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제(美製) 가득한 이 나라에서 Made in Korea로 살아남는 법

부의 상징 스팸=====

80년대를 기점으로 한국에 들불처럼 유행하던  '수입 상품'이라는 가게를 기억하는가? 남대문 안에 일명 도깨비 시장이라 해서 말 그대로 미국의 수입 상품을 파는 가게였는데, 해외여행 자유화가 이루어 지기 전이니만큼 강남을 중심으로 미국 제품에 대한 관심과 호응도는 실로 대단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시바스 리갈이라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즐겨 마셨다는 양주와 형형색색의 초콜릿들, 정말 부잣집 아이들만 먹을 수 있었던 치즈, 각종 화장품, 하지만 그 중에 단연 인기 있던 제품으로는 바로 햄 종류인 스팸(spam)이었다. 길다란 깡통 속에 들어 있던 프링글스 감자칩, 화려한 색상의 캔디 같은 소소한 간식거리도 눈으로만 쳐다보며 입맛 다시던 시절이 있었다.

좀 산다 하는 집안의 자제들이 싸오는 스팸 도시락 반찬은 바로 '부의 상징'이 될 정도였다. 당시에는 미제 과자 하나 쯤은 입에 물고 다녀야 '있는 집 자식' 취급을 받았다. 미국 판매가의 수십 배에 달하는 어처구니 없는 가격에도 불구하고 수입 상품 점의 인기는 식을 줄을 몰랐다. 우리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이 아이러니한 사치심으로 표출되던 시기였던 것이다.

미국 슈퍼마켓에 압도당하다=====

 90년대 중반 미국에 잠시 유학을 왔을 때 가장 놀랐던 사실 중 하나가 있다. 바로 어마어마한 규모의 대형 슈퍼마켓에 발 디딜 틈 없이 빼곡히 들어 찬 미제, 미국 제품, 즉 수입 상품의 종류에 충격 받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워낙 땅덩어리가 넓어 월마트나 타깃같은 슈퍼마켓 자체의 건물 규모는 말할 것도 없고 그 안을 꽉 채운 셀 수 없는 물건, 물건들. 지금에야 아~~~무 생각없이 발길이 향하는 곳이지만 처음 접했을 때의 위압감이란 말로 표현하기 조차 힘들었다.   

한국에서는 고작해야 서너 평 남짓한 허름한 수입 상품 점, 특유의 향긋한 미제 냄새, 그 안에 진열되어 있던 꼬부랑 글씨의 과자들만 봐도 시골에서 갓 상경한 촌놈마냥 입이 떡 벌어졌었는데, 정작 미국에 와서 보니 말 그대로 스팸은 그냥 스팸일 뿐이었다. 아무나 먹을 수 없는 희한한 햄도, 부의 상징도 더 이상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돈 없는 사람들이 먹는 싸구려 음식이라 외면받는 정도였으니 도시락 속의 스팸 반찬 하나로 아이들 앞에서 그리도 기세  등등했던 내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고 창피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랬다. 미국은 달랐다. 무엇이든 크고, 많고, 넉넉했으며 그리고 자유로웠다. 한국에선 그리도 갖고 싶고 선망의 대상이었던 수입 상품, 아니 미제들이 이 곳에선 말 그대로 흔하디 흔한 생필품인 것이었다. 세상이 얼마나 광활한가, 그 안에 나는 또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처럼 지 혼자 잘났다고 뻐기며 살았던가, 편협한 지식 안에 갇혀 세상의 모든 고난을 다 짊어 진 듯 고민하고 좌절하던 지난 날의 청춘, 20대 중반에 거대한 월마트 앞에 난생 처음 홀로 서서 내가 느낀 허탈한 진심이었다.

미국까지 와서 김치를 먹어?=====

유학을 온 초창기에는 많은 한국 음식점에 또 한번 놀랐었다. 매일 먹는 게 밥이요 고추장이요 김치이거늘, 굳이 미국이란 나라에서까지 그리도 치열하게 김치를 챙겨먹어야 하는지가 의문이었다. 별나다, 별나... 한국 사람 별난 것 익히 알고 있었지만 집에서 먹는 김치만으로는 그리도 성에 차지 않았을까? 세상에 많고 많은 각 나라 음식이 존재하는 이 미국 땅에서, 유나이티드, 스테이트, 아메리카에서 그리도 한국, 한국인 티를 내며 살고 싶었을까, 궁금하고 또 궁금했었다.

중국집에 가니 단무지, 영파와 함께 김치도 준다. 아니 한국에 있는 중국집도 김치 안 주는데 왜??? 괜히 미국인들이 냄새 난다고 구박이라고 하지 않을까 찔리는 마음에 스윽 한 번 눈치를 본다. 뭐 굳이 이렇게까지….. 한식당은 또 어떤가? 아니 집에서 먹는 밥, 뭐하러 돈 내고 밖에서 사먹어? 한인타운은 왜 또 이렇게 큰거야? 미국 사람들이 이렇게나 한식을 찾는거야? 이렇게 많은 식당들이 돈이나 제대로 벌고 있는거야?? 쓸데없는 오지랖에 더 쓸데없는 식당 주인 걱정을 하고 있던 때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