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말, 무더위와 장마가 반복되는 뉴욕을 떠나 18개월 만에 서부의 남쪽 끝에서 두번째 겨울을 보내고 있다.
첫번째 겨울을 플로리다에서 보내면서 습하고 더운 겨울 기후에 놀랐다면,
두번째 겨울을 캘리포니에서 보내면서 기대했던것 보다 낮은 기온에 놀랐다.
캘리포니아 하면 일년내내 항상 화창하고 따뜻한 기후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12월부터 2월 까지는
기온이 꽤 쌀쌀했다.
그렇다고 뉴욕처럼 눈이 오거나 얼굴을 마미 시키는 강 추위는 아니지만, 아침과 저녁으로는 도톰한 겨울
옷이 필요했다.
하지만, 플로리다에 비해서 건조하고, 낮에는 해가 따사롭게 비추며 높고 맑은 하늘을 보여주고 있었다.
한 마디로 기분좋은 날씨다.
왜 캘리포니아 세금을 일명 '날씨 세금 ' 이라고 하는지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버스집은 일반 집 보다 온도변화에 약하다.
캘리포니아 에서는 일년 내내 RV를 가지고 이동할 수 있을줄 알았지만, 막상 겨울이 되니
우리가 머물 수 있는 곳은 '피오피코' 와 '웰더니스 레이크' 캠핑장 두 곳 이었다.
그 중에서 '피오피코'는 인터넷이 좋지 못하니 우리가 선택 할 수 있는 최고의 장소는
'메네피' 라는 동네에 위치한 '웰더니스 레이크' 캠핑장 이다.
같은 이유로 '웰더니스 레이크' 캠핑장은 겨울 동안 서부에서 풀타임으로 RV 생활을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장소이다.
또한 이곳은 지난 4월 처음 캘리포니아에 들어와서 머무르면서
사고난 차를 고쳤던 곳이다. 왠지 나에게는 서부의 '친정' 같은 곳이다.
역시 이 곳에서 먼저 와 있던 K 언니와 C 언니 가족을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RV 손봐야 할 곳을 함께 배우고 고쳐가며 겨울을 보내고 있었다.
'친정' 느낌 이어서 일까? 항상 이 곳에 오기 전 버스에 소소한 문제가 생기는데,
이번에는 그 보다 조금 더 큰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TT 캠핑장은 3주동안 한 장소에 머무르면 반드시 1주일은 다른 캠핑장으로 가야 하는 규정이 있다.
1월 세째주, 웰더니스에서 3주를 보내고 우리는 근처의 사설 캠핑장으로 일주일을 보내기 위해 움직였다.
K 언니네가 이미 여러번 왔던 곳 이어서 우리도 같이 움직이기로 결정했다.
20분 정도 떨어진 동네에 위치해 있어서 토요일, 가볍게 이동하고 함께 저녁 시간을 보내며 주말을
지내고 있었다.
그리고 일요일 저녁, 급하게 한국에 가야 할 일이 생겼다.
사실, 12월 정도 부터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막상 일이 닥치니 손이 떨리고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남편에게 모든일을 미루고 우선 비행기에 올랐다.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면서 머리가 복잡해 졌다.
버스집은 어쩌지? 일주일 예약을 해 놨는데 어떻게 연기를 하지? 그럼 다음 일정들은 어쩌지?
이런 상황이 되면 캠핑장에 있는 RV Storage에 버스를 맡기고, 그 다음 락키를 로버에 맡기고,
하면서 미리 막연하게 생각만 하고 있었지만, 그 순간 만큼은 모든 것이 무의미 했다.
버스를 맡기기 위해서는 우선 냉장고를 비워야 한다.
스토리지에 있는 동안은 전기가 없기 때문에 냉장고에 음식이 있으면 맡길 수가 없다.
하지만, 당장 내일 새벽 떠나야 하는데 그 많은 음식을 어찌하리..
그리고 우리는 일주일 후인 토요일에 이 곳을 나가야 하는데, 일주일 만에 돌아 올 수도 없는 상황
이었다. 아니, 당시에는 언제 올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 이었다.
공항에서 K언니에게 전화를 하니, 아무 걱정 말고 다녀 오라고 하시지만, 저 큰 버스를 어쩐단 말인가?
언니네는 트럭위에 트레일러를 올리는 fifthwheel에 산다. 그러니 버스 운전을 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혹여 가능 하시다 해도 안에 있는 짐 정리부터 이것저것 챙길 것이 많으니
맡길 수도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아무런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우선은 한국으로 가야했다.
한국에서 자식으로서 마지막 일을 마치고 일주일이 훨씬 지나서 언니에게 연락을 했다.
전화를 하는 순간, 잠깐 꿈을 꾸고 현실로 돌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정신이 없지만, 정신을 차리자...
언니와의 전화 한 통화로 나는 현실로 돌아 올 수 있었다.
우리가 없는 동안 우리 버스는 원래 머물고 있던 사설 캠핑장에 그대로 서 있었다.
원래는 일주일만 머물기로 하고 돈을 지불 했는데,
언니가 오피스에 가서 사정 이야기를 해서 일주일 연장을 무료로 할 수 있었다.
사이트에 있는 동안 전기가 꼽혀 있으니, 굳이 냉장고 정리 등 내부 정리를 할 필요도 없었다.
캠핑장에서 사람이 없으면서 사이트에 RV만 서 있는 것을 별로 달가와 하지 않는다.
사람이 없는 동안 도난 사고나 전기 합선 등으로 사건사고가 발생 할 수 있고,
캠핑장에 따라서 산불 ( 요근래 캘리포니아 산불이 엄청났다 ), 홍수 피해 등으로 캠핑장 전체에
전기가 다운되면 모두 나가야만 하는 상황도 생길 수 있다.
이 경우 사람이 없으면 캠핑장 입장에서는 난감한 일이다. 이러한 이유로 대부분 캠핑장에서
최소 2틀 이상 사람이 안 보이면 연락을 해서 RV를 빼라고 워닝을 준다.
상황이 이러한데, 일주일 이상을 공짜로 있을 수 있도록 배려해 준건 순전히 K언니의 유창한
친화력 덕분이다.
일주일 후 언니네는 다시 웰더니스캠핑장으로 돌아와야 했다.
사설 캠핑장은 돈을 내야하고, TT 캠핑장은 무료이니 굳이 1주 이상을 머물 필요가 없는 것 이다.
이 기간동안 미리 알아둔 이웃을 통해 우리 버스를 수시로 첵업해 주면서
연락을 주고 받았다고 한다.
아, 다행이다. 우선은 갈 집이 있구나. 순간 안도와 함께 이제는 현실로 머리가 돌아가고 있었다.
이 사설 캠핑장에 2주를 머물 수 있었던 것은 땡큐 인데, 이 다음 일정은 어쩌나?
토요일 LA 공항에 내리면서 현실로 복귀한 나는 다음 일정 들로 머리가 아팠다.
덩그러니 서 있는 서늘한 버스에 들어가니, 순간순간 한국 가는 날의 장면이 떠 오르면서
더 이상 그 곳에 머물 수가 없었다.
또 다시 언니에게 전화를 했다.
"언니, 웰더니스 조금 일찍 들어 가면 안 될까?"
부랴부랴 웰더니스 캠핑장에 예약을 했지만, 다음 날인 일요일이 체크인 날짜이다.
"우선 와. 내가 오피스 가서 이야기 해 볼게"
그래 우선 여길 떠나자. 덩그러니 있으니 마음이 많이 힘들다.
언니가 일사천리로 움직여서 우리는 도착한 당일 다시 웰더니스 레이크 캠핑장으로 들어 갈 수 있었다.
그렇게 캠핑장에 들어가서 3주를 지냈다.
어찌 지냈는지 하루 하루가 너무너무 빨리 움직였다.
당일 저녁은 C 언니네 집에서 밥을 먹고, 그 다음날은 다 같이 모여서 튀김을 하고,
또 다음날은 K 언니네서 밥을 먹고, 또 그 다음날은 파김치를 같이 담그고,
남편과 두 분 형부들은 우리 버스의 조명을 바꾼다고 분주하고,
그 와중에 버스 물탱크의 고무 부품이 낡아서 물이 세고,
또 그것을 고쳐주기 위해 우리집에 모이고,
지나고 보니 무얼 했는지 잘 기억은 안 나는데,
뭔가 바쁘고 분주했다.
그렇게 인생에서 중요한 한 사람을 떠나 보내고 그 텅빈 마음을 사람들로 채워 나가고 있었다.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서 이런 일이 생겼다면 어땠을까?
엄마는 알고 계셨을까? 이 곳이 나에게 가장 최선의 장소였다는 것을?
엄마의 영정사진을 둘러싼 꽃들이 아름다웠지만,
이 시간들을 함께 보내준 먼 곳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의 마음이
나에게는 어떠한 꽃 향기보다 가슴에 남는다.
불과 2년 전 까지도 전혀 몰랐던 사람들이 가장 힘든 시기에 나에게 꽃 으로 다가왔다.
잊지 못할 장소 웰더니스 레이크 캠핑장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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