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글. 

중학교 때 저는 시골에서 서울로 전학을 갔습니다.

시골이라고는 하지만 나름 교육도시로 유명했던 곳이었고, 또 선생님이셨던 엄마 덕분에 늘 책과 가까운 어린 시절을 보냈었지요. 그래서 초등학교 때 웬만한 당시 유명했던 전집은 수십 번씩 읽었던 것 같습니다.

서울에 있는 한 중학교로 전학을 온 저는 일종의 문화충격 같은 것을 받았습니다. 공부를 잘 하거나 잘사는 집 아이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던 시골 학교 분위기와는 달리 자유로운 분위기, 익명성. 그런 뭔가 ‘도시적인 분위기’에 매료되었지요. 그리고 공부와 상관없이 나는 내 갈 길을 간다 하는 ‘써니'류의 아이들이 제 눈엔 그리도 멋지게 보였습니다.

다양한 친구를 사귀었고, 그 때부터 저는 ‘별밤' 라디오 문화와, 동네 ‘만화책방' 문화, 그리고 제법 수위가 높았던 로맨스 소설 등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이미라의 ‘인어 공주를 위하여' 의 푸르매에 폭 빠져 밤새 눈물을 쏟기도 하고, 친구들과 로맨스 소설을 바꿔 수업시간에 몰래 보기도 하고, 매달 나오던 만화잡지 ‘르네상스'를 손꼽아 기다리기도 했지요.

그렇다고 만화나 로맨스 소설만 본 것도 아닙니다. 남학생에게 선물받은 헤르만 헷세의 ‘데미안', 이문열의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지금은 내용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 등을 꼭 중간에 한 번씩 읽어주기도 하는 나름 ‘있는 척'도 빼먹지 않았습니다. 그 때는 나름 ‘지적 균형'을 맞추어 준다는 나름의 자부심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아 참, 그 당시 정말 인기가 많았던 ‘서정윤' 시인의 ‘홀로서기'나 이해인 수녀님의 시집들도 빼먹을 수 없겠네요. 친구에게 편지를 보낼 때는 으레 그 시들 중 하나로 서문을 거창하게 열고는 했으니까요. 

감수성이 폭발하던 시기였지요. 편지지 브랜드 중의 하나인 ‘날고 싶은 자작나무'. 기억하시는 분이 있으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편지지 하단에 박혀 있는 작은 나무 그림과 그 글씨를 보면 왠지 마음이 아파오곤 했습니다. 그 편지지 이름으로도 이미 내가 할 말을 친구에게 다 써 버린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자작나무'가 뭔지도 모르고 본 적도 없는데, 날고 싶은 자작나무의 마음을 알 것만 같았지요. 학교, 성적, 입시 그런 테두리에 갇혀있던 우리의 현실과 닮아있다고 느꼈던 걸까요. 어쨌든 지금도 그 시절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날고 싶은 자작나무'. 그 편지지에 제 감성들을 맘껏 써서 친구들에게 날리던 시절이지요.

중학교 때 같은 반 친구 하나가 로맨스 소설을 시도했습니다.

공책 한 권에 쓰기 시작한 그 아이의 스토리. 사실 그 때도 그 이야기가 이은혜의 만화 ‘점프 트리 에이플러스'의 구조와 매우 비슷하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뭐 그 쯤의 표절이야 이해하고도 남는 것 아니겠어요. 어짜피 로맨스는 영원한 표절이거든요.  그 때 우리는 그 이야기의 남자 주인공 파로 나뉘어 나는 누구파, 너는 누구파 하면서 말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원작자인 친구를 ‘협박'해서 원하는 대로 스토리를 만들어 나가도록 했습니다. 너무 많은 친구들의 요구와 협박에 지친 친구 대신에 때론 우리들이 펜을 들고 마음대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다 보니, 나중에는 이야기가 산으로 흘러 결국 끝을 맺지 못했던 슬픈 이야기이지만 말이죠.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나 유치하고 손발이 오그라들어 정말이지 두 번 기억하고 싶지 않은 스토리이지만 그 땐 친구들 모두가 몹시도 진지했습니다. 그리고 그 경험은 제 인생에서 참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내가 즐겁게 읽어나가는 것이 곧 책이고 작품' 이라는 생각을 강하게 하게 된 경험이었거든요. 

중학교를 졸업하고 본격적인 입시 경쟁에 들어 오면서, 다양한 책을 가까이할 기회는 별로 없었습니다. 만화책과 로맨스 소설을 다양하게 구할 수도 없었고, 지친 입시 생활에서 저에게 안식을 주는 제 영혼의 작품들로 돌아가게 되었지요.그 중 하나가 바로 ‘빨강머리 앤' 시리즈입니다. 앞으로 이야기할 기회가 많겠지만, 항상 앤과 함께 제 인생의 굽이굽이를 헤쳐 지나왔습니다. 많이 힘들던 고등학교 시절에는 특히나 그랬지요. 

늦게 집에 돌아와서 지친 몸을 침대에 누이고 자기 전에 손에 들고 잠들던 책은 누렇고 꼬깃꼬깃했던 초판본 ‘앤 시리즈'였습니다. 심지어 세로쓰기 문장이었던 63년도창조사 책이지요. 엄마에게서 이모들로, 그리고 저에게로 전해진 그 책은 지금도 그 냄새가 기억날 정도로 제가 애정하고 사랑하던 책인데, 엄마가 어느 날 제 공부에 방해가 될까 봐 몽땅 갖다 버리셨답니다. 그 날 제가 얼마나 울고 불고 난리였는지 상상도 못하실 거에요. 저에겐 ‘애착인형'같은 존재였거든요. ‘앤’과 관련된 에피소드는 너무나 많아서 두고두고 할 이야기가 많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대학생이 되었던 저는 두 가지를 열심히 했답니다. 동네 만화방에서 그토록 읽고 싶던 만화책을 종류를 마다않고 빌려 읽었던 것이고, 하나는 학교 도서관에서 각종 책들을 섭렵했던 것이지요. 대학 입학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만화방 주인 아주머니가 ‘어머, 축하해요. 천 권째 빌리는 거에요'라고 하셨던 게 기억나네요. 

그렇게 오만 읽는 것을 좋아하던 저는 바라던 대로’ 무척이나 이야기 좋아하고, 책 이야기 해주는 것도 좋아하는  국어선생님'이 되었습니다. 아침에 너무 컨디션이 안좋아 힘들던 날도 교단에 서서 이야기하다보면 어느새 기운이 펄펄 나곤 했던 ‘천상 국어 선생님’ . 담임 역할은 몹시도 고단하고 힘들었지만, 국어교사로서 가르치는 시간만큼은 힘든 줄도 모르고 신이 났었지요. 도서관까지 맡아서 읽고 싶은 책들, 읽히고 싶은 책들을 다 주문해서 읽고 나누며 제 인생 쌓아온 이야기들을 아이들과 함께 풀어내던 시간이었습니다. 좋은 담임 교사였는지는 자신이 없지만, 그래도 꽤 괜찮은 국어선생님이 아니었을까 스스로 수줍게 생각해보곤 합니다.

저는 지금 미국에서 산 지 십 년째입니다. 교사 생활은 미국에 오면서 중단되었지만, 여전히 국어를 가르치던 느낌을 그리워합니다. 아름다운 우리 문학, 우리 말, 우리 이야기. 함께 나누던 기쁨을 늘 생각합니다. 

지금 제가 읽고 있는 책들은요. 신영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 허영만 ‘식객', 유시민 ‘역사의 역사', 웹스터 ‘키다리 아저씨', 아 또 리뷰를 위해 읽고 있는 영어책들, 시인 백석의 ‘사슴'은 자기 전에 꼭 한 편씩 읽고 있고요. (제 딸아이가 제가 백석의 유명한 시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에서 ‘나타샤와~’만 하면 엄마 ! 나타샤가 누구야 ! 도대체 그만 불러~’라고 합니다). 얼마 전에는 옆집 언니의 차고에서 소중하게 찾아낸 신일숙의 ‘리니지'와 황미나의 ‘아뉴스데이'를 끝냈고요. 이렇게 장르를 가리지 않고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권의 책들을 읽고 있습니다. 아, 그래도 인문, 역사, 인물 분야 책을 좋아하긴 합니다.

저는 아이들에게도 꼭 ‘고전'만 읽으라고 강요하지 않아요. 강요한다고 듣지도 않지요. 세상에 얼마나 재미있는 책이 많은데! 그냥 그 세계를 너희가 알고 경험했으면 좋겠어! 라는 엄마의 마음을 전달하지요. 아들이 학교에서 읽고 있는 책들을 저도 읽고 쫓아다니며 아는 척 막 얘기도 하고, 제가 읽는 책이 너무 재밌다며 아이들에게 막 내용을 이야기하기도 하고요. 판타지 북을 좋아하는 아들의 세계도 인정해 줍니다. 뭐 별 수 없죠 인정하는 수밖에. 저도 제 인생 제일 재밌게 책을 읽던 게 중 3 때 그 친구의 그 표절 투성이, 마지막이 산으로 가 버린 로맨스 소설인데요. 야한 소설 읽다가 이모한테 걸려서 뺏기기도 해보고요. 그 때 그 경험이 오늘날 저의 생각과 사고, 정체성들을 만들었잖아요. 다만 아이들과 함께 나누는 독서생활, 아니 삶과 함께 하는 독서를 하고 싶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과도 그 생활을 나누려고 해요.

이야기가 역시나 너무 길어졌지만, 그래서 저는 이곳 게시판에 

1. 내 아이에게 읽히고 싶은 영어책 리뷰

를 우선적으로 하려고 합니다. 영어로 된 책이라고 다 좋은 게 아니고, 영어로 된 책이라고 다 우리가 볼 필요가 없는 게 아니잖아요. 엄마들도 함께 읽고 생각해 보고 아이들과 이야기 나눌 수 있도록 제가 먼저 읽고 도와드리는 개념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어쩌면, 영어책을 한국적 감성으로 풀어내는 이야기라고 보셔도 되겠네요. 제 감성이 뼛속까지 한국적, 국문학적 감성이거든요. 그렇다고 영어를 엄청 잘하는 건 아니에요.  최대한 노력해서 읽고  리뷰하는 거니깐, 영어 해석이나 표현이 부족해도 이해 부탁드립니다. 주로 초등 고학년에서 중학교까지의 추천 도서 리뷰가 될 것 같습니다. 

2. 그리고 기타 저의 책이야기 

 또한 올리려고 합니다.

제 인생의 책들, 동화책들, 만화책들까지. 우리 모두가 품어오고 표현하지 못한 삶과 사랑과 인생의 이야기들을 나누고 싶습니다. 

3. 한국어 교육 이야기

나름대로 그동안 한국 학교, 한글 학교, 또 개인적으로 아이들을 가르쳐 오며 느꼈던 한국어교육 노하우를 여러분과 기회가 되면 공유하고 싶습니다. 

첫 글. 첫 만남. 그리고 시작. 

‘날고 싶은 자작나무'라고 적혀있던 잔잔한 편지지에 첫 글자, 친구의 이름을 써내려 가던 그 때 그 느낌처럼, 언제나 시작은 떨리고 설렙니다. 그리고 만남은 더욱 더 즐겁지요. 이 게시판을 통해서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 작은 기쁨이, 작은 웃음이 된다면 더욱 기쁘고 설렐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