두시간 정도 됐을까요?
초인종 소리에 나가보니 늦게 올거라던 아들 녀석이 벌써 들어온 겁니다.
"어? 좀 늦는다고 하지 않았어? 어디 아프니?"
"아니요....그게 아니라 카메라에 찍힌 것 같아요.."
"엉? 무슨 카메라?"
"right turn 할 때 카메라에 제가 찍힌 것을 뒤에서 오는 친구가 봤대요."
"right turn 할 때 스탑 안했어?"
"했는데....근데..잘 모르겠어요. 한 것도 같고, 안 한 것도 같고....헷갈려요.."
허걱...
기어이 우리집에도 그런 사건이 터지고 만 겁니다.
엘에이 같은 도시는 교통 카메라의 폐해가 많아 완전히 없어졌다는데
제가 살고 있는 도시는 처음보다는 많이 없어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보무도 당당하게 교통 카메라가 서있는 곳이 있어
늘 그곳을 지날 때는 더 주의를 기울였고
아이들과 함께 교통 카메라를 지나칠 때마다 그렇게 주의를 줬음에도 말이죠.
일단 둘이서 컴퓨터 앞에 앉아 교통 카메라와 관련된 온갖 정보를 수집했습니다.
벌금이 500불 정도라느니..
트래픽 스쿨도 다녀와야 한다느니..
카메라에 찍힌 얼굴이 일반 디카보다 더 선명하게 나온다느니..
보통 벌금이 2주에서 4주 사이에 나온다느니...
그렇게 안 좋은 얘기들로 가득한 내용들을 보고선
아들 녀석은 잔뜩 겁먹은 얼굴이고, 저 역시 맘이 좋지는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이왕 벌어진 일로 아들에게 얼굴 붉히며 소리를 질러댈 일도 아니고 해서
벌금을 내게 되더라도 '비싼 레슨을 받았다고 생각하자...다음부터 더 조심하자..'하며
극도로 쿨한 척...겁먹은 아들을 달래주었습니다.
"아빠한테는 뭐라고 하죠?"
"뭘..미리 알려드릴 필요 있겠니? 공연히 걱정하시게...
네가 지금 헷갈리고 있지만 만약 스탑을 정확하게 했다면 벌금이 안 날라올거야..
그러니...미리 말씀드리지말고 벌금이 오게 되면 그때 말씀드리자.."
그렇게 심난한 마음으로 봄방학을 보내고, 둘만의 비밀을 간직한 체,
아들은 다시 새학기를 맞아 학교로 돌아갑니다.
가족 카톡방에서는 그 사건에 대한 언급은 일체...함구..
매일 일상적인 이야기들로 채워집니다.
그러다가
2주 쯤 지났을까요?
슬그머니, 비밀스럽게 아들녀석이 저에게만 카톡을 보내왔습니다.
"엄마...혹시 그거 왔어요?"
"아니..그거 아직 안 왔어. 엄마 생각엔 안 올거 같애...그러니 더이상 그 걱정은 하지마..ㅠㅠ"
"그럴까요? 안 오면 좋겠어요.."
"엄마도 안 오면 좋겠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니까 결과를 기다리자."
그렇게 또 2주가 지나 한달이 되어도 그것이 왔다는 얘기가 없자
아들은 다시 비밀스런 카톡을 보냅니다.
"우리 아들...right turn에 스탑 잘 했나봐..한달이 넘어도 안오는 걸 보면 이제 안오는게 확실해.."
그렇게 한달간의 '모자 노심초사 사건'이 지나가고
한달 여 만에 아이들이 주말에 집에 다니러 왔습니다.
저녁을 먹으면서 딸아이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겠다고 말문을 엽니다.
"엄마, 제가 대학교 1학년 때..친구를 태우고 가다가 right turn에서 카메라에 찍힌 거에요.
플래쉬가 터졌다는데 저는 못보고 친구는 보고...그래서 너무 걱정돼서 아빠한테 전화를 해서 말했어요."
"오잉? 그럼...여태까지 둘 만의 비밀?"
"네..그런데 그 친구가 교통 카메라에 대해 아는게 많아서 전화번호를 하나 줬는데 3일 후에
언제 어디서 어떤 차인지 정확하게 말만 해주면 찍혔는지 안 찍혔는지 다 알려준대요.
아빠랑 전화해보고 우리는 안 찍힌 거 바로 알았어요."
"진짜? 근데 지금까지 둘이서만 비밀로 한거야?"
"네..엄마한테 말하면 놀랄거 같아서..그냥..아빠랑만 아는 걸로 했어요.
오늘 차타고 오면서 동생이랑 얘기하니까 저랑 똑같은 일이 있었는데
엄마한테만 말하고 아빠한테는 비밀로 했다고 하더라구요."
벌금이 날라오지 않자 모자 비밀 사건은 그렇게 종지부를 찍고
뜻하지않게 몇 년 전 딸아이에게도 똑같은 일이 있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만약 아들과 제가 아빠와 상의했더라면
한달 씩이나 걱정할 필요없이 3일 정도만 걱정하면 될 일이었는데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함께 문제를 풀어가기 위해서는
비밀을 만들고 공유하기 보다는
문제를 끄집어 내고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찾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
가족이 좋은 이유는 그 백짓장을 기꺼이 함께 들어줄 수 있기 때문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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