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를 말리는 듯한 긴 기다림끝에 강아지를 보는 순간 눈물이 왈칵 터져나왔습니다.  왈왈 짖는 소리에 오,  다행히 탈진하지는 않았구나하는 안도감이 들어서. 그리고  지구를 반 바퀴나 돌아 이곳까지 오느라 고생한 게 불쌍하고 안쓰러워서. 

많이 지쳤을 텐데도 불구하고 뽀송뽀송, 아기같이 예쁘고 고운 얼굴의 이동봉사자 아가씨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습니다. 

"많이 기다리셨지요. 입국심사 줄이 너무너무 길었어요..."

많이 기다렸습니다. 도착이 세 시라길래 두 시반부터 나가 기다렸습니다. 집에서는  일찌감치 11시에 나갔구요. 노동철 연휴라 길 막힐까봐. 아닌게 아니라 길이 엄청 막혔습니다. 완전 주차장이었습니다. 제시간에 공항에 못 가게 될까봐 얼마나 마음을 조렸던지요. 가다가 편의점에 들러 군것질거리라도 사고 싶은 걸 참고 화장실 가고 싶은 것도 참아야했습니다.

한 시간이 지났을 때까지만해도  입국심사 줄이 많이 밀리는구나, 하고  별로 불안하지 않았어요. 비행기가 한 대씩 도착할 때마다 밀물처럼 쏟아져나오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썰물처럼 다 떠나가도 모습을 보이지않는 이동봉사자와 강아지였습니다만  이제나저제나 나오겠지, 했습니다. 그런데 두 시간 가까이 접어들자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어요. 혹시라도 서류가 잘못되었나, 그래서 입국이 거절되었나.  얼마나 걱정되고 애가 타던지요. 여지껏 살면서 그렇듯 간절한 마음으로 누굴 기다려보기는 처음입니다. 

그렇게 오래 걸릴 줄 알았으면 뭐라도 좀 먹어놓을 걸. 전날 밤 잠 한숨도 못잔데다(강아지 맞을 기대에 그냥  마음이 들떠서),오후까지 아무것도 안 먹고  피를 말리는 듯한 불안과 초조로  몇시간을 보내니까 몸이 먼저 반응을 했어요. 온몸이 마구 떨리면서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같은 거예요. 아무래도 빈 속을 채워야 할 것 같아서  여기저기 기웃거려보았는데 이런, 뭔놈의 공항에 식당 하나가 없습니다. 커피집이 눈에 뜨여서 쿠키라도 좀 살까하고 가봤더니 뱀처럼 줄이 깁니다. 포기하고 나오려다 바구니에 담겨있는 일회용 설탕이 보이길래 두 봉지 집어나와서 입에 털어넣었지요. 떨림이 좀 진정되더군요. 그 난리를 치고도 한참 더 지옥같이 초조한 시간을 보낸후 상봉하게된 강아지, 크림이.

참 이상하지요, 두손 내밀어 케이지에서 꺼내자마자 이 녀석이  기다렸다는 듯  내 품으로 들어오더니 푹 안깁니다. 비행시간 내내 울고(우는 소리가 짐칸으로부터 기내까지 들릴 정도로)그리고 입국심사를 받고 나오는데도 하도 울어서 이동봉사자가 곤란해 죽을 뻔했다는데  내가 안자마자  신기하게 울음을 그칩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도 마찬가집니다.  한번도 낑낑대지 않고  전혀 불안해 하지도 않고 내 무릎위에서  편안한 모습으로 앉아있습니다. 자그마치 네 시간을 (돌아올 때 역시 차가 밀려 시간이 배나 걸려서). 그런 강아지를 내려다보는 내 눈시울이 다시 뜨거워졌습니다.  주인한테 버림받은 후 그동안 얼마나 여기저기  돌처럼 굴러다녔으면  이렇듯  천연덕스레  적응을 잘 할까싶은 생각에서요. 더 이상은 춥고 배고프지 않게, 행복하고 안락하게 해주야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중앙일보칼럼 500회 기념파티를 하면서 인연에 대한 깊은 생각을 했었습니다.  좋은 인연은 애쓰지 않아도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물흐르 듯 이어지는구나 하는 것. 

기념파티는 내 단골식당, 민츠에서 했습니다. 내 글을 좋아하는 사람들만 딱 50명 초대해서. 그런데 파티 열리기 사흘 전 서넛이 연락이 왔네요. 이런저런 일로 참석을 못하겠다고.  음식값도 다 지불해놨는데 못온다니 아주 난감했어요. 고민끝에 이 미시유에스에이를 생각해냈습니다. 제 글을 좋아하는 독자가 이 동네에서도  몇몇 있을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글을 하나 올렸습니다. 혹시라도 나, 이계숙의 중앙일보칼럼 500회 기념파티에 오고 싶은 사람이 있냐고. 

그 글을 올려놓고 조금 있다가 다시 한 번 읽어보니 좀 구차하다 싶은 생각이 드는 겁니다. 얼른 내려버렸습니다. 그 글이 올려져있던 시간은 단 몇분, 아무리 길게 잡아도 5분이 안 되었을 겁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새크라멘토에 사는 독자 하나가 그 글을 봤답니다. 파티에 오겠다고 연락을 해 온겁니다. 그 독자는 십 몇년동안 내 글을 읽으면서 꼭 한 번 나를 만나고 싶었는데 용기가  안 나 주저하던 차였다고 했습니다. 그 글을 발견하고는 이번이 아니면 또 기회가 없으리라하는 다급한 생각이 들었다는 겁니다. 그렇게 만나게 된 그 독자는 지금도 아주 좋은 관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크림이도  그렇게  갑자기 이어진 인연이었습니다.  전혀 생각도 안 하고 있다가 갑자기.

몇달 전부터 슈퍼바이저가 내 책상뒤로 이사를 왔어요. 벽이 유리로  돼 있어 내 일거수일투족이 그쪽에서 다 보입니다. 아무리 강심장이라 하나, 슈퍼바이저를 뒷통수에 두고 딴 짓을 할 수 없습니다. 바쁘지 않을 때 틈틈히 들어가서 '눈팅'을 하던 미시유에스에이와는 자연히 작별하게 되었습니다. 책이나 신문보는 건 괜찮은데 근무시간중에 인터넷을 하는 건 금물이거든요. 그런데 그날은  왜 그렇게 미시유에스에이에 접속을 하고 싶던지.   슈퍼바이저가 잠깐 자리를 피한 사이를 포착했지요. 

미시유에스에이 접속하면  제일 먼저 들르는 곳이 있습니다. ‘입양, 이동봉사방’. 입양기다리는 강아지 사진들이 하루가 다르게 올라옵니다. 새끼때 예쁘고 귀엽다고 앞뒤 생각없이 덥석 집에 들였다가 똥오줌 못 가린다고, 짖는다고, 이사간다고, 임신했다고 등등의 온갖 이유같지않은 이유를 들어 유기된 강아지들이 한국에는 넘쳐납니다.   일정한시일이 지나면 모두 안락사에 처해진다고 해요. 

그 사진들을 보며 안타깝고 불쌍해서 늘 눈물을 흘리면서도 입양을  생각 못했던 것은 남편이 반대를 하기때문이었습니다. 유기된 강아지는 분명히 그럴 이유가 있다는 것이 남편의 생각이었어요. 세상에 나온지 얼마 되지도 않은 어리고 예쁜 강아지, 어떤 극한 이슈가 있지않고는 버릴 수 없다 (미국에서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니)이겁니다. 그런 강아지 데려다가 골치 아프기 싫으니 아예 생각 조차 말라고 내가 강아지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마다 다짐하는 남편이었습니다. 그 말을 거역하기 어려웠어요. 더구나 우리 집에는 나만 오매불망 바라보는 강아지 한 마리가 있으니 더더욱.

그날도 접속한 후 입양 이동봉사방에 들어갔는데 운명처럼 가장 눈에 뜨인 게 BFA에서 올린 크림이의 입양공고였습니다. 크림이를 보는 순간, 남편 아니라  하나님이 말린다해도 입양을 하고야말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공고에 나온 연락처로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혹시 안 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카톡으로도 메세지를 또 보냈습니다. 크림이라는 강아지, 내가 꼭 입양하고 싶다고. 

일 분에 열 두번 씩 전화기를 들여다보면서 답장을 기다리기를  한 시간, 드디어 답장이 왔습니다.  일단 서면인터뷰를 해야하니 시간을 맞추잡니다. 내가 견주로서 적합한지의 자질을 우선 확인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야겠지요. 한 번 버려진 강아지인데 아무한테나 입양시켜서 또 학대받고 버림받게 하면 안 되겠지요. 서면인터뷰 시간을 맞추어 놓고 나는 생전  안 하던 기도를 간절히했습니다. 하나님이든 부처님이든 신령님이든 알라신이든 나를 보우하사 강아지가 우리집으로 오게 해 달라...

시험을 앞둔 사람처럼 긴장했던 것과는 다르게 서면인터뷰는 쉽게 통과한 것 같았습니다. 강아지가 뛰 놀 수 있는 공간이 있냐, 강아지 엘러지가 있냐, 집안 구성원 중 강아지 입양을 반대하는 사람이 있냐, 정도의 질문이었거든요. 남편은 내가 구워 삶았습니다. 절대로 문제있어 주인으로부터 버림받은 강아지가 아니다, 길 잃은 강아지다. 우리가 입양하지 않으면  이 어리고 작은  강아지가 안락사를 당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설득하니까  남편의 마음도 누그러졌습니다. 참 재미있는 것이  입양을 진행하면서 남편이 나보다 더 강아지가 오기를 기다렸다는 것입니다.  BFA에서 간간히 보내준 크림이 사진을 보고 사랑에 빠져버린 겁니다. 세상떠난 시아버지의 장례절차를 진행하는 그 바쁜 와중에도  크림이 입양에 대한 소식을 물어올 만큼.  유기견 크림이로서의 서럽고 어두운 기억은 잊고 푸른 하늘처럼 희망차게 살라고  'BLUE' 라고 이름까지 지어놓고말이지요.

두 번째 관문은 열 장에 달하는 입양신청서를 작성하는 일이었는데 더 자세하게 우리집에 관해 서술하는 문항이 많았습니다. 강아지가 혼자 있는 시간이 하루에 몇 시간이냐, 몇 번 산책을 시킬 거냐, 강아지를 위해 쓸 수 있는 예산은 한 달에 얼마나 되느냐 등등. 강아지 받을 욕심에 거짓으로 신청서를 작성하는 사람도 간간이 나온다고 합니다. 나는 조금도 숨김없이 대답했습니다.

접수된 신청서는 BFA에서  꼼꼼하게 다 읽어본 후  일단 회의를 한답니다. 진정으로 강아지를 원하는 사람인지, 충동에 휩쓸려 일시적으로 신청서를 보낸 사람인지를 가려내기 위해서. 그 후 또 한 번의 서면인터뷰로 입양여부를 확정짓는답니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데 온 마을 사람들의 힘이 필요하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이번에 강아지를 입양하면서 그 말이 떠올랐습니다. 강아지 한 마리 미국입양 시키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수고를 하는지. 하나같이 생업에 종사하면서  자기 돈, 시간, 에너지 써가면서  봉사를 하더군요.  입양을 진행하면서 많은 연락을 주고 받았는데 어떤 땐 한국시간으로 새벽 3시가 가까운 시간에  카톡이 오기도했어요. 회사일이 바빠서 그때밖에 시간을 낼 수없기때문이랍니다. 

BFA에서 하는 일은  무궁무진하게 많더군요. 보호소에 입소한  강아지의 나이, 성별, 건강상태, 특징, 성격 등을 파악하고 작성해서 입양할 사람을 수배하는 일. 입양할 사람이 나타나면 위에 쓴대로  견주로 적합한지 두 번의 서면 인터뷰와 신청서를 심사하는 일.  입양자가 확정되면 강아지의 건강검진및  예방접종 등을 마쳐서 미국에 보낼 준비를 하는 일. 미국까지 강아지를 데려다 줄  이동봉사자를 찾는 일. 이동봉사자가 나타나면 입양자랑 연결해주는 일. 강아지를 꽃단장시켜 이동봉사자의 출국시간에 맞춰  공항까지 데리고 나가는 일. 검역소에 가서 서류를 작성하는 일 등.  유기견한테 이름을 지어주는 일도 그들이 하는 일입니다. 이름도 없이 번호가 붙는게 안타까와서. 크림이란 이름도 봉사자들이 붙여준 이름.  

그 많은 일들을 BFA에서는 돈 한푼 받지않고 전부  무보수로, 그러니까 유기견이 좋은 주인 만나  행복하게 잘 살라는 염원과 바람 하나로 (아이고, 이 글을 쓰면서 눈물이 납니다. 크림이 입양이 확정되자  BFA에서 신신당부를 하더군요.  딸을 시집보내는 친정엄마처럼. ‘사랑으로 시작했겠지만 변수가  분명히 생길 거다. 말썽을 부릴 거고 원했던 성격이 아닐 수도 있고. 그렇지만 끝까지 책임을 져달라. 도저히 키울 수가 없을 상황이 발생되면 연락을 해 달라. 절대 버리지 말아달라...’)다 한다는 것을 이번에 강아지를 입양하면서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들 봉사자들의 수고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고자 입양책임비에 5백불을 더 보냈습니다. 이번에 수고한 사람들 식사라도 하라고. 그러나  BFA에서 말했습니다. 밥은 안 먹어도 됩니다. 가외로 주신 돈은 강아지들  사료구입이랑 접종비로  잘 쓰겠습니다. 정말로 날개 없는 천사들입니다. 가슴이 따뜻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이동봉사자 역시 그렇습니다. 한국방문에 이것저것 볼일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얼마나 바쁘겠습니까. 그런데도 자기랑 전혀 상관없는 강아지를 위해서 시간내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강아지 입양이 확정되고 미국으로 데려올 일만 남았을 때, 정말로 마음이 급했습니다.  BFA에서는 기다려보자고, 샌프란시스코 라인은 이동봉사자들이 자주 있는 편이니  조금만 느긋하게 기다려보자고 했을 때 반신반의했습니다. 하루빨리  크림이를 보고 싶은데 기다려보자니요?! 금방 봉사자가 나타나지않으면  내가 한국으로 나갈 생각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일 주일만에 이동봉사자가 나타났다는 소식에  깜짝 놀랐습니다.  나는 크게 반성했습니다. 그동안 한국을 그렇게 자주 왔다갔다하면서도, 이동봉사자 구한다는 공고를 그렇게 보면서도  귀찮고 성가신 일은 질색이라는 구실로 한 번도  나서지않았던 나였습니다. 말로만 동물을 사랑한다고 했지 실천은 하지 못한 나였습니다.

이동봉사자 아가씨로부터 크림이를 넘겨받고 오는 길은 감격과 기쁨과 설렘을 빼고는 다른 말로 형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감정의 높낮이가 별로 없는 남편도 그 먼 여정을  견뎌내고 무사히 우리에게 온 크림이가  고맙고 대견했는지 흐뭇한 표정을 감추지않았어요.

저녁 늦게 가까스로 집에 도착해 기존의 우리 강아지와 크림이를 상봉시켰습니다. 크림이는 변죽좋게 집안 구석구석을 살피고 다녔습니다. 이동 중 토할 것을 염려해 비행 전부터 먹지 못한 크림이는 내가  끓여준 닭죽을 미친 듯이 먹었고(차에서도 좀 먹였지만)신고식을 하는 듯 곧 뒷뜰에서 똥을 한 무더기 싸더군요.

그렇게 크림이는 우리집 가족이 되었습니다.  여기 찍, 저기 찍, 온집안을 똥밭을 만들어놓고  길에서 떠돌던 버릇이 남아서인지 쓰레기통들을 온통 헤집어놓고 굶주린 기억때문인지 먹을 것만 보면 환장을 하면서 덤벼들고 많이 먹은 만큼 싸기도 많이 싸면서 (하루 여섯번 쌀 때도 있었어요)지 존재를  단단하게  각인시키더니 남편의 훈련덕분에 지금은 벌써 배변도 가리고 말귀도 제법 많이 알아듣네요. 나는 오늘도 블루의 포도알같은  눈을 들여다 보면서 묻습니다. 우리는 무슨 인연으로 이렇게 만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