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이는 만 3세 무렵, 두 명의 발달 전문의를 만났다.
처음 만난 의사는 소아 정신과 닥터로 한국에서였다.
준이는 만 26개월 정도로 드디어 발걸음을 떼고 손잡고 걸어다닐 때였다.
단순히 걷기만 늦는 게 아니라 아주 쉬운 퍼즐 맞추기고 어려워하고
청각 센서리가 심해서 웬만한 생활 소음에도 귀를 막고 우는 경우가 많았다.
아무래도 지적인 면에서 발달이 느리거나
장애가 있는 건 아닌가 하고 걱정을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소아과 의사도 신체 발달에는 걷기가 늦는 것 외에는 문제가 없으나
지적인 발달이 걱정되니 발달 전문의를 만나 보는 게 좋겠다고 했다.
마침 한국에 방문하게 되어 친정 근처에 꽤 유명한 소아 정신과가 있어 걸어서 병원을 찾아갔다.
보이는 것에 호기심은 정말 많은 준이였기에 병원 문을 들어서면서부터 신이 나서 눈빛이 반짝이고 고개가 돌아갔다.
꽤 긴 검사가 이어졌다.
놀이방 같은 곳에서 검사자 선생님이 아이와 놀이를 하다가
또 다른 방으로 가서 아이에게 말을 붙이고 아이에게 이런 저런 활동을 시켰다.
내게도 많은 질문이 이어졌고 나는 성실히 답을 했다.
모든 검사가 끝나고 '점수'가 나왔다.
준이가 받은 검사에 의하면 1점부터 7점까지 기준이 있고,
3점 이상이면 자폐증이라는 진단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런데 준이의 결과는?
2.8이었다.
의사는 그래서 준이는 자폐증이 아니라고 했다.
자폐성 발달장애가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서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2.8과 3점이란 숫자의 차이는 오로지 어머니가 판단할 수 있다고 했다.
그 차이의 의미를 준이가 자폐증이 아니라는 것에 맞출 것인가,
아니면 3점에 거의 근접한 숫자라는 것에 맞출 것인가...
그 결정은 순전히 부모의 몫이라고 했다.
어깨와 가슴이 무거워지는 기분이었다.
그 다음 의사는 또 이런 말도 했다.
"준이는 참 운이 좋은 아이입니다. 첫째, 미국에서 태어났고 자라고 있다는 것이죠.
준이같은 경우는 조기교육과 조기 중재가 정말 중요한데
한국에서 그런 노력을 하려면 비용이 너무 많이 듭니다.
지금 준이가 미국에서 받고 있다는 조기중재(early intervention)를 한국에서 받으려면 두세배를 지불해도
어려울 겁니다. 더구나 테라피스트가 직접 집으로 방문하는 시스템도 많지 않고요."
그래도 위로를 받은 것 같아 무거웠던 어깨가 조금 가벼워지는 기분이었다.
의사는 미소 띤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준이가 운이 좋은 이유는 또 있습니다."
내가 의사를 쳐다 보았다.
"제가 진료한지도 15년이 넘었는데요, 저 진료실 문을 웃으면서 들어오시는 어머니는
준이 어머니가 유일했습니다."
내가 진료실 문을 열면서 왜, 어떻게 웃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런데, 의사에게서 그 말을 듣는 순간, 울컥 눈물이 나려했다.
그 또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준이는 그 다음에 1년 정도 지나서 미국에서 미국인 발달전문의를 만났다.
그리고 'ASD Moderate'이란 진단을 받았다.
나는 한국과 미국에서 받은 진단의 차이를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두 진단이 의미하는 바가 같다는 것은 알 수 있다.
점수가 어떻든, 숫자가 어떻든,
준이에게는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
그리고 자주 울고 싶지만
그래도 웃으며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섰던 엄마라는 사실.
내 속에 좌절도 있지만 희망도 있다는 사실.
4월 2일은 자폐증 인식의 날이고
4월은 자폐증 인식의 달이다.
자폐증 인식이란 말은 자폐증에 관해 함께 알아가자는 말이다.
그만큼 ASD 진단을 받는 아이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말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만큼 좌절이, 슬픔이, 고통이 많아진다는 말일 수도 있다.
그리고 희망이 커진다는 말이다.
함께 인식해서 함께 품는다면 말이다.
저마다의 희망은 크기가 작을 수 있으나
어쨌든 모이면, 합치면, 뭉치면 커진다.
4월 자폐증 인식의 달에 그 크기가 어떻든,
내가 준이에게 품은 희망도
그 크기가 어떻든낌없이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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