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반복되는 두 숫자를 처음으로 적어보며 모양이 재미있게 보인다고 생각하며 시작했던 올 해는, 한 순간에 그 때의 느낌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사라졌고, 아이들은 답답한 집 안에 머물러야만 했고, 어른들은 하루 앞을 알 수 없는 상황에 낙심하고, 많은 사람들이 건강에 대한 염려로 근심하게 되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여전히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고, 오히려 가장 춥고 어려운 겨울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해 같으면 연말의 분위기를 느끼며 선물을 사기 위해 쇼핑을 했을 요즘이지만, 사람들의 마음에 그런 여유는 너무 사치스럽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작년 이 맘때 크리스마스 캐롤을 소개했던 기억이 납니다. 연말은 가장 재즈를 듣기에 좋은 때였으니까요. 그러나 저 조차도 올해 거리와 상점에서 간혹 들리는 경쾌한 캐롤을 들을 때 왠지 모르는 어색함을 느끼곤 합니다.

 지금같은 때에 연말이 무슨 의미가 있어라며 투덜거리다가도 달력을 보며 문득 깨닫게 됩니다. 그렇게 힘든 시간도 결국은 지나가고 있구나… 오래전에 군복무를 하던 시절, 한 친구가 ‘거꾸로 매달아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간다’며 ‘이제 783일 남았다’고 날짜를 세는 모습을 본 기억이 납니다. 그때는 우습기도 하고 마음이 답답하기도 했습니다. 그 친구가 저보다 한달 먼저 제대할 친구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남자분들이 군대에 다시 입대하는 꿈이 가장 무서운 악몽 중의 하나라고 하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라도 끝날 거라는 희망을 놓치지 않았기 이 있었기에, 그 시간들을 지나치게 낙심하거나 우울함에 빠져들지 않고 지냈던 것을 깨닫게 됩니다. 성경에는 이런 구절이 있더군요. ‘우리에게 날짜를 세는 법을 가르쳐 주셔서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편 90:12) 저는 얼마 안 남은 올해의 달력을 보며, 가장 어려운 시기도 분명히 언젠가는 지나가고, 흐트러진 나를 다시 세워 다가올 새로운 때를 위한 준비를 해야한다는 메시지로 받아들이려 합니다. 

 재즈이야기인데 너무 잡설이 길었네요. 그래서 올해는 세월의 흐름을 생각하며 들을 수 있는 재즈곡을 몇곡 골라보았습니다. 잔잔하게 한 해를 흘려보내며 돌아보는 시간이 되시면 기쁘겠습니다. 이번에 소개하는 곡들은 음악도 좋지만 가사가 중요한 곡들인만큼, 마음에 드시는 곡들이 있다면 꼭 가사를 찾아보시길 권해드립니다. 더욱 깊은 느낌을 받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제목만 읽어도 마음이…

 ‘Last Night When We Were Young’. 이 곡의 작곡가인 Harold Arlen 은 20세기 초 최고의 히트곡 메이커였습니다. 역사적 뮤지컬 ‘오즈의 마법사(The Wizard of Oz)’와 ‘Over the Rainbow’를 작곡한 사람입니다.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요. 그의 수많은 히트곡들은 미국 팝역사의 최고의 노래들로 여겨지고 지금도 수많은 곳에서 다시 연주됩니다. 그런 그가 자신의 곡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곡으로 고른 것이 바로 이 곡입니다. 어린 시절 사랑의 추억을 너무나 감미롭게 표현한 이 곡은 가사 또한 한 편의 아름다운 시입니다. 

 위의 영상은 ‘The Manhattan Transfer’라는 전설적인 재즈보컬그룹의 멤버인 Cheryl Bentyne 이 솔로로 녹음한 버전입니다. 제가 가장 사랑하는 재즈피아니스트 Kenny Barron 이 함께해서 격조있는 피아노 연주를 들려줍니다. 마음을 울리는 가사와 함께 섬세한 피아노 연주에도 귀를 기울여 주시기를…

하모니카와 바이올린의 특별한 만남

 헐리우드에는 미국영화인들이 모두 참여하는 가장 권위있는 영화단체 미국영화협회(AFI)가 있습니다. 그 곳에서는 2004년 영화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최고의 영화 속 음악 100곡을 선정했습니다. 그 때 이 곡 “As Time Goes By”는 2위로 뽑혔습니다. 영화인들의 투표로 고른 것이니 더 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공은 고전영화인 ‘카사블랑카’Casablanca’에 삽입되어 크게 히트하게 됩니다. 영화 속 장면을 소개한다면…

어떤 분들에게는 워너브라더스 영화의 오프닝 음악으로 익숙하실 겁니다.

 제가 앞에 올려드린 버전은 프랑스 출신 재즈바이올린 연주자 Stephane Grappelli 와 벨기에 출신 하모니카 연주자 Toots Thielemans 가 함께 연주한 버전입니다. 너무나 큰 발자국을 남긴 연주자들이라 나중에 자세히 소개드리려고 합니다. 그러나 연주자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애절한 집시의 선율을 담은 바이올린 소리와, 하모니카가 이런 악기였나 놀라게 만드는 표현력에 누구라도 금방 매료되실 겁니다.

 오래전 이 곡의 제목만 처음 보았을 때는, 쓸쓸한 내용일 거라고 막연히 짐작했었습니다. 그런데 가사를 보면 시간이 흐르고 지나도 아름다운 것은 여전히 아름답고, 소중한 것은 지금도 소중하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아름다운 달빛도 사랑의 노래도 늘 반복되는 것 같지만, 언제나 사람들에게는 새롭고 소중하게 느껴진다는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그렇기에 멜로디와 화음에도 그러한 따스함이 잘 드러납니다.

언제나 희망을 주는…

 이 곡도 아마 모두들 아시는 곡이겠지요. 전설적인 재즈싱어 루이 암스트롱의 “What a Wonderful World”입니다. 당대 최고의 히트곡이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곡입니다. 이 노래의 가수는 루이 암스트롱은 그 시대 최고의 엔터테이너 중 한명이었습니다. 위의 영상에 잘 드러나듯, 언제나 어린아이의 같은 밝은 웃음을 지으며, 청중을 사로잡는 그의 퍼포먼스는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을만 했습니다. 

 이 노래의 가사는 정말 아름답습니다. 꽃과 나무와, 하늘과 무지개,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나를 위해 밝게 미소짓는 세상이 이 노래에 담겨있습니다. 저절로 따라 웃음 짓게 하는 가사이지요. 그의 밝은 웃음과 너무도 잘 어우러지는, 어찌보면 비현실적이라고 할 이 노래의 가사가 제게 깊게 다가온 것은, 루이 암스트롱의 삶을 알게 된 이후였습니다. 

 1901년 루이 암스트롱은 16세의 미혼모에게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생부는 빈민가의 노동자였고, 루이가 걷기도 전에 새로운 살림을 차려 떠나갔습니다. 어머니는 매춘을 생업으로 하며 자녀를 키웠고, 그런 어두운 환경 속에서  루이는 폐품을 모아 팔며 가계를 도왔습니다. 당연히 정규적인 교육은 얼마 받지 못했고, 이런저런 시비로 소년원 생활을 하기도 했습니다. 삶의 어느 한 구석도 밝은 구석은 찾아볼 수 없었지만, 그 고통스런 삶도 그의 얼굴에서 웃음을 빼앗을 수는 없었습니다. 

 어찌보면 가장 불행한 인생으로 출발했고, 어느누구도 그 앞에서 감히 고난을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삶을 산 거리의 음악인 루이 암스트롱이 최고의 자리에서 부른 노래가 “What a Wonderful World”라니 참으로 인생은 아이러니 하다고 생각됩니다. 오히려 그런 삶을 산 그가 부르기에 이 노래의 가사가 빛을 발한다고 할 수 있겠지요. 

또 한해가 가는 것을 알려주는…

 마지막 곡은 연말에 빼놓을 수 없는 곡 “Auld Lang Syne”입니다. 스코틀랜듣 지역의 민요에 가사를 붙인 이 곡은 연말연초, 졸업식 등에서 자주 연주되고 하지요. 애국가에 안익태의 곡이 사용되기 이전에는 애국가의 곡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의외로 재즈곡으로는 그리 많이 연주되지 않아, 제가 작년 연말에 교육용으로 연주해 놓은 버전을 올려놓았습니다. 저 곡을 올릴 때에는 2020년이 어떤 일들이 벌어질 지 전혀 알 수 없었지요. 그렇기에 새로 오는 2021년 또한 저의 염려와 걱정과는 다른 새로운 일들이 일어나길 바라고 기도해 봅니다. 

P.S. 혹시 들어보고 마음에 드시면 유튜브에도 댓글 남겨주세요. 격려가 많이 있으시면 새해에는 좀 더 연주를 나눠볼까 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