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 받고 있습니다.

놀랐다면 죄송합니다. 제목이 너무 자극적이었나요? 지금의 내 마음을 그대로 표현했습니다. 나는 지금 벌 받고 있는 중입니다. 평소에 이 관리를 제대로 안 한 태만함에 대한 댓가를 이제와서 톡톡히 치루고 있는 중인 것입니다. 

치아에 엄청 문제가 생겼습니다. 지금 대공사를 하고 있습니다. 거의 일 주일에 한 번씩 치과에 갑니다. 돈 쓰고 시간 쓰면서 고통받고 있습니다. 사이다 한 박스를 이빨로(여기에는 치아나 이보다는 이빨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해요)다 땄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는 우리 아버지를 닮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아버지가 총각때 교회를 다녔답니다. 하루는 전 교인들이 야유회를 갔다고 해요. 교회에서  교인들 마시게하려고 사이다를 한 박스가져갔는데 병따개를 미처 준비하지 못했다네요.  평소 강철같은 이를 자랑했다는 아버지, 그에게  철로 된 사이다 두껑을  이빨로 따는 건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운 일이었습니다. 사이다 한 병을 따서 벌컥벌컥 마시고 있으니 옆에 있는 아가씨가 자기 사이다병을 내밀더랍니다. 두 말없이 따줬더니 그걸 보고는  누가 사이다박스를 들어다가 아버지 앞에다 내려놓더랍니다. 그렇게해서 사이다 한 박스를  이빨로 다 딴 아버지는 한동안 그 교회에 회자되었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일흔 한살에 세상을 떠날때까지도 건치를 자랑했던 사람입니다. 쉰이 넘어도 쇠지 않는 머리카락은  내가 아버지를 똑 닮았는데  제일 중요한 이는 닮지않은 것 같아요. 내 이는  밀가루로 빚어놓은 것처럼 썩기도 잘 썩고 모래로 만든 것처럼 푸슬푸슬  쉽게  부서지고 떨어져나갑니다.  어디가서 입 벌리고 웃기가 창피할 정도입니다. 여기저기 땜질투성이라서.

평소 관리를 잘 했다면 이꼴이 됐을까요. 아침 저녁으로 닦고 치실하는 걸로 내 할 일은 끝이라 생각했더랬습니다. 그리고 치과에 가는 걸 질색했더랬어요. 치과가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으리요마는 나는 유난히 더 했습니다. 아파 죽을 만큼 되어야, 아파서 밤에 잠 못잘 정도가 되어야 갑니다. 버틸 때까지 버텨보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마지못해서.  조그만 땜질 하나로  충분히 치료할  수 있었을  것을 시간끌다가 깊고 크게 썩게 만들어버립니다. 종내엔 신경치료까지 요할 정도가 되는 것입니다.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는 것입니다. 그런 일이 부지기수로 많아요. 얼마나 바보같은 짓인지.

조금만 부지런하면 되었습니다. 지정치과가 집에서 5분 거리에 위치해 있거든요. 정말로정말로 엎어지면 코 닿을 데입니다. 치과보험도 두개나 됩니다. 남편 회사에 하나, 내 회사에서 하나. 그런데도 여지껏 스켈링 한 번 안 했다면 말 다했지요. 매해 하나씩,  여덟 개의 임플란트를 자기 돈 한푼 안들이고  보험으로 싹 다 해넣은 사람도 내 주위에 있더만 멀쩡한 보험을 두개나 두고도 나는 그렇게 게으름을 피웠더랬습니다.

얼마 전부터 왼쪽 위아래의 어금니 부분이 문제가 생긴 것을 느끼기 시작했어요. 찬 음식이나 뜨거운 물이 닿으면 펄쩍 뛸 정도입니다. 시리고  아프고 쑤시는 겁니다. 그래서 그쪽으로는 가능한 안 씹었습니다. 치과갈 생각만 하면 앞이 아득하니까. 그러기를 몇 달, 이제는 반대 쪽이 아프기 시작합니다. 양쪽으로 아프면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음식을 먹지 못할 정도가 되었으니까요. 할 수없이 치과 예약을 합니다.  그리고는 소 도살장 끌려가는 심정으로 마지못해, 억지로 치과에 갔습니다.

내가 다니는 치과는 일년 열두달 손님으로 넘쳐납니다.  예약을 하고도 수십분은 기다려야해요.  안쪽에서 들려오는 연삭기소리, 분무기로 물 뿜는 소리, 빨아들이는 소리에 소름이 돋습니다. 의사선생님은  다 존경스럽지만 치과의사는 정말로 존경받아 마땅합니다. 컴컴하고 작은 입속, 냄새나고  더러운  남의 입속을 하루종일 들여다봐야하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입니다. 아무나 못합니다. 특히 제일 힘들 거라고 느껴지는 건 소립니다.  연삭기로 이 갈아내는 소리.  끔찍한 소리지요. 세상에서 제일  듣기싫은 소리를 꼽으라면  그게 꼽힐 겁니다. 그 소리를 하루종일 들어가며 일하는 치과의사들입니다. 보험이 두 개나 있어도 헉, 소리날 정도로 높은 고지서를 받아들 땐 존경이고 나발이고 칼 안든 도둑놈이란 원망이 저절로 나오지만요.

그동안 내 이를 봐 주던 늙스구레한 백인의사는 은퇴를 했는지 보이지않네요. 대신 젊고 잘생긴 동양인 의사가 들어옵니다. 중국인인가보다했더니 안녕하세요하고  한국말로(차트에 적힌 내 이름을 보고 한국인인이라는 걸 알고는)인사를 하네요. 기대치않았던 한국인 의사입니다. 조금 부끄러운 생각이 듭니다. 성한 곳이 거의 없는 입속을 보여준다는 일이. 얼마나 관리를 제대로 안 했으면 이 모양일까, 속으로  흉을 보고 혀를 찰 것 같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엑스레이를  살펴보더니 말합니다. 고쳐야 할 데가 꽤 많다고. 신경치료를 해서 크라운을 다시 씌워야 할 데가 세 군데, 떼워야 할 데가 한 군데랍니다.  염증이 생긴 사랑니는 빼야 한답니다. 신경치료해야 할 한 이는 자기 병원에서는 할 수 없는 작업이라 다른 치과로 보낸답니다. 그러면서 보험도 좋은데 왜 그동안  스케일링을 한 번도 안했냐고 나무랍니다. 기가 죽어서  아무 대답 못했더니 이번에 딥클리닝을 반드시 하랍니다. 그대로두면  충치균에 의해 잇몸이 상할 수도 있다면서. 변명할 여지가 없었지요. 선생님 말씀에 따르겠다고  공손히 대답했습니다. 이야 잘못되면 크라운에, 브릿지에 ,임플란트에 대안이 많지만 잇몸질환이 생기면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그걸 잘 알면서도 게으름을 부렸습니다.

돈 엄청 깨졌습니다.  치과의사 남편을 둔 사람은 참 좋겠단 생각이 저절로 들 만큼. 그동안 여섯 번을 방문했는데 매 번 수백불을 내야하는 겁니다. 아직도 치료를 다 마치기까지는 두 번 더 가야합니다. 돈이 더 들겁니다. 그러나 그건 괜찮아요. 딥클리닝한 후 놀란 거에 비하면.

딥클리닝을 두 번에 걸쳐  왼쪽, 오른쪽 나누어서(무리가 가고 힘이 드니까  한 번에 다 안 한다네요.)했습니다. 처음에도 그렇고 나머지 한 쪽을 마치던 날 입속이 완전히 피인데도 뭐 특별히 주의하라는 말을 의사가 안 해주었습니다. 그래서  몇 시간 후  마취가 풀리길 기다렸다가 저녁으로 배추김치랑 밥을 먹었지요.

다시 몇 시간 후 양치를 하는데 피가 뱉어지는 겁니다. 크라운 씌운 데가 잘 못 되었나, 하룻밤 자고나면 괜찮겠지, 나는 대수롭지않게 생각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도  입속에서는 피가 그치지 않습니다. 그치지 않는게 아니라 침을 뱉으면  핏덩이가  뭉쳐서 같이 나옵니다. 일단 출근은 했어요. 몇 백명 직원 중 제일 후진 영어실력으로도 늘 우수사원으로 뽑히는 이유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제시간에 따박따박 출근한다는 것인데 결근한다는 건 죽어도 있을 수 없는 일이거든요.  화장실에 가서 전화기에 불을 켜고 입속을 들여다보니 크라운한 이가 아닙니다. 멀쩡한 이에서 피가 울컥울컥 올라오고 있는 겁니다. 딥클리닝하면서 뭘 잘못 건드린 것 같아요. 거기다가 배추김치를 우걱우걱 씹어먹었으니 탈이 난 겁니다. 피는 무서워요. 그 양이 적든 많든. 하물며 선지같은 핏덩어리가  계속 이에서 올라오고 있었으니 얼마나 뒤집어지게  놀랐겠습니까.

커피 한 잔 마시고도 입을 헹구느라 수선을 피우고 실 한 오라기도 이로 끊지않으며  치아를 보호하는 한 할배가 있습니다. 유난떤다고 흉 봤더니 할배가 옳았네요. 그렇게 유난스럽게 치아를 관리했기에 여든이 다 되어도 충치 하나 없는 할배.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치아가 이렇게 중요한 줄 진즉 알았더라면. 정말로 후회막심입니다.

이제부터는 치아에 신경을 쓸 겁니다. 얼굴 처진다고, 주름 는다고  애면글면했더니 사실은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만큼 현재의 내 상황을 잘 설명하는 일이 또 있을까만은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이른 때라는 속담 또한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