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에서 피아노라는 악기를 떠올릴 때 수많은 연주자를 이야기 할 수 있겠지만, 가장 많은 사람을 재즈피아노의 매력에 빠지게 한 피아니스트가 있다면, 제가 믿게엔, 오늘 소개하는 바로 이 사람, Keith Jarrett 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는 마음 깊이 파고드는 서정성, 영롱한 울림을 가진 사운드 그러면서도 때로는 한없이 새로운 세계로 듣는 이를 이끌고 가는 깊이있는 연주를 통해, 재즈피아노 연주가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세계를 보여주었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아름다운지, 일단 연주를 듣고 이야기를 시작할까요?

내 마음 속 최고의 Over the Rainbow

 어떻게 들으셨는지요? 이 곡 Over the Rainbow 는 ‘The Wizard of Oz’라는 영화의 주제곡으로 사용된 곡으로 32마디의 아름다운 멜로디를 담은 짧은 곡입니다. 그런데 그 곡이 Keith Jarrett 의 손에서 새롭게 창조되면 마치 너무나도 아름답게 작곡된 소나타 한 악장을 듣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됩니다. 아마 그의 연주를 처음 듣는 사람도,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담아 쏟아내는 그의 연주를 보면 누구라도 자연스레 그의 모든 호흡에 집중하게 될 것입니다. 

 날짜를 계획하지 않고 마침 오늘 Keith Jarrett 에 대한 글을 쓰게되었는데, 어쩌면 이번 달이 그를 소개하기에 가장 좋은 때라고 생각됩니다. 그 이유는 얼마전 9월 4일 Jarrett 의 평생의 음악적 동반자였던 베이시스트 Gary Peacock 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Keith Jarrett 은 여러 다양한 형태의 밴드로 연주를 했지만 누가뭐래도 그의 커리어에서 가장 빛났던 앙상블은 베이시스트 Gary Peacock, 드러머 Jack DeJohnette 과 함께 연주한 피아노 트리오였습니다. 저는 2013년 그들이 함께 연주한지 3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을 UCLA에서 본 기억을 잊지 못합니다. 굴곡 많은 공연예술계에서 30년 이상을 꾸준히 함께 연주하며 여행하며 음악과 삶을 나눈 이들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이들이 늘 연주하고 제가 참여했던 공연에서도 앵콜곡으로 연주했던 ‘When I Fall in Love’를 나누고 싶습니다. 

평생을 함께 한 세 거장의 앙상블

 Keith Jarrett 의 대단한 업적 중 하나는, 솔로피아노 연주를 새로운 경지로 이끌었다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재즈역사적으로는 피아노는 솔로악기 보다는 반주악기로 여겨졌습니다. 설령 피아노가 중심이 되는 연주라고 해도, 그 옆에서 베이스나 드럼이 함께하는 트리오 형태로 많이 연주되었습니다. 사실 연주자의 관점에서도 피아노를 솔로로 연주한다는 것은 큰 부담이 됩니다. 밴드앙상블로 연주할 때는 각 연주자가 조금씩 서로를 채워주며 부담을 나누어 질 수 있지만, 솔로 연주는 자신을 가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온전히 혼자 서야하기에, 듣는 이들을 설득하고 매료시키기 위해서는 뛰어난 연주력과 함께 엄청난 집중력이 필요합니다. 그렇기에 그때까지 재즈에서 피아노 솔로앨범은 많이 나오지도 않았고 대중적인 성공은 더욱 어려웠습니다. 

그러던 1975년 Keith Jarrett 은 독일의 쾰른 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린 자신의 라이브 콘서트를 음반으로 발매합니다. 1시간 7분의 분량의 이 연주음반은, 이전의 그의 음반과는 크게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보통의 재즈공연이나 음반은, 기존의 스탠다드 곡이나 연주자의 곡들 중 몇곡을 연주해 완성됩니다. 그러나 Jarrett 은 이 공연에서 기존의 곡을 연주하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그 자리에서 바로 즉흥으로 연주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음반의 곡 리스트를 살펴보면, 곡의 제목이 적혀있지 않고, Part I, Part IIa, Part IIb, Part IIc 라고만 표시되어 있습니다. 연주의 성과를 떠나서 그 시도자체만으로 엄청난 것이지요. 한 시간이 넘는 공연을 그 현장에서 아이디어를 펼쳐내며 연주하는 것이니까요. 

 물론 프리재즈나 일부 현대적인 클래식 음악에서도 이러한 시도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그러한 공연이나 음반은 매우 실험적으로 받아들여졌고, 특별한 음악애호가들만 듣게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Keith Jarrett 의 이 역사적인 음반 ‘The Köln Concert’는 전세계적으로 350만장 이상이 팔리는 엄청난 대중적인 성공을 이뤄냅니다. 이러한 음반의 판매량은 재즈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솔로음반기록이면서, 더 나아가 클래식음악을 포함한 모든 장르를 통틀어 피아노로 연주된 음반 중에서 가장 많이 팔린 음반으로 기록되게 됩니다. 이 공연에서 즉흥연주된 Jarrett 의 모든 음들은 전곡이 채보되어 악보로 출판되어 많은 클래식 연주자들이 연주하기도 했습니다. 아쉽게도 이 음반이 유튜브에 제공이 되지 않아 클래식 기타리스트  Manuel Barrueco 가 Jarrett 의 피아노 연주를 기타로 편곡한 연주로 그 중 한 곡을 들어봅니다.

 이렇게 엄청난 반향을 일으킨 훌륭한 라이브 연주 실황이었지만, 공연의 뒷이야기에 따르면 준비상황은 훌륭함과 거리가 멀었습니다. 공연 때 사용하기로 되었던 피아노는 운반사고로 제 시간에 도착하지 못해 상태가 좋지 않은 연습용의 작은 사이즈 피아노로 연주해야 했고, 연주자는 연주여행의 피로로 인해 상태가 좋지 못했는데, 마침 레스토랑에서도 문제가 생겨 공연직전 제대로 식사도 할 수 없었습니다. Jarrett 은 아무래도 연주할 수 없을 것 같다고 공연을 취소하려 했는데, 기획자가 간신히 설득해 이뤄진 공연이었다고 합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이런 명연이 나온 것을 보면, 최고의 성취가 꼭 최상의 조건에서 이뤄지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온 몸을 던지는 연주란…

 위의 연주에서 볼 수 있듯이 Jarrett 은 연주에 몰입하면 자리에서 일어나 온 몸을 뒤틀거나 입으로 자신의 연주를 따라부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의 공연을 처음 보는 분들 중에는 약간 놀라거나 낯설어 하는 사람도 있지요. 하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그 어떤 상황에도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고 청중이전에 먼저 자신이 만족하는 음악을 하고 있음을 볼 수 있기에, 그 몸짓과 허밍조차도 Jarrett 의 연주의 빼놓을 수 없는 한 부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Jarrett 은 재즈연주자 중에서 클래식 음악에도 많은 애정을 갖고 있는 연주자입니다. 그는 바흐, 모짜르트, 쇼스타코비치, 바르톡의 작품을 음반으로 발매하기도 했습니다. 자신의 악기인 피아노로 주로 연주했지만, 그외에도 하프시코드, 파이프 오르간을 연주한 음반도 있습니다. 그의 재즈연주에 느껴지는 유럽음악의 영향과, 대위법을 사용하는 즉흥연주 등을 보면, 고전음악에 대한 그의 연구가 결코 가볍지 않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는 바흐를 사랑하는 연주자

 Keith Jarrett 은 발매한 음반도 너무나 많고, 각 음반마다 다양한 음악적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연주자입니다. 한번의 짧은 글로 담기에는 너무나 큰 피아니스트라고 해야할 겁니다. 그래도 그의 가장 대표적인 몇 작품을 들어보시고 마음에 드신다면, 그의 더 깊은 음악도 조금씩 찾아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좋은 소식이 많지 않아 복잡한 마음을 갖기 쉬운 요즘 같은 때에, 오랜만에 감정이 살아나고, 마음이 정화되는 체험을 하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들을 때마다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