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으슬으슬 춥고 감기 기운이 있을 때, 몸이 전반적으로 다운되고 힘이 들 때

엄마가 끓여주던 김치국수가 생각난다.
멸치 다시마 육수에 김치만 넣고 국수 삶아 말은 것일 뿐이었을텐데

왜 그렇게 얼큰하고 맛있었는지
땀을 뻘뻘 흘려가며 한그릇 먹고 나면 온 몸이 개운해졌다.


지금처럼 계절이 바뀌고 뜨끈한 국물이 생각날 때

엄마는 소고기 감자국을 끓였다.

손이 큰 울엄마는 큰 국그릇에 푹 고아져 보들보들해진 고기와 진한 육수를 담고 파양념을 푸짐하게 얹었다.

후춧가루와 고춧가루를 팍팍 뿌리고

고기와 포근포근해진 감자를 숟가락으로 으깨 한입 넣으면

어린 내 입에서도 "시원~하다"란 말이 튀어나왔다.

우리 가족의 기를 북돋우는 엄마표 보양식이었다.


아이들이 어릴 때 내 몸이 아파도 제대로 누워 쉴 수도 없이

또 밥을 해 먹여야하는 때면 엄마표 밥상이 눈물나게 그리웠다.

한국 식당 하나없는 미국 어느 시골에서 향수병에 시달리며 독박육아에 쩔어있을 때

누가 밥 좀 해다주면 얼마나 꿀맛이던지.

내가 한 음식은 맛이 없는데 왜 남이 한 건 이렇게 맛이 있을까?
앞 집에 살던 언니가 '밥은 챙겨먹었니? 우리 나물밥했다.' 는 문자와 함께

양념간장에 나물밥 한 공기를 놓고 간 것을 얼마나 행복해하며 먹었는지 모른다.

 

"오늘 밥이 모야"
어설픈 한국말로 메뉴를 확인하는 우리 아들은 입맛이 매우 까다롭다.

맛에 관해 아주 엄격해서 맛없는 걸 못 참는다.

음식은 뜨거울 때 먹어야하고 음식 재료간의 궁합을 기막히게 맞출 줄 안다.

또 간이 안 맞는 걸 아주 싫어한다.

좀 싱겁다 싶으면 "soy sauce 어디있어?" 물으며 제가 알아서 간을 해 먹는다.


이런 아들이 내게 엄지척을 해주는 음식이 몇 개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김치 볶음밥이다.  

어제는 스팸을 넣어 양파, 김치를 쉬리릭 볶고 계란 노른자가 터지지 않게

sunny side up을 해 검은깨 몇 개를 솔솔 뿌려주니

먹으면서 얼마나 감탄을 하던지.
우리 아들에게 사랑받는 법을 나는 안다. 밥을 잘 해주는 것이다.

몸이 아프다고 찡찡거리며 짜증을 내는 녀석에게 뜨끈한 콩나물 국밥 한그릇 내어주면

나는 금새 세상에서 제일 좋은 엄마가 된다.
밤에 가끔 아들 침대에 함께 누우면 우리 아들은 내일 아침 뭘 먹을까 얘기한다.

자기가 본 새로운 레시피를 한번 해달란다.

정말 못말려. 먹으려고 사는구나 넌!


우리 아들이 좀 유별나지만, 사실 누구에게나 맛있는 밥은 참 중요하다.

몸이 제대로 기능하도록 영양을 공급하는 실질적인 이유 외에

밥이 주는 정서적인 의미를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밥은 사랑이기 때문이다.


성경의 일화 중에 내가 애정하는 한 장면이 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고는 호숫가에서 고기를 잡는 제자들에게 나타셔서

숯불에 생선도 굽고 떡도 구워 아침을 준비해 먹이시는 장면이다.

눈을 감고 상상해본다.

빨갛게 타오르는 숯불에 지글거리는 생선, 하얀 모닥불 연기가 피어올라

멀찍이서 그물을 당기는 제자들의 주의를 끌 때까지.


그 날 제자들은 모두 힘이 빠져있었다.
그들을 구원할 것이라 믿었던 예수가 무력하게 죽었기 때문이다.

특히 베드로는 자책과 수치심에 젖어있었을 것이다.

예수님을 절대 배신하지 않을거라 호언장담했지만

결국 예수의 예언대로 그를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기 때문이다.

그 분이 떠나신 때부터 베드로는 산 송장이 되었다.
'너는 사람도 아니다. 네가 잘하는게 도대체 뭐냐. 살겠다고 밥 챙겨 먹을 자격도 없다.

네가 유다와 다를게 뭐냐. 그는 수치감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지만

너는 죽을 용기도 없는 벌레같은 놈이다'
다소 과격한 행동파 베드로는 자신에 대해서도 모질게 몰아부쳤을지 모른다.
베드로는 슬프고 참담한데 배가 고파오는게 증오스러웠다.

아침 공기는 차갑고 마음은 시렸다.


"아! 저기!! 주...주님이시다"

누군가의 외침에 갑자기 배 안이 소란스러워졌다.

베드로는 바닷가에 선 어느 실루엣을 보았다.

'이럴수가! 분명히 예수님이다! 그런데 그럴리가 없다.

그 분은 십자가에 못질을 당해 분명히 죽었단 말이다.

내가 미쳐가는건가? 가까이가서 확인해봐야겠다!'

베드로는 그대로 바다로 뛰어들어 육지로 헤엄쳐갔다.

그리고 그 분 앞에 도착해 그대로 얼어붙었다.

모든 것이 다 멈춰버린듯 했다.

차가운 바닷물만 옷에서 뚝뚝 떨어졌다.

그는 고개를 떨궜다.

예수님을 다시 만나 너무 기뻤지만 자기의 죄를 알기에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베드로.


예수님은 지글거리는 생선을 뒤집었다.

아무말 없이 떡이 더 타지않게 불의 가장자리에 놓으셨다.
"지금 잡은 생선을 더 가져오너라"
빨갛게 이글거리는 숯불에 막잡은 생선이 올라가자 물이 튀어 파르르 소리를 냈다.
"와서 아침을 먹으라"
제자들은 쭈뼛거리며 하나 둘씩 생선과 떡을 뜯었다.

타닥거리며 장작이 타는 소리, 조심스러운 숨소리, 음식을 먹는 소리가 공간을 채웠다.
바닷가 이른 아침은 따뜻한 먹거리로 조금씩 데워지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왕을 잃고 이른 새벽 공기를 맞으며 고깃배를 탄 제자들이

몸도 마음도 얼마나 춥고 공허했을지 알았던 예수님.

타박할 마음도, 잘못을 지적할 마음도 없으신 그 분은

'자고로 사람이란 몸이 따뜻하고 배가 불러야 마음도 불러오는 것이지' 하며

아무 말없이 따뜻한 아침 한끼를 준비하신다.

자책하며 마음 속 구덩이를 깊게 파고들 베드로에게

생선을 권하고 떡을 권하신다. 따뜻한 눈빛과 부드러운 손길로.

말을 보태지 않아도 이 상황이 전하는 위로와 사랑은 더없는 감동을 준다.

아침 6시

알람을 끄고 이불 속에 웅크리며 5분만 더 늑장을 부린다.

몸을 일으켜 거실로 내려가 fire place를 켠다.

타닥타닥 모조 나무가 제법 모닥불같다.

어젯밤 끓여놓은 고기국에 된장을 풀고

얼려놓은 배추를 꺼내 한냄비 끓인다.

통마늘을 꺼내 탁탁탁탁 다져 국에 넣는다.

취사 예약된 밥솥이 찰랑거리며 "치이이이익" 김을 빼고, 

삐익삐익 소리를 내며 임무를 완수한다.

5분쯤 뜸을 들이고 주걱으로 밥을 저어

구수한 밥 냄새를 맡는다.

꽤나 쌀쌀한 오늘 아침 메뉴는 뜨끈한 소고기배추 된장국에 찰진 현미찹쌀밥, 그리고 새로 꺼낸 김치다.

집 안 아침 공기가 밥냄새로 가득찬다.

사랑과 기도를 담아 밥을 뜨고 국을 담는다.

"얘들아,

일어나 밥먹어라"

밥은 사랑이다. 내가 밥을 지을 줄 알아서 참 다행이다.

*** 성경의 내용을 제 개인적인 상상력을 기반으로 다시 엮은 것입니다. 물론 저자인 요한의 생각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극히 주관적인 내용과 생각임을 말씀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