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동생으로부터 부모님집을 팔기로 결정했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나는 너무 좋아서 천정까지 펄쩍 뛰었습니다. 정말 그 기쁨을 형연할 수 없었어요. 왜 그렇게 좋아했냐고요? 부모님집 팔면 뭐 콩고물이라도 좀 떨어질 것 같아서? 아니요. 전혀 아닙니다. 절대로 그런 이유가 아니었습니다. 

지금부터 그 집, 부모님으로 물려받아 동생 가족이 살던 그 집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무심코 내뱉는 말 한 마디가  상대방에게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해서. 그리고  사람처럼 집에도 ‘기운’ 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해서.

내 글을 빼지않고 읽은 독자들은(아직 읽지않았으면 저 밑으로 가서 '엄마 초상 치른 날 밤 생긴 일'을 읽고 오시면 이해가 좀 더 쉬울 겁니다)알 겁니다. 엄마 초상 치른 날 밤의 이야기를. 엄마를 산에 묻고 돌아온 날 밤 엄마가 기거하던 집에서  겪었던 이야기, 온몸을 엄습하는 원인 모를 무서움에 죽을 만큼 힘 들었던 이야기를. 

그날 밤, 그렇게 공포에 질려  벌벌  떨고있는데 목욕갔던 올케가 돌아왔습니다.  얼마나 반갑던지요.  올케에게는 아무 이야기를 안 했습니다.  앞으로 그 집에서 살 사람한테  괜히 겁을 주고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음날, 나는 미국으로 떠나왔습니다. 그리고 몇년동안 한국에 가지않았습니다. 부모님이 존재하지 않는 친정집, 꼭 가야만할  이유를 못 찾았거든요. 그러다가 내가 스마트폰을 갖게되었고 오랫동안  소식이 끊어졌던 고향친구들과 다시  연락이 닿으면서  동창회에 참석하는 것을 시작으로 다시 한국에 가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에 갈 때마다 큰동생집에 머물러야했습니다. 그러니까 예전의 엄마집이지요. 집에 대한 내력을 먼저 설명해야겠네요. 그 집은  80년대 초반, 인근에서 제일 큰 모직공장을 운영하던 사장이 직접 지었답니다. 모직공장 사장이 자기 노년을 보낼 집이라고 엄청난 애정을 보였답니다. 설계랑 건축자재도 직접 엄선해 골랐다고해요. 아닌게 아니라  실내는 단단하고 튼튼했고 외관도 아주 수려했습니다. 단층집만 즐비한 그 동네서 우뚝 솟은 그 집은 멀리서도 표가 났어요. 지금이야  그 고장에도  고급스럽고 화려한 아파트가  바늘꽂을 틈도 없이 빽빽하게 들어섰지만  그때만해도 '집'이라고 하면 주택이었습니다. 그것도 이층집. 

안타깝게도 그 집을 지어 입주한 지 얼마후  모직공장 사장이 유명을 달리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집이  좀 싸게 매물로 나왔고 마침 쓸만한 집을 구하고 있던 우리부모님 눈에 뜨이게 된 겁니다. 그 집을  샀을 때 나는 미국에 있었습니다. 전화로  그 집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ㅇㅇ동에서는 제일 멋지고 좋은 집’ 이라고 아버지와 엄마가 감격해 하던 게 기억납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엄마와 동생네가 살았습니다. 출입구가 따로 나있는 윗층에는  올케와 두 아이(동생은 예전부터 직장때문에 거기서  좀 떨어진 곳에서 혼자 살았어요. 주말에만 올라왔지요. 그래서 올케와 두 조카만), 아랫층에는 엄마가. 그러다가 엄마마저 세상을 떠난 후에는  이층은 세를 주고 올케와 아이들이 아랫층으로 내려와서 살기시작했습니다. 엄마가 생전 쓰던 살림살이를 그대로 놓고 쓰면서.

한국가서 그 집에 묵을 때마다 기분이 이상하고 묘했어요. 엄마의 체취가 묻은 가재도구를 보면서 초상친 날 밤의 몸서리칠 만큼 무서웠던 기억이 자꾸 되새겨지는 겁니다.  그리고  그 집에 발을  들여놓을 때마다  떠오르는 말이 있어 더 기분이 안 좋았어요. 바위에 각인된 것처럼 단단하게  뇌리에 남아있는 말, 애써 무시하려하면 할수록  선명하게  떠올라 나를 괴롭히는 말. 

엄마가 세상을 떠나고난 후 고모가 누구한테하는 소리를 우연히 들은 겁니다.

"오빠가 그 집을 사는 게 아니었어. 그 집에 이사가고난 후 계속 줄초상이 났잖아. 원주인도 그 집 짓고나서  죽어버리고  식구들 모두 망해나갔다고 하던데...”

고모의 말에 의하면  사장이 죽은 후 모직공장도 남의 손에 넘어가게 됐고 가족들도 뿔뿔이 흩어졌다고해요. 한 마디로 재수가 없는 집이라 이겁니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의  충격을 잊을 수 없습니다.  단단하고 큰 돌이 내 머리를 치는 것 같았어요.  정말로 무서웠습니다. 무섭고도 두려웠습니다. 고모말이 사실이었으니까요. 그 집에서 아버지와 동생이, 그리고 엄마가 차례차례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것도 단 몇년 안에. 

고모의 말이 별로 설득력이 없을 수도 있어요. 왜냐면  부모님이 그 집에 이사가서 20년 가까이 살면서 아무일이 없었거든요.  그 집에 살면서 남동생 셋을 결혼시켰고  나 또한  아버지엄마가  살 때, 그리고 아버지가 세상 떠나고 엄마 혼자 살 때 그 집에서  며칠 지냈지만 별다른 느낌이 없었습니다. 북향이라 집이 좀 어둡다는 것외에는.  

그렇지만 엄마 초상날 밤, 세상떠난 엄마가 돌아와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 같은 공포를 직접 겪은 나는 고모의 말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어요. 보이지않는  요사스럽고  어두운기운이 그집을 에워싸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자꾸 섬��하고 으스스했어요. 누가 뒤에 서 있는 것같아  문득문득 뒤돌아보게되고요. 정말로 그 집에 사람아닌 무엇이 존재하는 것일까요.

이런저런 이유로 가뜩이나 그 집이  무섭고  싫은데  더욱더 그 집에 머물고 싶지 않았던 또 다른 이유가 있었어요.  집안팍이 너무너무 더럽고 지저분해서였습니다. 여기서 올케 흉을 좀 봐야겠습니다. 여자나 집은 가꾸어야만  빛이  난다고 하는 말도 있는데 참 안타깝게도 올케는  집 꾸미는 데에 도통 관심이 없었을 뿐 아니라 아예 청소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었거든요. 일년에  걸레질을 한두번이나 할까요. 방바닥이 찐득거려서 슬리퍼를 신지않으면 걷지를 못할 정도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렇게 정리정돈을 못 할까요. 초년병사 사물함처럼  딱딱 각 맞춰있어야 직성이 풀리는 우리집같기를 바란다면 내가 나쁜 사람이겠지요. 최소한 있을 곳에 물건이 놓여있게 하는 것도 못하는 올케였습니다. 손톱깎이라도 하나 찾으려면 온 집안을 뒤집어 엎어야만 했습니다. 딱 쓰레기장 같다고 상상하면 됩니다. 시어머니집이었지만 이제는 자기 소유가 되었으니 나 같으면  신바람이 나서 예쁘게 꾸미고 가꿀 텐데 올케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집안도 그렇거니와 바깥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꽃과 나무와 돌이 있는  제법  보기좋은 정원이었습니다만 엄마 세상떠난 후 빗질 한 번 하지 않아서 떨어진 낙엽들로  정신없이 어지럽혀져 있었어요. 화초와 나무들도 물을 제대로 안 줘서 푸석푸석 말라가고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잡초는 미친년 머리카락처럼 여기저기 솟아올라 엉켜있어요. 거미줄과 먼지는 말 할 것도 없고요.

갈 때마다 쇠락해가고 황폐해져가는 집을 내 눈으로 확인하는 일은 참 비애스러웠어요. 엄마아버지의 큰 자랑거리였던  그 집이 그렇게 단시일 안에 폐가같이 변해가다니 말입니다. 그렇지만 나는 아뭇소리하지 않았습니다. 그 집에 살지도 않는 나한테는 하등 뭐라 할 권한이 없었으니까. 

그 집에 머무는 일이 나는 참 괴로웠습니다. 비록 삼,사일 짧은 기간이지만요. 한국방문할 때마다  반드시 그집에서 묵어야했던 게  일단 큰 동생가족이 사는 집이잖아요. 마음이야 같은동네에 사는 작은동생네나 호텔로 가고싶었지만 적당한 핑계가 있어야하지 않겠어요. 집이 불편하고 무서워서라는 말은 할 수 없었습니다. 올케랑 조카들은  별 문제없이 살고있는 집이었습니다. 멀쩡하게 사람이 잘 살고있는 집을 무섭네, 어쩌네  방정을 떨 수 없었어요. 그래서 울며 겨자먹기로 꾸역꾸역 그 집으로 갔던 것입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재작년에 그 집에 갔더니 윗층에 인기척이 없습니다. 세들어있던 사람들이 나가버렸답니다. 그도그럴 것이  바로 지측에 십 몇층짜리 병원이 새로 들어선 것이었어요. 병원 창문에서 이층 안방이며 부엌이 훤하게 들여다 보였습니다. 병원 사람들이 매일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있다고 생각해보세요. 생활이 될리 있겠습니까. 나라도  못 견디지. 

윗층사람들마저 나가버린 집은 적막감만이 감돌았습니다. 두  조카는  별로 말이 없는데다  집에만 오면 게임한다고 제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를 않아요. 또한 올케도 떠드는 성격이 아니라서요. 사람 소리가 나지않으니까  집은 더욱더 음산한 분위기를 풍겼습니다. 낮에는 좀 괜찮아요. 북향이긴 했지만 아침에 햇빛이  약간 들었고 오후에도 부엌을 통해 넘어가는 해가 들어왔으니까. 그러나 밤에는 아니었습니다. 희미한 외등 불빛아래 서 있는 집은 괴괴하고 음침했습니다. 외출했다가 그 집에  들어서는 게 참 고역이었습니다.

재밌는 것이  올케는 무덤덤하고 무신경하기가 바위같아서그런지  그 집에 대해  별다른 느낌이 없는 것 같았어요. 올케에게  한 번 물어봤지요. 다른 건  일체 언급하지 않고 ‘이 큰 집에서 아이들과 셋이  지내기가  적적하지 않냐’고. 올케가 픽 웃으면서 대답했어요. 전혀  아무렇지 않다고.  윗층 세를 못 받으니 돈이 좀 아쉽기는하지만  신경쓰지  않아도 되니 홀가분하고 좋답니다.

참 다행이지 뭡니까. 나야  기분이 좀 그래도 며칠만  참다가 돌아오면 그만이지만 그 집에 살아야만하는 사람들이  편안하다니까말입니다. 

그렇게 싫은 집이었는데 더 싫어지게 불을 지핀 일이 생겼습니다. 인터넷에서 '풍수지리'에 관한 글을 읽고나서였습니다. 현관문과 화장실문이 마주보는 형상에 있는 집이 최악'이라는 글.  그 집이  바로  그런 형국이었거든요. 현관문을 열자마자 맞은편에 직통으로  화장실문이 보이는. 이런  구조를 가진 집에 살면  병에 걸리고 사업이 망하고  실직하고 이혼하고 식구들 사이에 불화가 끊임없이 일어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동안 나는 풍수지리를 믿지 않았습니다. 침실에 거울이 많으면 잘 때 기를 뺏겨서 좋지않다고 하는데 우리집 침실엔 큰 것 작은 것  합쳐 열 몇개의 거울이(이 못난 얼굴 뭐 비춰볼 게 있다고) 있어요. 그런데도 기를 뺏기기는 커녕  생생하기만 합니다. 그런데 그 글을 읽고난 후엔 그 집에 대한  불안한 마음이 가중되었습니다. 우리 부모님과 동생이 세상을 떠난 게  현관문과 화장실문이 마주보는 위치에 있어서 그랬을 거란 생각이 단박에 드는 거예요. 다른 흉사가 닥치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그 집을 없애버려야 할 것 같았습니다. 

사실 그 즈음  좋은 가격을 쳐줄테니 그 집을 팔라는 오퍼가 들어와 있었다고 해요. 그 집 바로 옆에 들어선 병원으로부터였다고 합니다.  집을 허물어버리고 병원주차장으로 그 집터를 쓰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좋은기회입니까. 그 집을 허물어버린다니. 허물어서 주차장으로 쓴다니 말이죠. 그 집에 좋지않은 기운이 있는 게 확실한 것 같은데 그런 집을 다른사람한테 팔아버린다는 것은 양심에 허락치 않습니다. 사람으로서는 못할 짓 아닙니까. 그러나 동생은 단호히 그 오퍼를 거절했다고 합니다. 엄마아버지가 피땀 흘려 마련한 집, 아직도 엄마아버지의 그림자가 남아있는 그 집을  좋은 오퍼들어 왔다고  난짝 팔아버리지않겠다는 것입니다. 대대손손 자식들에게 물려주겠다는 것입니다.

계속 그 집에 거주하려면 분위기라도 좀 산뜻하고 밝게  바꾸든지. 일단 청소부터하고 페인트도  환한 색으로 칠하고 커튼도 새로 달고 쓸데없는 물건도 없애고 치우고. 그러나 위에 말했듯 올케는 그런 쪽으로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동생도 주말에만 잠깐 들러서 잠만 자고 가는지라  집이 허물어지는지 쓰러지는지  모르는 것  것 같았습니다.

현관문과 화장실에 대한 글을 읽은 즉시 나는 동생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그 집을 팔으라고. 관리도 제대로  못하느니 임자 나타났을 때 제발 없애버리라고. 병원측에서 마음 바뀌기 전에 빨리 결단을 내리라고. 물론 내가 그렇게 독촉하는 이유를 대지 못했지요. 그냥 그런 우중충한 집에서 사는 올케랑 조카들이 불쌍하니 얼른 팔아치우고 산뜻하고 깨끗한 아파트로 옮겨가게 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동생한테서는 위에 쓴 것과  똑같은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쇠고집입니다. 웬만해서는 꺾을 수 없는 고집입니다.  그  집이 어때서 파�l니다. 그 좋은 집을 왜 파�l니다. 동생의 단호한 태도에 나는 할 수없이 전화를 끊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작년 1월, 친구딸 결혼식에 참석키위해 한국에 갔습니다.  다시 또 그 집에 머물러야 할 생각을 하니 한국방문길이 썩 즐겁지가 않았어요. 그런데 말입니다. 하느님이 보우하사 부처님이 돌보사 그 집으로 안 가게 된 이유가 생겼어요. 그때 한국은 몇십년만에 닥친 강추위로  난리가 아니었는데  그 집 수도가 꽝꽝 얼어버린 것입니다. 칠칠치 못한 올케가 물을  약하게 틀어놓지않아서. 먹을 물은 물론이고 화장실도 못 쓰게 됐답니다. 그래서 작은동생네 집으로 가게 된 것입니다. 올케는 미안해 어쩔 줄 몰라했지만 사실 나는 얼마나 안도의 숨을 쉬었는지. 얼마나 쾌재를 불렀는지. 

작은동생집에서  편안하게 머물면서 앞으로도 이런 변수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변수를 바라지않아도 될 일이 생겼어요. 글 첫머리에 쓴대로 집을 팔게 된 것입니다. 강철같았던 동생의 마음이 변한 계기가 있었습니다.  강추위로 그집 수도관이 꽝꽝 얼어버렸다고 했지요? 임시방편으로 헤어드라이기로 부엌과 화장실 수도를 녹여서 대충 썼는데 봄이 되자  문제가 생겼습니다. 수도관이 녹으면서 벽으로 물이 줄줄 샌 것입니다. 올케는  동생에게 전화해서 난리를 쳤겠지요. 동생은 어떻게든 고쳐보려고 했답니다. 그러나 워낙  설비들이 노후한데다 평소 관리를 제대로 안 하고 살았던 집이라 수리비가 어마어마하게 들겠더래요. 그래서 팔 결심을 한 거랍니다.  병원측에서는 그때까지   맘 바꾸라고 종종 연락이 오기도 했다는데  동생이 한 번 결심을 하자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고 합니다.

이사나가던 날, 동생이 집 사진을  두어 장 찍어보냈습니다. 동생이  말했어요. 아버지엄마의 흔적이 남아있던 집이 곧 기억 저 편으로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안 좋네...

그건 그랬어요. 거지같은 집에서 늘 살다가  평생 처음으로 집다운 집,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근사한 집을 처음 구입했을 때의 아버지엄마의 기쁨과 감격을 짐작하고도 남거든요.  그 집이 사라지면 아버지엄마의 흔적들도 같이 없어지겠지요. 어찌보면 참 아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나는  아쉬움보다 안 좋았던기억이 더 컸기때문에 후련하고 기뻤습니다. 나는  사진을 향해 중얼거렸습니다. 안녕, 잘 가라, 무서웠던 집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