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가 느리다며 소아과는 걱정을 했고,
엄마인 나는 '그러다 걷겠지'했다.
내 생각대로, 준이는 그러다 걸었다.
28개월 무렵에 첫 발을 떼었다.
목 가누기, 기기 등은 전혀 문제가 없었기에
걷기만 하면 다 되는 줄 알았다.
소아과 닥터의 강력한 권고 아래
(닥터는 얼굴이 시뻘개져서 화를 냈다. "아직도 안 가면 어쩌냐고."
그런 닥터를 만나서 참 감사한 일이다)
발달 전문의를 만났고
준이는 자폐증스펙트럼장애(ASD) moderate라는 진단을 받았다.
발달전문의가 준이를 진단하는 데 든 시간은 20분이 채 되지 않았다.
그 전에 두꺼운 페이퍼를 모두 작성해서 제출한 덕은 있겠지만,
닥터는 얼마간 준이가 노는 걸 살펴보고
말을 시켜보고 진단을 내렸다.
그게 만 3세 때였고,
준이는 꾸준한 테라피를 통해 호전을 보였고,
만 5세 때 다시 다른 닥터를 찾았다.
그는 발달전문의가 아니라 신경심리학 전문의였다.
그는 역시 두꺼운 질문지를 작성하게 하고
2시간에 걸쳐 검사를 했다.
결과는 같았다.
'mild'도 아니고 'moderate'이었다.
그제야 보였다.
준이가 온 몸으로 엄마인 내게 보였던
"I need help!"
돌아보면 준이에게서는 좀 특이한 기질/성향/반응이 있었다.
평소의 눈으로는 잘 포착되지 않거나 포착될 수 없는 성격의 것들.
진단을 받고 '내 아이'가 어려움을 갖고 있구나,하고 받아들이게 되면
그제야 보일 수 있는 것들.
그래서 '미리' 보인다는 게 참 힘든 것들.
닥터들은 한 번도 내게 물어보지 않았던 것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Water-Seeking
-준이는 물을 몹시 좋아했다. 물을 마시는 것도 좋아하고,
물을 갖고 놀고, 물 안에서 노는 것도 좋아했다.
그런데 물을 이용해서 노는 게 아니었다.
물 위에 오리배를 띄우거나 비누거품을 풀어서 노는 게 아니었다.
준이는 물 자체를 갖고 놀았다.
수도꼭지에서 졸졸 흘러내리는 물에 손을 대고 가만히 있기
잔잔한 수면을 찰랑찰랑 손바닥으로 때리기
마치 물과 대화라도 나누는 것처럼.
그래서 수영을 좋아할까 싶어서 수영강습에 데려갔다.
왠걸?
발가락도 물에 담그지 못했다.
바닷가에 데려가면 모래를 밟기 싫다며 발가락을 옹크리고 걸었다.
파도를 무서워했다.
수영장에서 발을 담그는데 일주일이 걸렸다.
다행히 그 뒤로 몇 달이 흐르는 동안 준이는 모든 영법을 다 깨우치고 다이빙도 터득했다.
지금은 수영팀에 있다.
결국, 물을 좋아한다.
Line-Seeking
준이는 두어살 때 '줄'에 집착했다.
뭐든 '줄' 비슷한 걸 보면 달려 들었다.
그리고 그걸 들고 흔들흔들...
뭘 즐기는 걸까?
자기가 흔드는 대로 휘적거려지는 줄의 형태를?
준이는 그렇게 줄을 잡고 흔들며 그 모습을 가만히 쳐다 보길 좋아했다.
끈, 줄자, 허리띠, 휴대폰 충전줄...
물을 좋아하고, 줄을 좋아한다고 해서 모두 ASD는 물론, 아니다.
그러나 언어가 느리고, 신체발달이 느리고, 인지가 느린데
이런 성향이 나타난다면 주의해서 볼 필요가 있다.
물론, 이런 성향 외에도 ASD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그 아이만의 '독특한' 성향/기질/특징/반응이 있다.
돌아보면 '아하!'하게 되는.
닥터들이 이런 걸 물어보지 않아도,
엄마는 알 수 있는.
일상에서 포착하기 쉬운.
그러나 '문제삼기에는' 문제가 있는.
그래서 놓치기 쉬운.
나 역시 돌아보고 나서야 알았다.
그래서 말하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다.
돌아보지 않고도 알 수 있도록 한 조각 도움이 되면 좋겠다.
돌아보지 않도고 알 수 있다면
그만큼 하루라도 빨라지는 셈이니까.
아이에게 도움 주기가.
0
쪽지
Back
목록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