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 블루. 어제, 시월 말로 우리집에 입성한지 두 달이 되었습니다. 많은 독자님들이 블루의 미국살이를 궁금해하시는지라 오늘은 이 녀석의 근황을 전해드리겠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블루는 아주아주 잘 있습니다. 녀석은 우리집에 금방 적응했어요. 누가 봤다면 몇년 같이 살았던 강아지인줄 알 만큼. 얼마나 변죽이 좋은지 오는 날로부터 우리 부부의 무릎에 와서 넙죽 앉더라니까요. 사람의 체온을 무척 좋아하는 블루. 현재도 그 녀석이 앉는 곳은 항상 내 무릎이나 남편 무릎입니다.

블루는 뽀뽀대장이기도 합니다. 뽀뽀하는 걸 얼마나 좋아하는지. 블루를 데려다 놓은 날, 하도 피곤해서 소파에 잠깐 누웠더랬습니다. 눈을 감고 있는데 어디선가 뭐가 비호같이 날아오는 것같더니 내 입에다 뽀뽀를 마구 퍼붓는 겁니다. 마냥 방심하고  누워있던 내가 소스라치게 놀란 건 두말할 것도 없지요. 지금도 소파에 좀 누울라치면 녀석은 번개같이 나타납니다. 바로 내 몸을 타고 올라와 얼굴을 온통 침 범벅을 만들어 놓습니다. 아침에 기상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몇 분에 걸친 뽀뽀 세례를 받아야만 내가 다음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유기견들은 주인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상처때문에 사람한테 마음을 여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합니다. 이쪽에서 아무리 애정과 관심을 주어도 일단 눈치부터 보면서 다가서는 걸 주저하고 머뭇거린답니다. 이 블루란 녀석은 달라도 한참 달랐습니다.

기운은 또 얼마나 넘치는지 모릅니다. 녀석의 왕성한 에너지는 우리집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 펼쳐지기 시작했습니다. 스무시간을 넘게 차와 비행기에 시달린 강아지로는 느껴지지않을 만큼이었습니다. 무서운 식욕과 엄청난 양의 배변으로 우리를 감탄하게 한 블루. 다음 일정은 산책이었어요. 오랜시간동안 좁은 케이지 안에서 쪼그렸었던 네 다리를 좀 펴게 하려고 잠깐만 산책을 시킬 생각이었지요. 그런데 땅에 발을 딛자마자 얼마나 힘차고 빠르게 걷는지 (걷는 게 아니라 날랐다고해야 정확한 표현일 겁니다)뒤따르면서 힘들어 죽는 줄 알았습니다. 나름 기운 센 나였지만 목줄을 잡고 끌려가는 지경이었다니까요. 십여분정도만 하려던 산책이 한 시간을 넘겼습니다. ‘해방된 민족’처럼 신나서 펄펄 뛰는 블루를 도저히 집으로 금방 데려 올 수 없었던 겁니다.

첫날 보여주었던 그 활발함은 두 달이 된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슨놈의 강아지가 이렇게도 에너지가 많을까요. 잠시도 가만히 있는 시간이 없습니다. 남편 말에 의하면 물에서 금방 건져낸 생선같답니다. 팔딱팔딱팔딱. 잠도 없어요, 이 녀석은. 밤낮을 가리지않고 온 집안을 헤집으며 설치고 다닙니다. 놀아달라고 치댑니다. 던진 공 물어오기는 삼십분 이상은 해야 만족해합니다. 공 던지다가 팔에 생전 없던 근육이 다 생겼다니까요, 내가. 하루는 운동을 아주 빡세게 시켰어요. 밖에 나가 두 시간을 걷게하고 집으로 돌아와 공놀이를 또 한 시간 넘게, 지쳐서 혓바닥이 나올 때까지 같이했지요. 저녁이 되자 녀석의 두 눈이 피로로 슬슬 감기는 것 같길래 아이고, 간만에 나도 편안히 깊은 잠 잘 수 있겠구나 했더니 편안히 깊은 잠은 개뿔, 새벽 두 시에 우리침대로 와서 왕왕 짖습니다. 놀아 달라고. 이렇게 잠이 없는 강아지는 내 평생 처음 봤네요.

기존의 강아지 밍키와 잘 동화되었는지, 사이좋게 잘 지내는지 궁금해하신 분들이 많았는데 물론입니다. 밍키가 워낙 부처님가운데 토막이거든요. 시기나 질투를 모릅니다. 욕심도 없습니다. 내가 저 앞에서 다른 강아지를 안고 얼러대도 쳐다만 볼 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점잖은 성격입니다. 그 점잖은 성격은 물론 블루에게도 적용되었지요. 밥도 물도 블루에게 우선으로 양보합니다. 재밌는 것이 늘 둘이 같은 시간에 밥을 먹습니다. 블루가 밥그릇이나 물그릇에 다가가면 밍키도 같이 가요. 블루가 먼저 달려들어 실컷 배를 채우고 물러날 때까지 밍키는 옆에서 묵묵히 서 있습니다. 블루 밥 먹는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그 다음에 자기가 먹습니다.

처음에는 시간 맞춰 배식을 할 생각도 했었어요. 길거리를 떠돌며, 유기견보호소서 생활하며 배불리 먹어보지 못한 기억때문인지 블루가 먹을 것만 보면 앞뒤를 안 가리고 돌진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우리는 결정했습니다. 그냥 매일매일 밥그릇을 가득가득 채워놓는 (소금 안 친 스테이크등 한 달에 한 두번 주는 특별식을 제외하고)걸로. 실컷, 먹기 싫을 때까지 먹어보라고. 그 방법이 효과가 있었습니다. 밥그릇에 밥이 부어지기가 무섭게 달려들어 옆에서 천둥이 치는지 난리가 나는지 아랑곳없이 정신없이 먹어대던 블루가 변했습니다. ‘아, 욕심을 내지 않아도 누가 뺏어 먹지 않는구나. 밥그릇에 늘 밥이 있구나’ 는 사실을 인지해서인지 그 누구도 못 말릴 것 같았던 밥탐이 없어졌어요. 평소에는 밥그릇을 거들떠보지 않다가 배가 고파야만 먹는 걸로말입니다. 그러나 첫 얼마동안 하도 먹어대서인지 살은 좀 쪘네요. 갈비뼈가 드르륵드르륵 만져질 만큼 야위었던 녀석이 지금은 토실토실해졌습니다. 5파운드가 늘었네요. 이제 비만을 걱정해야할 지경입니다.

잘 먹고 잘 싸고 잘 놀고 애교도 많고 뽀뽀도 잘 하는 우리 블루. 곰보다는 여우가 낫다고 블루에게 우리부부의 마음이 더 가게 된 건 당연지사. 밍키와 표나게 차별하게 됩니다. 차별이라고 표현해서 ‘어쩌나. 불쌍하고 가엾은 밍키를’이라고 생각하실 독자님들이 많을 텐데 뭐 먹을 걸 차별한다든가 하는 것은 아니고요. 외출하는 걸 차별하지요. 밍키는 그림같습니다. 움직이기를 싫어합니다. 물론 차타고 나가는 것도. 펫스마트라도 한 번 같이가려면 간식을 준다든지해서 꼬시든지 아니면 강제로 안아서 차에 태워야만하지요. 밍키와는 달리 블루는 나가는 걸 좋아합니다. 나나 남편이 자동차 키를 집어드는 낌새만 보이면 지가 먼저 차고 문쪽으로 달려나갑니다. 그러니 외출할 일이 생기면 항상 블루만 데리고 나갑니다. 우리 셋이 외출했다 돌아오면 혼자 소파에 엎드려있는 밍키를 보게 됩니다. 마음이 좀 아프기도 하지만 어째요, 지가 싫다는 걸.

남편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습니다.

“이렇게 영리하고 명랑한 성격의 강아지가 왜 유기됐을까. 칩까지 이식했다는 것은 나름 애지중지하던 강아지였을 텐데 왜 포기를 했을까...”

오는 날부터 일 주일정도는 우리집에 적응할 시간을 준 뒤 본격적인 훈련을 시키면서하는 말입니다. 아뭇소리 안 했지만 나는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아마 블루의 활발한 품성을 감당 못해서였겠지요. 눈 뜨고 있는 시간내내 잠시도 가만 있지않고 수선스럽게 사부작대는 생물체, 상대해주기가 쉽지 않았겠지요. 많이 성가셨겠겠지요. 많이 귀찮았겠지요.

또한 블루는 나쁜 버릇이란 버릇은 다 가지고 있던 강아지였어요. 손가락물기, 신발 등 바닥에 있는 건 닥치는대로 물어뜯기, 작은 소리에도 끊임없이 짖어대기, 다른 강아지한테 달려들기, 아무 데나 배변하기 등등. 그 버릇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겠지요. 짜증나고 화났겠지요. 예쁘고 귀여운 생김새에 혹해 앞뒤 생각없이 덜렁 들였다가 어린 강아지 특유의 그 버릇들을 감당하지 못했겠지요. 그래서 그냥 갖다버려버린 쪽을 택한 거겠지요. 시간과 정성들여 훈련할 생각은 않고. 훈련해서 고쳐볼 생각은 않고.

남편은 하루 십분씩, 하루도 빼지않고 블루를 훈련시켰습니다. 예전에 밍키를 훈련시키던 것처럼. 한 달가량 지나자 블루의 나쁜버릇들은 얼추 다 고쳐졌습니다. 새 강아지로 거듭났습니다. 두 달이 된 지금은 훈련용어 없이 손짓 하나로 척척 말을 알아듣고 행동하는 데까지 발전했습니다. ‘내가 언제 튀는 공처럼 천방지축이었냐’ 싶게 변한 블루입니다. 정말 신기해 죽겠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변하지 않은 게 하나 있네요. 목줄을 하려 하지 않는 겁니다. 산책 나가는 건 미치게 좋아하는데 목줄하는 걸 무서워해요. 목줄을 꺼내는 낌새가 보이면 어디론가 숨어버립니다. 목줄을 채워서 어디론가 자꾸 이동을 했던 나쁜 기억때문이 아닐까 짐작을 해봅니다. 블루는 거리를 떠돌다가 구조된 후 유기견보호소로 임시보호처로 여기저기 부초처럼 옮겨다녀야 했다고 들었습니다. 목줄만 하면 자꾸 새 장소로 옮겨지니까 우리가 또 다른 데로 데리고 갈까, 그게 두려운 걸까요? 아니면 목줄을 한 후 버림받았던 기억때문일까요. 길에다 유기하기 위해 목줄 채워  데리고 나가던 원주인의 마지막 모습이 녀석에게는 아직 아픈 트라우마로 남아있었던지 말이죠.

그래서 나는 목줄을 채울 때마다 블루에게 속삭이듯 말해줍니다. 내가 낼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정다운 목소리로. 가장 따뜻한 목소리로.

“블루야. 이곳은 너의 안식을 끝까지 책임질 곳이란다. 두번 다시는 길거리에서 춥고 배고플 일은 없을 테니 안심하고 또 안심하여라...”

블루가 알아듣던말든 상관없습니다. 위의 말은 가슴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나의 진심이니까요.