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의 어느 날.

바람이 싸늘하고 눈도 제법 내리던 날들이었다.

네이버 블로그에 연재 중이던 '한옥일기'.

'출간하라'는 이웃들의 댓글에 용기를 얻고

투고를 준비하던 중이었다.

뜻하지 않은 블로그의 폐쇄 후,

새로운 마음으로

‘또 하나의 길모퉁이'를 개장오픈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

기획서, 제안서

뭐 이런 것들에는 영 소질이 없는 나였기에

원고와 상관없이 투고가 잘 될 것 같지는 않았다.

기획서만 본 출판사들이 퇴짜를 놓을 것만 같았다.

에세이 시장이 어려워 이름없는 작가에겐 기회가 없을 거라는 말도 많이 듣던 찰나였다.

그럼에도 우리 이웃들의 반응은 찐이야! 하면서 홀로 용기를 내 투고를 준비하던 겨울날이었다.

​

아. 추워라.

쓰레기봉투를 밖에 버리고 돌아와보니

한 통의 이메일이 와 있었다.

생각지도 출판사?

<밤호수님. 함께 책을 만들고 싶습니다.>

라는 제목이었다.

가슴이 두근두근하기 시작했다.

조심스레 클릭.

​

​안녕하세요 밤호수님

출판사 000 입니다

누군가의 블로그였는지 모르겠습니다

밤호수님의 정갈한 글에 대한 소박한 칭찬에,

그 글들이 너무 보고 싶어서 블로그에 놀러갔는데 어라, 블로그가 열리지 않더라고요.

국어교사였다가 지금은 미국에 거주하고 계신 아리따운 그녀의 글들이

감동과 감탄을 자아낸다는데, 안 보이니까 더 궁금해지더라고요.

한동안 부지런히 밤호수님의 흔적을 찾다가

브런치 연재를 하신다는 문구를 어디선가 발견하고 다시 브런치로 이동.

<나의 한옥일기>를 한 편씩 야금야금 읽으면서

저와 비슷한 연배에 저와 비슷한 라떼 추억에 푸욱 잠겼더랬습니다.

브런치에 올라온 성장소설이나 다른 글들을 보면서 참 글을 잘 쓰시는 분이구나 하며 왜 밤호수님의 씨이웃들이 '잘 읽었습니다'라는 겉치레 인사 대신 길고긴 댓글을 다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어쩌면 개인의 소소한 추억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들이 누군가에게 자신의 기억을 소환하는 역할을 하고 그때 그 시절 어린 나로 돌아가는 순간의 타임머신을 태워줄 수 있다면, 무엇보다 우리가 잊고 있었던 우리네 과거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면,

그 글들을 보면서 (지치고 나른한 지금이지만) 반짝이던 그 시절이 있었음을 알려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뭐 그런 '이 책을 읽으면 어떤 점이 좋은가요?'에 대한 선명한 답도 실은 필요없을 것 같습니다.그냥 밤호수님 글을 읽으면 히죽히죽 웃게도 되다가 슬쩍 눈꼬리가 적셔지는 듯도 하다가 마음이 차악 내려앉으며 편하고 따스해지는 기분인데 그런 마음만으로도 좋을 것 같습니다.

밤호수님의 <나의 한옥일기>가 더 많은 사람들과 만났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자판을 두드리면 화면에 나타나는 글이 아니라 잉크가 종이에 달라붙어 글자라는 무늬로 찍히고손에 잡히는 물성을 가진 책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희 출판사는 1인출판사입니다.

많은 저자들이 대형출판사의 빵빵한 마케팅을 원할 수 있습니다. 1인출판이다 보니 그들처럼 대단한 홍보력을 발휘하는 것은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 권 한 권에 대한 애정의 끈을 놓지 않으려 합니다. 저자와의 인연을 소중히 생각하려 합니다.

지금은 우리의 기억속에만 있던 그때의 레트로 감성,

70년대생 혹은 그 이전 몇년전 세대들이 느끼는 그 감성들을 책으로 펴내보고 싶습니다.

그 여행에 밤호수님을 초대하고 싶습니다.

저자분에게 출간 제안을 드리면서 이렇게 기나긴 메일을 써보는 것도 오랜만입니다.

밤호수님 덕분에 오랜만에 제 안에 잠자고 있던 문학소녀의 감성이 꼼지락하네요.

함께하고 싶습니다. 짧은 답변이라도.. 연락 주세요.

고맙습니다.

2021년 1월 28일.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저절로 눈에서 눈물이 또르르.

1인 출판이라지만, 이렇게 작가에 대한 애정을 지니고 출간제안 이메일을 보내는 출판사. 에디터에 그 누가 감동하지 않을 수 있으랴.

​

얼른 찾아본 출판사는 주로 자기계발서를 출간한 곳이었다. 자기계발 분야에서 괄목할만한 성적을 낸 책들도 꽤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에세이를 출간하고 싶다고 했다.

한옥일기로 그 시작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

나는 답장을 썼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안녕하세요. 00출판사 대표님

어젯밤에. 여기도 바람이 엄청 불었는데, 쓰레기 버리느라 잠시 밖에 나갔다 들어와

손을 호호 불며 메일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감사한 이메일을 보았네요.

이메일이지만 손편지로 쓰인 듯한 따스함과 진심이 넘치는 편지. 정말 마음이 녹아내리는 듯 했습니다.

아시지요.

출간제의보다 누군가 내 글을

이토록 온전히 이해해준다는 것.

누군가 나의 감성을 이렇게 온전히 받아들여준다는 것.

작가에게 (풋내기 블로그 작가이지만) 그보다 행복한 일이 없다는 것을요.

에디터님의 이메일이 저에게 그 행복을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한옥일기.

저에겐 정말 소중한 글이고, 제 경험과 제 글의 '알맹이'같은 이야기랍니다. 이 이야기를 마무리하지 않고는 그 어느것으로도 나갈 수 없을 것 같던 이야기.

그래서 부족하지만 써내려갔지요.

공감해주시는 분들이 새기면서 더 행복함으로 쓸 수 있었고요.

큰 출판사보다는, 정말 제 글을 사랑해주는 에디터를 만나 출판하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었어요. 물론 이제 시작이라 고칠 것들 투성이이긴 하지만요.

제가 출판. 출간 쪽에 대해서는 아는바가 없어서 아직 아무것도 시작한 건 없습니다. 마음이 함께 한다면 김은영 에디터님과 함께 하고싶은 마음 가득합니다.

제 글의 독자가 되어주셔서

애정을 가져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2021년 1월 30일. 밤호수.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그리고 다시 온 대표님의 이메일은 다음과 같았다.

​

그제야 알 것 같았다.

그녀의 마음을.

그녀가 내 이야기에 마음을 연 이유를.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오늘은 토요일입니다.

아침 8시, 천천히 눈을 뜨고 밤사이 싸늘해진 거실로 나와 블라인드부터 젖힙니다.

어머나, 아침부터 눈송이가 조금씩 날립니다. 올해만 벌써 네번째 눈소식입니다.

작가님에게 답장이 와 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얼른 열어보고 싶은데 혹시나 거절의 메일이면 어쩌나 불안해하며 조심스레 클릭합니다.

그런데요.. 제 진심이 통한 걸까요. 작가님께서 제가 내민 손을 잡아보시겠다고 용기를 내주셨어요. 고맙습니다 작가님. 아침부터 눈송이를 날렸던 게 이런 행복한소식을 전하고 싶어서였나 봅니다.

<한옥일기>를 읽으면서 매회마다 제 코끝이 찡해진 데는 저 역시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인 것 같아요.제 고향은 포항입니다. 바닷가 마을은 아니고 농사를 짓는 시골이었습니다.어릴적 저 역시 일찍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제외하고 할머니와 부모님, 4남매가 한옥집에서 살았더랬습니다.우리한옥집은 크지 않았지만 군불을 때던 그 가마와 툇마루, 창호지가 아직도 생각납니다.

(중략)

까마득히 잊고 있었어요. 밤호수님의 <나의한옥일기>를 읽기 전에는 그때의 그 추억들이 내 기억에서 다 지워진 줄 알았어요.그런데 그 글들 하나하나에서 제 모습을 보았어요. 그리고 뭐죠, 울컥울컥 뜨거운 감정이 오르더라고요...그때의 이야기를 마무리하지 않고는 더 나아갈 수 없다는 작가님의 그 답장에 다시 한번 마음이 울컥했어요​

어린시절의 그 이야기들은 커가면서 친구들에게 이야기하면 다들 잘 이해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아주 소수이지만 누군가는 이런 이야기들에 저 같은 마음일 것 같아요.그들에게 작가님의 이 작은 이야기들이 힘들고 지칠때 어깨를 토닥이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엄마의 손길처럼 다가갔으면 좋겠습니다.그거 하나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그런 손길을... 우리 모두가 기다리고 있는지도요.

고맙습니다.그럼 또 작가님의 손편지 같은 메일을 기다리겠습니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그리고 진행된 약 10개월의 시간동안 즐거웠고, 행복했다.

출판사와, 작가와, 블로그 이웃들의 합작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만족스러운 어여쁜 책이 나왔다.

제목은 <안녕, 나의 한옥집>이다.

http://www.yes24.com/Product/Goods/104425809

​"대표님. 저는 출판사 손해만 안 입히고 싶어요. 이 책 정말 최선을 다해주신거 아는데. 손해는 안 입혀드리고 싶어요."(밤호수)

이런 나의 말에 그녀는 말한다.

"작가님. 그런 생각 하지 마세요. 출판도 사업이니 당연히 돈 되어야 하는게 맞아요. BEP도 맞춰야 눈물 안 흘리고.. 그래도 이건 제가 선택한 원고이고 제가 애정하고 그리고 누군가는 이 책을 보며 너무 행복해하고 있고, 심지어 그 원고를 책으로 만들어주어 고맙다는, 제 안목을 칭찬해 주시는 분들이 이렇게 많잖아요. 이익도 이익이지만 책 만드는 사람에게 그보다 더 큰 의미와 영광이 어디 있겠어요. 숫자보다 마음이 더 사람의 자존감을 높여주는 거니까요.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지난 겨울.

눈내리던 날 밤을 떠올리며

나는 오늘도 감사한다.

작고 소소한 인연들에.

이러한 인연의 신비로움에.

가야할 길을 가는 책의 운명의 신비로움에 대하여.

https://www.youtube.com/watch?v=rMdl5zj8RbM&t=12s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밤호수의 블로그를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블로그 시작 후,

미국에서 모든 일을 놓고 살아가던 저에게 생긴 또다른 꿈들에 대해.

새로운 이야기들에 대해.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https://blog.naver.com/moonlake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